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만나서 이야기하자
코로나 기간 동안 내수 수요가 폭발하면서 패션회사들의 브랜드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은 Celine, Alexander Wang, Marni, ACNE STUDIOS 등의 브랜드를 한국 시장에서 크게 키워왔고, 삼성은 Issey Miyake, Thom Browne, Comme des Garcons, Lemaire, Theory, Jacquemus 등 유수의 브랜드들의 독점 운영권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한국에 안착시켰다.
2020년대 초반, 비이커 팀에서는 Maison Kitsune, Studio Nicholson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모두 비이커에서 바잉을 통해 여러 시즌 테스트를 해보고 시장 확장 가능성을 본 후 모노 브랜드 육성 형태로 키워본 브랜드들이었다. 치열한 패션 업계에서 “잘 나가는” 브랜드를 독점으로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업 구조상 굉장히 큰 힘이었기 때문에 바이어들은 다음에 올 브랜드가 무엇일지를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관찰했다.
당시에 가장 핫한 브랜드 중 하나는 Ganni였다. 코펜하겐 베이스의 브랜드들이 트렌드로 오면서 아이코닉한 스타일과 컨템퍼러리적인 가격을 겸비한 브랜드라서 소위 말하는 패션 3사 외 많은 회사들이 Ganni를 모노브랜드로 유치하기 위해 각개전투를 펼치던 나날들이었다.
비이커는 Ganni를 꽤 오랜 시즌 바잉하며 매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고 브랜드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당시 비이커 보다 더 오랜 시즌 바잉을 한 다른 스토어가 있었고, 또 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는 다른 회사의 얘기도 들렸다. 어떻게든 이 브랜드를 가져와야 했지만, 메일과 Zoom을 통해서 얘기하는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팀은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전사 출장이 금지된 시기였지만 GANNI를 만나기 위해 파리 HQ로 찾아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계약 관련이라 당시의 상무님 포함 결정 권한이 있는 높으신 분들만 정예로 극비리에 가는 계획의 출장이었다.
하지만 출장을 위한 브랜드 히스토리와 계약 관련 내용을 정리하면서 문득 브랜드 담당자들과 가장 오래 보고 친분과 신뢰가 있었던 내가 가면 계약에 도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무님 이번 출장 저를 데려가시면 분명히 도움이 되실 거예요.”
생각지도 못한 바이어의 제안에 고민을 하시고는 결국 나의 출장을 컨펌해 주셨다. 바잉 출장 때 브랜드와의 추가적인 미팅을 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브랜드 계약을 위한 출장은 처음이었고, 그게 코로나로 모든 해외 이동이 까다로워졌을 시절이라 엄청난 부담이 있었지만 그만큼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다양한 경우에 대비한 미팅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렇게 상무님, 사업부장님, 팀장님, 나까지 4명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한산한 공항, 비행기, 그리고 파리 시내는 처음이었고 물론 이렇게 극비 출장도 처음이었음.
이틀에 걸친 미팅은 다행히도 순조롭게 끝났다. GANNI 측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온 건강한 관계와 준비해 간 계획을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한국에 돌아와 논의를 이어 갔다. 그리고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열 번의 이메일보다, 다섯 번의 말보다, 한 번의 만남이 중요할 때가 있다. 패션 컨설팅 에이전시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도 사무실에 앉아있기보다 계속 미팅을 다니고, 해외 출장을 가는 이유도 이 한 번의 만남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