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모든 일엔 동기부여와 채찍질이 필요하다.
특히 나처럼 의지가 '박약'을 넘어 '희박'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작년 11월, MBN 하프 마라톤에서 1시간 37분 37초라는 PB(개인 최고 기록)를 찍었을 때만 해도 한창 폼이 올라 있었다. "이대로라면 풀코스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던 찰나, 시련이 찾아왔다.
며칠 쉬면 나을 줄 알았던 통증은 '장경인대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내 발목을 잡았고, 설상가상 12월 망막 수술까지 겹치며 나의 러닝 생활은 그대로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졌다.
그렇게 시작된 두 달간의 긴 휴식.
그사이 내 몸은 어느새 매일 저녁 소파와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는 삶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포동포동 차오르는 살들이 "야! 이제 좀 움직여!"라고 비명을 지르며 사이렌을 울려댔지만, 밖은 너무 춥고 소파는 지나치게 아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가다간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영영 거실의 일부가 될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쇼츠에서 상반기 마라톤 일정을 보게 되었다. '회복 차원에서 슬슬 뛰어볼 만한 하프코스 대회 없나?' 하고 찾아봤지만, 장소가 너무 멀거나 이미 접수 마감이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네 글자, '군산 새만금 마라톤'.
4월 초, 벚꽃 흩날리는 군산의 평지 코스를 질주하는 대회라니. 게다가 보급품이 혜자스럽기로 소문난 그 대회가 나를 유혹했다.
다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이 대회는 하프 코스가 없었다. 오로지 풀코스, 10km, 5km뿐.
10km는 평소에도 뛰는 거리인데 그 멀리 지방까지 가서 뛰기엔 나의 시간과 기름값이 아까웠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오직 하나, 풀코스였다.
두 달의 공백, 남은 준비 기간은 고작 3개월. 이성적인 뇌는 "야, 이건 아니지!"라고 외쳤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그 목소리를 잠재웠다.
'기록은 무슨, 완주에 의미를 두자. 내가 그래도 짬밥이 있는데 5시간 안에는 들어오겠지.'
그 순간, 내 손은 눈보다 빠르게 참가 신청 버튼을 눌렀고 순식간에 참가비 이체까지 끝내버렸다.
흔히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때로는 찰나의 결정이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소파를 뒤로하고 다시 야밤의 길 위로 나갈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작년 하프 마라톤 때는 퍼플렉시티의 도움을 받아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했다면, 이번엔 제미나이 '젬코치님'을 모시고 진행해 보기로 했다.
젬코치님은 우선 내 장경인대와 수술 이력을 걱정하셨다. 내 생각엔 갈 길이 멀고 험할 것 같은데, 코치님은 일단 살살 몸 푸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하셨다.
젬코치님 지도하에 지난주 토요일과 이번 주 화요일, 6km 몸풀기를 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알싸한 밤공기와 적막감이 다시금 나를 반겨주어 즐겁게 조깅했다.
내가 힘들지 않고 즐거워하는 걸 코치님은 알아차리셨는지, 곧바로 이번 주 토요일 훈련을 12km로 늘려버리셨다. 갑자기 두 배라니, 무서운 분...
토요일 훈련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달려야 한다.
지난 화요일에는 전날 내린 눈 때문에 미끄러운 곳이 많았지만, 눈과 얼음을 밟으며 뛰는 사각사각 소리가 경쾌하고 좋았다. 오늘 밤은 또 무엇이 나를 반겨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