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영화의 내용은 흐릿해도, 그 음악만큼은 문신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곤 합니다. 음악이 흐르는 순간,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공기, 냄새, 그리고 감정까지 소환되니까요.
오늘부터 4개의 연재에 걸쳐, 영화라는 꿈의 세계를 완성한 위대한 마에스트로 3인을 만나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전 세계인의 눈물샘을 지휘했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입니다.
1. 소년의 성장통, 그리고 마지막 키스 제게는 사춘기 시절, TV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잊지 못할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입니다.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꼬마 토토의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에 낄낄대며 웃다가, 마지막 그 유명한 '극장 신'에서 펑펑 오열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이 된 토토가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 뭉치를 돌려볼 때 흐르던 음악, 'Love Theme'.
피아노와 현악기가 서서히 고조되는 그 도입부만 들어도, 저는 지금도 조건반사적으로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남겨둔, 영사기에 재생되던 키스신이 떠오릅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단순한 BGM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토토가 잃어버린 꿈이자, 우리가 지나온 첫사랑의 기억 그 자체였습니다.
2. 황야의 휘파람부터 천상의 오보에까지 엔니오 모리꼬네가 위대한 이유는 그 스펙트럼이 믿기 힘들 정도로 넓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카로니 웨스턴(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의 소리를 창조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황야의 무법자>를 떠올려보세요. "휘익~ 휘이~" 하는 휘파람 소리, 거친 기타 리프, 채찍 소리.
그전까지 서부 영화 음악이 웅장한 오케스트라 일색이었다면, 그는 거친 황야의 모래바람 소리를 음악으로 가져왔습니다.
반면, 영화 <미션(The Mission)>에서는 정반대의 성스러움을 보여줍니다. 원주민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내밀던 선교사의 장면. 그 유명한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가 울려 퍼질 때, 언어가 통하지 않던 원주민과 선교사는 하나가 됩니다.
음악이 칼보다 강하고, 말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그는 오보에 선율 하나로 증명해냈습니다.
3. 오케스트라, 감정의 건축가 영화 음악의 가장 경이로운 순간은, 역시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만날 때입니다. 수십 개의 악기가 하나의 호흡으로 움직이는 오케스트레이션은, 마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을 하나로 엮어내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모리꼬네는 이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이용해 때로는 압도적인 서스펜스를, 때로는 한없이 여린 슬픔을 건축했습니다. 그가 악보 위에 음표를 찍을 때마다, 흑백의 필름은 비로소 총천연색의 감정을 입게 됩니다.
4. 마치며 : 영원히 흐르는 시네마 천국 2020년 7월, 엔니오 모리꼬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Love Theme'가 들려오면, 우리는 언제든 그 시절의 순수했던 토토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는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기억의 피난처'를 만들어주고 떠난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