마지막 2km의 역설

과거의 기록은 오늘의 발걸음을 대신하지 못한다

by 아저씨의 뒷주머니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득 메운 날이었지만, 모처럼 풀린 기온과 다가올 토요일의 12km LSD(Long Slow Distance) 훈련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어제저녁, 결국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매고 밖으로 나섰다. 그동안 만약을 대비해 한강 진출로 주변을 왕복했겠지만, 이날은 오랜만에 익숙한 코스를 따라 속도를 높여보기로 했다.

목표는 8km.

하프 마라톤을 수차례 소화했던 나에게 8km는 그리 대단한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호기로운 자신감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8km 지점을 향해 가며 마주한 마지막 2km는, 예전 하프코스를 훈련할 때 느꼈던 그 절박한 마지막 구간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요동치는 심박수,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워진 허벅지, 그리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무릎의 통증까지.

고작 8km였다.

아무리 페이스를 올렸다지만, 나는 왜 20km를 뛸 때와 똑같은 처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운동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가만히 숨을 고르며 깨달았다.

결국 ‘고통의 임계점’은 거리라는 절대적 수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지금 내 몸이 얼마나 단단하게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정직한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상대적인 지점이었다.

거리는 비록 짧아졌을지언정, 훈련이 부족했던 오늘의 나에게 닥친 시련의 무게는 과거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몸은 이토록 정직하다. 과거의 기록이나 완주 경험은 훌륭한 훈장이 될 순 있어도, 지금 당장 내딛는 발걸음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어제의 영광만을 기억하며 호기롭게 내디딘 발걸음은, 준비되지 않은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처절한 고통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문득 이 깨달음은 달리기 너머의 삶으로 확장되었다.

이제 막 대학원 졸업이라는 긴 레이스의 마침표를 찍으려는 지금, 나는 과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회사에서의 업무도, 두 아들을 대하는 아빠로서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무사안일의 안도감에 취해 현재의 단련을 게을리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어떤 목표든 그 마지막 구간은 늘 버겁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생의 모든 마지막 구간은 공평하게 힘들다.

하지만 그 힘듦을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성장의 통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저 ‘준비 부족의 대가’로 치를 것인가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달려 있다.

다가오는 4월 군산 마라톤 풀코스라는 더 큰 목표를 뒷주머니에 넣어둔 채, 다시 한번 무뎌진 근육과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내일의 마지막 2km는 오늘보다 조금 더 우직하고 단단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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