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폰페라다 - 비야프랑카데비에르소
정말로 오랜만에 배낭을 꺼냈다.
배낭을 들쳐메고 허리버클을 결합하고 여유로운 부분을 조이고 당기면 배낭이 내 몸에 착 달라붙어 묘한 안도감을 준다. 선반을 할 때 장구가 몸에 유독 잘 붙는 날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오금을 주는 것처럼 몸을 들썩여보고 배낭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느꼈던 약간의 귀찮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설렘이 마음을 채운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부활절 휴가를 이용해 열흘 정도 걸을 계획을 잡았다. 폰페라다Ponferrada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약 220km 정도의 거리다. 오랜 로망이었던 까미노를 향해 가지만 완주가 목표가 아니기에 단단한 각오도, 미간에 주름에 잡히는 부담감도 없다. 피곤하면 하루이틀 늘어지고, 다리가 아프면 버스를 타고, 풍경이 좋으면 걷기보단 사진을 찍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걷기 시작하면, 다른 순례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갈까봐, 괜히 다른 이의 비장함을 흉내낼까봐 사뭇 걱정이 되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아내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아내가 차가운 목소리로 '지랄말고 버스 타' 라고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기차는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공들여 이동했다. 9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차는 십수 개의 역에 정차했으나 멈춰있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맑고 흐리고 때때로 비가 오는, 스페인의 거의 모든 날씨와 함께 평원과 산맥이 스쳐지나갔다. 큰 지루함 없이 폰페라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래된 성벽에 있는 도시는 언제나 아름답다. 옛 유럽의 성주들은 산꼭대기나 강가처럼, 되도록 짓기 어려운 곳에 성을 지어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아마도 보상 받지 못했을, 누군가의 피와 땀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저 거대한 성곽이 전쟁과 노동의 상징임을 상기하면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와 눈에 남는 건 아득하게 덮어진 시간 뿐이다. 아늑하고 온화하게 켜켜이 쌓인 시간들.
그와 반대로 나를 뒤덮은 대부분의 것들은 아직도 가격표 자국이 선명한, 어제 막 구매한 새 것들이었다. 가벼운 배낭과 싸구려 등산화, 쉽게 마르는 재질의 남방과 반바지로 분리가 되는 폴레에스테르 바지, 챙이 넓은 모자와 두툼한 양말까지, 하나 같이 반들반들하고, 아직 자리가 채 잡히지 않은 어리숙한 모양새였다. 다만 지난 해 까미노에 다녀간 지인이 남겨두고 간, 이미 나보다 앞서 까미노를 완주한 등산스틱만이 늠름한 자태였다. 그 덕분일까, '내일부터 까미노'라는 긴장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알베르게는 깨끗했지만 꽤나 수선스러웠다. 3년 만에 묵어보는 도미토리는 생각보다 불편했고, 예상대로 시끄러웠다. 순례자의 숙소는 조금 다를까 싶었지만, 어디에 가도 무례하고 배려가 없는 이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덕분에 실컷 잠을 설치고, 새벽녘에 복수하듯 바스락거리며 배낭을 싸고 첫 걸음을 디뎠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가 좋았다. 배낭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고, 신발은 몇 년을 신은 것처럼 발에 잘 맞았다. 서툴게 이정표를 확인하며 도시를 빠져나오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지만 전원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자 이제서야 내가 까미노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한국은 벚꽃이 한참 필 시기려나, 여기도 그야말로, 그야말로 꽃들이 만개하고 있었다. 사과꽃과 배꽃과 체리꽃이 한데 어우러져 걸음마다 너울너울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꽃에, 하늘에, 막 피어오르는 신록에 정신이 팔려 걸음이 멎춰 있는 동안, 아침에 만난 동행은 어색하게 나를 기다려주었다. 앤디라는 이름의 이 중년 남성은 스코틀랜드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인인데, 지나가는 나무마다 저건 어떤 나무이며, 언제 꽃이 피는지, 사과꽃과 배꽃과 체리꽃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설명해주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눈에 들어오는 꽃마다 저 꽃이 무슨 꽃인지 먼저 외치곤 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이 날이 끝날 때까지 배꽃과 체리꽃을 끝끝내 구별해내지 못했다. 다만 그는 당연한 일이라며, 그 둘의 구별은 정말 프로페셔널한 안목이 필요한 것이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여름이면 여름이 좋고, 겨울이면 겨울이 좋지만, 그래도 유독 봄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언제나 봄의 색깔 때문이다. 초록草綠, 아니 초록이 되기 전의 신록新綠. 얼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의 색깔, 마른가지에 맺히는 이파리의 색깔. 늘 마음을 흔드는 색깔. 바라만 봐도 마음이 트이는 청명한 하늘 아래 신록이 참 풍성하게도 온동네에 맺혀 있었다.
오후가 되자 두 눈 가득 포도밭이 펼쳐졌다. 카카벨로스Cacabelos를 비롯하여 이 부근 대부분은 와인 산지라고 하는데, 과연 아직 싹이 돋지 않은 포도나무들이 한껏 움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드넓은 포도밭에는 듬성듬성, 그러나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체리나무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밭을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앤디는 포도나무와 체리나무밖에 보이지 않자, 관리가 잘 된 포도밭과 관리가 되지 않은 포도밭을 구분하여 알려주기 시작했다.
포도밭은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졌고, 걸은 거리가 20km에 가까워지자 슬슬 다리가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 오늘 좀 이상한데, 오늘 무슨 날인데 이렇게 날 혹사시키지- 라며 발바닥과 무릎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발바닥은 살짝 물집이 잡힌 것 같았고, 오후 2시가 넘어가자 햇볕은 상당히 뜨거워져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민감하게 구별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오늘은 힘들지 않은 코스라고 이야기해준 알베르게 주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 분 아니 그 놈을 앞세워 걸으며 지친 기색을 보일 때마다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다. 그 와중에 앤디는 과실수가 많은데 벌통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나에게도 벌통을 찾아보라 성화였다. 사진을 찍는 척 하며 슬쩍 뒤쳐질까도 고민해봤지만 벌통을 발견할 때마다 그가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었기에 나 역시 꽤나 열심히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걷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다. 그래도 역시 쉽지 않았다. 양쪽 발바닥이 부르트기 시작한 것이 느껴져 마을에 들어올 때는 거의 절뚝거리며 걸었다. 행군을 마친 군인처럼 티나지 않게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마을 어귀에 위치한 허름한 바의 테라스 의자에 주저 앉아 반사적으로 맥주를 시켰는데, 그 청량감과 해방감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맥주를 한 잔만 마셔도 술이 오른다는 앤디도 시원하게 세 잔을 들이켰다. 결국 이후의 여정에서도, 그 날의 목적지에서 첫번째로 눈에 들어온 바에 들어가 생맥주를 마시는 것이 나에겐 순례자의 의식과도 같았다.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내가 마신 세 잔의 맥주까지 앤디가 계산을 해주었다. '우리는 이제 친구'라며 그리 두툼하지 않은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는데, 스페인 사람들의 그 흔한 '아미고'와는 달리, 앤디의 '프렌즈'는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와서 꽤나 고마움을 느꼈다.
앤디는 버스를 타고 오늘의 출발지인 폰페라다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다. 몇 년 후에 다시 올 까미노를 위해 오늘은 연습같은 하루였다고 했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그를 위해 버스 정류장 위치를 물어 버스를 함께 기다려주었는데, 마침 영어와 스페인어가 모두 유창한 스페인 청년 둘이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가벼운 옷차림과는 거리가 먼, 면 바지에 두꺼운 후드티를 입은 모습에서 젊은이의 패기가 느껴졌는데, 봄방학을 맞아 일주일 정도 까미노를 걸은 인근 도시의 고등학생들이었다. 사람이 적은 기간이라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고 하면서도, 작년 여름에 거의 인파 속을 헤매며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걸었던 기억이 더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니, 까미노를 걷는 많은 사람들은 결국 제각각의 방법으로 걷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