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6에 다녀오느라고 2주 정도 글을 올리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까지 다루던 음악, 영화와는 좀 다르지만 CES 2026에 관한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매년 1월 첫째 주, 라스베이거스의 사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에너지가 응축되는 장소로 변합니다. 저는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 이곳을 찾았습니다.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드는 세계 최대의 기술 전시장. 현장의 메인 도슨트로서 미래의 조각들을 설명해야 하는 저에게 CES는 고도의 체력전이기도 합니다. 하루 8시간 이상 서서 제품을 설명하고 몰려드는질문에 답하다 보면, '기술의 진보'보다 '육체의 한계'를 먼저 체감하게 되죠.
하지만 이 피로감을 뚫고 들어오는 찰나의 통찰들이 있기에, 저는 매년 이 '사막의 챌린지'를 멈출 수 없습니다.
1. 2024 EV, 2025 AI S/W, 그리고 2026 'Physical AI'
기술의 흐름은 매년 드라마틱하게 변해왔습니다. 2024년까지가 전기차(EV) 솔루션의 각축장이었다면, 작년인 2025년은 그 안을 채우는 AI 소프트웨어의 전쟁이었죠. 그리고 올해, CES 2026의 주인공은 단연 '피지컬 AI(Physical AI)', 즉 로봇이었습니다.
중국의 로봇 기술은 이제 신기함의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공중제비를 돌고, 빨랫감을 섬세하게 분류하고 춤을 춥니다. 기술이 누적되면 인간의 육체 노동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더군요. 하지만 수많은 로봇 사이를 걷다 보니 한 가지 근원적인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로봇은 반드시 인간의 형상을 닮아야 하는가?"
2. 인간을 닮으려는 강박, 그 이상의 효율
우리는 로봇을 정의할 때 머리 하나, 가슴 하나,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휴머노이드'를 먼저 떠올립니다. 인간과 닮았을 때 오는 심리적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겠죠. 하지만 기획자의 관점에서 '효율'을 따져본다면 어떨까요?
올해 전시장에서 목격한 현대자동차의 로봇 플랜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2030년까지 로봇이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을 실현하겠다는 비전보다 저를 사로잡은 건 비인간적인(Non-human) 움직임이었습니다.
출처 : 현대자동차
앞뒤 구분 없이 머리를 180도 돌리고, 인간의 가동범위를 비웃듯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하는 로봇의 실루엣. 저는 거기서 무릎을 쳤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된 형태. 그것이야말로 로봇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꿈을 포장하는 기술, 현실이 되는 비전
물론 CES는 여전히 '꿈과 이상'을 가장 비싼 값에 파는 전시장입니다.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멋진 외피로 포장하는 일이 흔하죠. 하지만 구체적인 타임라인과 함께 제시된 기술은 단순한 쇼 이상의 무게를 갖습니다.
상품을 기획하는 기획자로서, 저는 이제 단순히 '더 똑똑한 기능'을 넘어 '어떤 형태가 가장 본질에 가까운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로봇이 인간을 닮을 필요가 없다면, 우리가 만드는 미래의 모든 제품 또한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사막의 먼지를 뒤로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다짐했습니다. 다음 CES에서는 제가 기획한 아이디어가 누군가에게 이와 같은 신선한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