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무실 결핍증, 사무실 싫어증 그리고 완전선택적 출근제
라디오에서 간만에 장혜진 누님의 [내게로]를 틀어줬다. 좋아했던 노래라, 무지 반가운 마음에 운전 중에 많이도 흥얼거렸는데, 한 구절에서 딱 말문이 막혀버렸다. 지금도 그 구절만 떠올리면 가슴이 복잡한다. 그 구절은 이렇다 ‘앞으로도 우린~아주 먼길을 가야만 해~’ 노래가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재생되며 뇌리를 스토킹하는 그런 싸비. 게다가 이 누님은 또 이놈의 구절을 몇 번씩이고 부른다. 고음으로도 불렀다가- 후어후어~ 하고 코러스로도 흥얼거렸다가- 오우예~ 하며 애드립으로도 써가며... ‘앞으로도 ~ 니놈은~ 아주 먼길을~ 가야만해~ ㅋㅋㅋ그러게 네놈 주제에 누가 사업 시작하래?ㅋㅋㅋ ’ 하신다. 물론, 이 노래의 전체적인 내용은 매우 희망차면서 기운을 북돋아주는 그런 내용이지만, 그런 톤앤매너는 당연히 모두 스킵되어버린 채 그 워딩 자체의 야수성만 남아버리고 만다. 마포에서 수원까지 달려가는 우리 회사 재정상황처럼 꽉 막힌 강변북로 한남선 위에서 그렇게 몇 번이고 노래를 들었다.
사실 이까짓 글이 뭐라고 여러 곳에서 관심도 주시고 문의도 주셔서 오히려 연재를 해야할 지, 말아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이 컸다. 뭐 대단히 잘 하는 것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시정 잡배처럼 기웃거리고 나서는 오지랖 습성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구설수에 오른 기억 때문에 생긴 피해망상 때문에 그렇다. 인망이 그다지 두텁지 않기 때문에 뭘 해도 소문이 돌거나 욕을 먹는 뭐 그런... 뭐, 어쨌든 이 또한 ‘망상’에 불과한다는 게 중론이며, 실제 내가 뭐라고 지껄인다한들 크게 독자들은 신경쓰지 않고, 필요한 내용만 알아서 참고하실거란 게 팩트다. 그래서, 원래 써놓은 글은 꾸준히 공개하는 것으로 하되, 조금 더 도움 내지는 참고가 될 만한 내용으로 교정하기로 정했다. 이 ‘독자’라는 표현도 내 특유의 광대 기질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타겟 오인지인데, 어찌되었든 ‘독자’ 정도 레벨의 관여도가 생길 리 만무한 졸고임에도 이래저래 여쭤보시는 분들이 생겨서 굳이 이런 워싱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1) 그나마 여러분께 쓸만한 이야기 (2) 다만, 그나마 쓸만한 이야기를 내가 잘 골라서 소개할만큼 내 앎의 수준이 박식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쓸만한 이야기’라고 함은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테이스팅 해보지 않아도 될 바보 천치 같은 선택지를 몸소 겪으며 체험한 이야기를 ‘쓸만한 이야기’라고 할 거라는 점 (3) 혹은 개똥만도 못한 허세로 사람이라곤 두 세명도 없는 회사를 이케아 가구로 채운다던지,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져다 둔다던지, 반려견을 데리고 출근하게 한다던지, 월/금 출근을 없앤다던지 해보았던 아주 대단한 ‘실리콘밸리st’의 허와 실을 밝혀드리는 똥꼬쇼 정도도 ‘쓸만한 이야기의 범주’에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지난 #3편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무실이라는 건 애증의 존재이다. 있으면 확실히 사랑스럽고, 뭔가 사업한다는 냄새도 남들에게 풍길 수 있고, 매일 뭐 비가 오는 날이거나 눈이 오는 날, 혹은 주말에 출근하거나 새벽까지 야근을 하는 날 인스타에 올릴 거리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선 매우 효과적이고 좋다. 사업을 시작하고 딱 이 시점이 사무실 결핍증이 생기는 시점이다. 앞선 에피소드를 통해 뭔가 필자 본인이 대단한 마윈이라도 되어서 알리바바와 30인의 도적이라도 이끄는 양 고생에 고생을 거쳐 사무실을 만들어놓은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따위 얘기에 나름 감동을 받으셨다는 분이 있어서 다시 한 번 그 분의 감상 수준에 도움이 되고자 다시 한 번 꼭 말씀드리고 싶다. 감동할 일이 아니다. 그 모든 건 사업이 안 되는 회사가 부리는 개떡같은 오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오기의 이유는 순전히 대표의 망상 때문일 뿐이라서, 겪지 않아도 될 결핍증이다. 영업을 빙자해 술을 들이붓는 횟수만큼 비타민만 잘 챙겨먹어줘도 생기지 않는다. 보통, ‘직원들이 좋은 사무실을 원할거야’라거나 ‘클라이언트도 종종 올 수 있으니 사무실이 필요해’ 혹은 ‘그래도 번듯한 사무실이 있어야 일도 잘 되고 모일 수도 있고..’ 같은 팩트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소리를 해가며, 사무실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상과 크리에이티브가 오고 가는 발전소가 생겨날 것이라 상상하며 잠이 들지만, 사실 뭐 굳이 나쁘게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귀찮은 일만 수십가지는 떠오르는 몽정 정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무실 결핍증이 중증이 되면, 일이 안 되는 모든 이유를 사무실에서 찾고, 남의 일이 잘 되는 모든 이유를 사무실에서 찾게 된다. ‘저것들은 애초에 투자도 많이 받고, 부모도 잘 만나 좋겠네’ 라거나 ‘저 고인물들 회사 만들더니 참 일 쉽게도 하네 짜증나 빌어먹을 세상’처럼 본인의 실력 부족이나 인격적 문제점에서 찾아야 할 사업 부진의 이유를 파악한다기 보다는, 그냥 대놓고 지금 당장 원색적으로 당장 욕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 (ex. 사무실 위치, 사무실 크기, 사무실 사고도 남은 자본금, 처음 같이 시작한 직원 숫자, 사무실 내 네스프레소 머신 보유 여부 등등) 을 찾아 모욕하며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려 하게 된다. 사무실 결핍증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건 ‘맘에 드는 사무실’ 내지는 ‘남들의 이상과도 같은 사무공간’을 실제로 가지게 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은 대표 스스로가 자성하며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다.
좀 더 쓸모 있는 이야기를 드리기로 약속하였으니,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 및 당시의 조악한 솔루션들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사업자등록증에 가라로 적어내기 위해 만든 월세방 불법개조공간(허가 안 된 베란다인데 주소가 있었음) 사무실 그 다음 에어컨을 무지하게 쎄게 틀어주던 이디야, ‘작가’라고 구라를 치며 온갖 개똥폼은 다 잡았던 1일 인스타 2~3개짜리 카페를 떠나 정식으로 얻게 된 첫 사무실은 클라이언트의 건물 3층에 있던 문 닫기 직전의 영업장이었다. 그 공간은 무지 멋진 컨셉을 자랑하던 곳이었고, 그 동네의 정취를 제대로 담아 정말 멋있고 힙하고 온갖 수식어를 다 가져다 붙여도 좋을 공간이었는데, 개떡같은 기획자(본인)의 실력 미숙으로 영업이 잘 안되었다(클라이언트는 아니라고 했지만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비열하게도 그 공간에 매우 푼돈을 내고 사무실을 차렸다. 명분도 비열했다. ‘클라이언트와 더 가까이 소통’하기 위해서. 속아준 클라이언트가 절친했고 넓은 아량을 가진 대인배 부자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못된 클라이언트였다면 어느 아침에 화장실 청소 안 했다고 일언반구없이 뺨을 맞아도 할말이 없을 그런 정도의 조건으로 사무실에 입주했다. 해당 영업장을 철거하기 직전에 그 멋진 인테리어와 바 형태의 구조, 바 기물과 희귀한 위스키 보틀들이 가득 늘어진 채, 붉은 색 융단의 카펫타일 위에서 나는 사진을 많이도 찍었고, 개인 브랜딩을 열심히도 했고, 약간- 미드 매드맨에 나올법한 그 시절 맨하탄 주변의 광고회사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사람도 종종 불러가며 ‘파티’도 하고, ‘세미나’도 해가며 온갖 꼴깝이란 꼴깝은 다 했다고 보면 된다. 다만, 위치가 너무 힙했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타겟할 수 있는 업무와 업무의 상대가 매우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기에 실제 미팅을 오는 클라이언트는 결국 하나도 없었는데, 그 지점이 나중에는 큰 독이 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 하나도 다 직접 택시를 타고 30~40분씩, 가끔씩 차가 막힐 것으로 예상될 때에는 지하철을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미팅을 가곤 하니 정작 시간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이 때 얻은 깨달음(-이라고 쓰고, 정상인이라면 안 해보고도 아는 기초적인 판단능력이라고 읽는 것)은 (1) 클라이언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어찌되었든 남이 찾아올만한 공간을 만들어야 관리가 된다 (2) 청소만 하기 쉬워도 만사가 편하다 (3) 의자는 무조건 편해야 한다 (4) 술이나 게임기는 좀 멀리 두어라- 같은 점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얻게 된 사무실은 보다 ‘여러 명’에 초점을 두고 모집했다. 이전의 사무실은 보통 2인, 많으면 4인 정도가 비상시적으로 일(하는 척)을 하기 위한 공간이었으므로, 두번째 사무실은 시행착오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잘 정해보자- 고 해놓고 또 한 번 꼴깝을 떨기 위해 후암동으로 향했다. 이유는 그냥 후암동이 힙해서였는데, 합리적인 척 보이기 위해서 뭐...상시적으로 근무할 사람들을 지도에 표시해서 반경 10키로미터내 원을 그리면 겹치는 지역이 어쩌고~ 서울역과 근접한 접근성이 지방 프로젝트를 위해 어쩌고~ 같은 개떡 같은 이유를 붙여가며 스스로를 납득시키곤 했다. 팩트만 놓고 말하자면, 정작 그 인원들이 필요로 할 위치도 아니었고 (그랬으면 구로디지털단지처럼 멋은 없는데 매우 합리적이고 좋은 곳이 있었음), 지방프로젝트는 청주 / 대전 말고는 없어서 가뭄에 콩 나듯 내려가는 주제에 그따위 핑계를 댄 거기도 했다. 시행착오에서 얻은 가르침은 ‘선택적으로 수용’ 했는데, 남이 찾아올만한 공간을 ‘후암동 초입’ 정도로 세팅했는데, 공간 자체의 원래 용도는 ‘봉제공장’ 이고 뭐 그렇다. 봉제공장의 간판을 그대로 유지한다던지- 하는 싸구려 레트로 술집같은 아이디어도 내어가며 시행착오에서 얻은 가르침을 잘도 개무시하곤 했는데, 다행이도 사무실을 임대해주시기로 한 분이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연락을 주지 않으셔서 계약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믿지 못해서 였을 것이다. 돈을 주겠다고, 방을 달라고 하는 사람도 떼어낼 정도면, 내 사무실 결핍증에서 나온 기획이 얼마나 기가 찰 만한 것이었는지 스스로도 짐작 가능하다. 여기서도 다행이 가르침을 하나 더 얻었는데, 그냥 ‘평범한 레벨’을 잘 조율하여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사실 구찌에서 양말 사 신고, 디올에서 속옷 사 입는 사람처럼 오히려 매우 패셔너블한 혜안이라는 점이다. 물론 나는 갖추지 못한 방법이다. 두번째 사무실을 결국 철거촌에서 ‘마지막까지 항쟁’하다가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을 받고 나갔던 어느 술집을 그대로 사서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1~2회차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매우 싼 돈으로 쓰게 될 수 있었고, 어찌되었든 얼기설기 자체적으로 공사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무실 인테리어 등등을 직접 한 돈오십에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 이 사람도 배움이 있구나’겠지만, 대표라는 종족은 별로 그러하지 못하다. 굳이 공짜로 쓸 수 있던 철거촌의 사무실 집기들을 인수하는 걸 온갖 미신이니, 컨셉이니- 하는 씨알도 안 먹히는 변명으로 거절하며 ‘이케아’에서 ‘스툴’과 ‘이동식 테이블’을 마련했으니 말이다 ㅋㅋㅋㅋ 그리고, 결국 ‘플레이스테이션’과 ‘각종 술’까지 가져다두며 시행착오를 절반만 수용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내가 유독 못난 점이 많기 때문에 이런 류의 시대착오적 / 비효율 극대화 솔루션이 늘 도출되는 것도 있겠지만, 이 모든 이유가 발생하는 까닭은 ‘갑자기 생긴 사무실 결핍증’ 때문이며. 갑자기 생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시행착오는 아무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이겨내기 위한 몇 가지 꿀팁을 마치 알콜중독자 치료모임 졸업자처럼 말씀드리자면 (사실 졸업자라기보다는 ‘수료자’에 가깝지만), 첫째로는 절대 혼자 급하게 구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로는 절대 혼자 급하게 구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로는 절대 혼자 급하게 구하지 않는 것이다. 보통 사업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거나, 혹은 사업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인맥을 끊으며 인간관계-사업관계간의 전환에 변화가 생긴 경우, 사무실을 같이 보러 가줄 사람조차 구하기 어렵다. 본인은 사업을 시작한다고 몇년이나 꼴깝을 떨어놨던걸 수습하기 너무 쪽팔렸고, 믿을 사람들은 시간이 안 되고(혹은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고), 애초에 사업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구르며 사람 자체를 잘 못 믿게 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와도 같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와도 가지 않고 무려 ‘엄마’랑 사무실을 보러 갔다. 엄마랑 근 십년만에 친해지는 계기가 생긴다는 점과 엄마가 ‘내가 아직 아들에게 해줄 일이 있구나’라는 마음을 느끼며 약 5~10분간 효도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면 무척 좋은 선택이겠지만, 5~10분만 지나면 ‘얘가 사회생활을 했지만 하나도 변한게 없구나’ 같은 걱정을 드리게 된다는 점은 감안하셔야 한다. 또한, 엄마 마음이라는 게, 일단 아들이 좋다고 하면 좋은 이유를 이해하려 드시는 분이지 뭐 반박을 한다던지 해서 아들과의 즐거운 나들이를 망치시려고 하진 않기 때문에 냉철한 판단을 해주시지 않는다는 점이나, 진짜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사무실에서 일할 일이 없으시기 때문에 정확히 뭘 알지 못한다. 요인 즉슨, 동업자‘씩이나’ 바라실 수 없는 상황이시라고 해도 절대 관여도가 낮은 사람을 함께 데려가면 안 된다. 기획서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되는데, 어떤 특정한 타겟 USP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다양한 중론으로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얼기설기 그림은 멋있게 그렸다가 정작 해야할 숙제를 빼먹는다거나 피져빌리티를 1도 챙기지 못하는 뭐 그런 상황이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된다. 엄마도 안되고, 사업 좀 해본 삼촌, 친구도 안 되고, 애인도 안 된다. 가장 좋은 건 동업자겠지만, 당연히 그런 건 없으실테니, 최소 광고회사 동기나 선후배 정도라도 어떻게 해서든 한 번은 함께 가보시길 권하고 싶다. 그러지 못할거라면, 그냥 공유오피스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된다. 피져빌리티 및 앞으로 닥칠 보이지 않는 위험을 알지 못한 채 사무실을 얻다 보면 나중에 ‘채우기를 위한’ 인테리어 낭비라는 2차감염에 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1) 이 업과 관련이 있는 사람과 최소 한 번은 가봐라, 아님 사진이라도 찍어서 꼭 확인하셔라 (2) 입지 선정부터 인테리어까지 혼자 할 수는 있지만, 그 꼴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인테리어와 공간설계를 ‘업’으로도 하던 사람이었는데도 내 거는 무조건 오바하게 되었다. 특히 공간이나 가구라면, 오바해서 좋은 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3) 공유오피스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건 안 해봐서 그런 것도 있다는 것. 뭐- 이런 기초적인 걸 굳이 말하고 있어-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의외로 이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채 사무실을 구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매우 종종 봤다. 빈도부사로 따지자면 usually 와 sometimes의 사이 정도였다.
다만, 사무실은 딱 고르고 난 후 일주일까지만 사랑스럽고, 매월 월세를 내는 날이면 ‘이 개떡같은 거 어떻게 치울 수 없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모님 원수급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작 이딴 사무실이라서 그래’라거나 ‘우리 주제에 이런 사무실을 쓰니까 재정이 개똥이 되는 거 아냐?’ 같은 혼란스러움이 매달 1일 월세를 내는 날마다 찾아오게 되며, 결핍증과 싫어증을 오고가는 감정의 청룡열차가 줄을 서다가 결국 ‘사무실 싫어증’이 또다른 병마로 자리잡게 된다. 이유는 매우 단순한데, 그냥 뭐 하나의 마일스톤이 사무실 임대 성공으로 나름 달성되었기도 하고, 뭔가 제대로 사업하는듯한 티도 외부에 적당히 소문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슬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이 부분, 한 치 거짓도 없다. 그냥 내가 컨셉을 잘 잡기 위해 자기 자신을 매우 나태하고 모자란 스타일의 대표로 포지셔닝하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의심의 절반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첫째, 나태하고 모자라다는 건 팩트임. 둘째, 절대 나만 겪는 문제도 아니었다는 점. 각종 휘황찬란한 사업성공기와 자수성가 수기를 읽어보면, 보통 ‘사무실 월세를 내기 위해 발벗고 뛰어야지요’ 혹은 ‘허허~ 어쩔 수 없는 대표의 책임감이^^;;’ 같은 이야기가 줄을 이으며, 본인의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매일 짜장면만 먹어가며 일을 해야 나중엔 매일 샴페인을 먹어가며 일할 수 있다~ 같은 상당히 꼰머스러운 류의 이야기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데, 물론 그분들이 몸담고 계신 사업계 자체가 나와는 전혀 겹치지 않는 천상계급이셔서 나란 놈은 그 정도 열정을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라 생각하는, 천사를 본 적 없어서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는 불신론자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생각보다 사무실 월세는 쉽게 해결이 되는 부분이고 그렇게까지 유난을 떨 필요도 없거니와 그걸 해결했다고 뭐 대단한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질 것도 아닐만큼 사업에는 사무실 월세 정도는 문제라고 생각들지도 않는 ‘문제만’ 산재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사무실 월세의 해결이 아니라, 사무실 ‘월세만’ 해결이 되는 수준으로 사업을 생각하는 마치 ‘직장인 중에서도 일 못하는 직장인스러운’ 과제 해결 정도로 본인의 사업을 바라보게 되는 내 스스로의 ‘사무실 싫어증’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러가지 핑계가 떠오른다. 나 혼자 여기까지 왔으니 좀 쉬다 하려고, 나 혼자 사무실까지 얻고 이래저래 홍보도 하니 힘들어서 잠시만, 일단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신사업 고민’을 해야하므로 당장은 생계유지만 하자- 등등... 이 고민의 실상은 대표 스스로의 나태함에 있다. 누가 지보고 사업하라고 등떠민 것도 아닌데 온갖 피해의식과, 내가 감당해야할 청구서들을 ‘내가 해내야 할 과제’라고 믿어버리며, 원래 사업을 시작하며 가졌던 갖가지 열정과 꿈을 ‘청구서 잘 갚는 것’ 정도로 에둘러 낮추고, 그 작디 작은 과제를 해결한 것 만으로도 ‘내가 사업을 잘 하고 있어’라고 스스로 믿어버리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대뇌 파시즘 때문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정말 사무실 월세 내는 게 힘들 수도 있지. 내 경우의 예를 들자면, 사무실 월세를 10만원에서부터, 40만원, 340만원까지 내본 적이 있는데, 두 경우 모두 월세 자체를 충당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일을 무지막지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전화들을 통해 잘 아실 수 있으실텐데, 인간이라는 존재의 책임감 내지는 발버둥은 생각보다 강렬한 편이라, 수영을 아무리 못하는 인간도 물에 던져두면 몇 분은 허우적대며 튜브가 던져질 때까지 버티듯이, 그냥 340만원짜리 월세의 보증금 680만원이라는 무서운 크레바트에 발이 빠지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발버둥쳐서 기어오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게 꼭 뭐 엄청 ‘스타트업스러운’ 클리셰(ex. 식은 바게뜨 샌드위치를 이틀간 나눠먹으며 일함, 집에 가지 않고 담배 한 가치를 나눠피며 성공하면 시가를 피자고 약속함 등등)가 수반되지 않더라도 해결이 된다. 나같은 경우에는 엄청 쓰기 싫고 하기 싫어서 꿍그리고 있었던 남의 브랜드 운영일이나 잡다한 피피티 아르바이트, BTL행사 관리, 평소보다 내수 좀 더 얹기 같은 것들을 몇 번 반복해서 돈을 만들어냈다. 와- 이 사람 생각보다 대단한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사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보통, 자기 사업을 하기 때문에 회사라면 응당 했을법한 견적관리를 더 안하게 된다는 사실은 아마 모르셨을거다. 생각보다 보시성으로 그냥 해주는 일도 많고, 세금계산서 수정발급하기 귀찮아서 익월 추가 청구하는 일도 많고, 내 사업이고 내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이 되는데도 피곤해서(-라고 쓰고 전날 피파 혹은 술을 먹다가 아침에 11시에 일어났으므로) 하지 않게 되는 일도 많아서, 그냥 ‘성실하게’ 정도도 아니고 ‘사업하겠다고 맘먹은 놈처럼’ 일해도 너무 얼토당토 않는 비용의 사무실이 아니라면, 알아서 메꿔질 수 있다. 만약 그 정도 금액이 메꿔지지 않을 정도의 사무실을 쓰고 있다거나, 애초에 별 거 없이 ‘사무실만’ 얻었던 분들이라면 대체 왜 그러셨는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첫번째이고, 그 정도 일 수준이라면 애초에 사무실 없이 그냥 카페에서 일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경험상 권해드리고 싶다. 물론, 보통은 사무실 임대 보증금 목돈 한 3~500만원도 어딘가에서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일이 없는데 사무실만 생긴다거나, 사무실이 무지막지하게 큰 경우는 잘 생겨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내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커지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내 사업이기 때문에 이 마음이 더 커지게 되는데, 굳이 할 일도 없이 / 혹은 집에서 그냥 하면 되었을법한 합리적인 주말업무를 굳이 출근하는 게 귀찮고 짜증만 치밀어오르게 해서 회사라는 걸 때려치고 내 회사를 차린건데, 내가 만든 회사에서 내가 정한 출퇴근 규칙때문에, 내가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게 싫어서 그냥 사무실을 잘 가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다. 세상 많은 분들이 이 지점에서 진지하게 많은 고민을 하신다. 제가 책임감이 없는 대표인가요? 저는 정녕 게으른,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인가요? 나는 물론 이 경우를 겪어보았기에 매우 정확한 해법을 안다. 이 경우의 해결법은......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정답! 돈이 없을 시기가 오시길 기다리시면 된다. 일이 안 되는 시기, 퀄리티가 안 나는 시기 이런 건 필요 없고, 그냥 월급을 못 주고, 월세를 주고 나면 내가 사고 싶은 거 못 살 거 같을 때가 찾아오면 알아서 게으름이 사라지게 될 것이므로 그냥 그 때를 기다리시면 된다. 그러므로, 오히려 푼돈 아끼고, 막 저축하시고 이런 분들이 손해다. 이런 분들은 늘 열심히 사셔야 하거든. 나 같은 사람은 저축도 안하고, 돈도 쓰고 싶은 대로 펑펑 쓰기 때문에, 돈이 없는 순간이 자주 와서 그냥 매순간을 열심히 살게 되었기 때문에, 실제 본인 스스로의 근본적인 나태함과는 달리, 주변의 평가는 ‘열정적인 친구’ 같은 게 돌아왔다. 처음엔 민망한 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민망하지도 않은 걸 보면 나라는 인간이 정말 드러운 속물이구나 싶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내 회사는 어떻게 일하고 있느냐? 우리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자율재택근무제 정도를 넘어서 ‘완전 선택적 출근제’를 시행하고 있다. ‘시행’이라고 하면 거창한데, 그냥 회사 친구들끼리 일하다가 (보통은 놀고먹기 위해) 그냥 회사를 자주 안 가고 싶다보니 이런 완전 선택적 출근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오히려 ‘모여서 출근하는 날’을 정하고 움직인다. 그날조차 절대적인 건 없고, 걍 맞으면 맞는대로 만난다. 회의는 슬랙으로 하고, 잡담은 카톡으로 한다. 가끔은 바꿔서 하기도 하고, 가끔은 잡담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히려 이런 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한 뭐 여서일곱개 브랜드를 동시에 하는 거 정도는 오히려 일상처럼 느껴진다. 물론 안 힘든 건 아닌데, 사무실을 출근하며 발생하는 /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입사하며 발생하게 될 확장에 대한 고민 /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 취할 수 있는 나만의 루틴, 회사에서 못하는 나만의 루틴 취하기 등등 각종 추가적인 스트레스나 제약이 없어진다는 점이 가장 좋고, 일하는 척 뺑끼 쳐가면서 일 안하고, 집에서 게임하고, 나가서 술 먹고 하는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즐기면서도, ‘어찌되었든 데드라인은 지키자- 그래야 나중에 두 번 일 안하고 더 많이 놀 수 있다. 같은 돈이면 많이 노는게 이득이다’ 같은 차원을 넘어선 나태한 생각이 팽배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자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스스로 더 많은 캐파(capa)를 개발하며 ‘무엇이든 걍 할 수 있으니 오더나 주세요~’ 같은 말을 서슴없이 하다가보니 어느 순간 광고회사를 운영하는데도 별다른 야근도 크게 없이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도 경쟁피티가 한 주에 5개 정도 겹치면 야근하긴 하는데, 일반적인 광고회사였다면 한 팀이 관뒀겠지 그정도면? 그런 몇푼이라도 벌어주는 경쟁피티 사무라이, 운영보조,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인 이유 ‘자체 프로젝트’ 모두를 동시에 해내기 위해서 우리는 오히려 사무실 결핍증/싫어증을 걸쳐 선택적 출근제에까지 오게 되었다. 벌이는 그 여느때보다 좋다. 쓸데없는 지출이 정말 0원에 수렴하게 되었거든! 물론 귀찮은 점도 있지만, 그걸 귀찮다고 느끼는 내 마음이 꼰대고 대표병 걸려서 그런거라는 직원의 성심 어린 조언 (이 워딩 그대로 썼음)에 따라 그냥 잊어버리고 나도 집에서 피파나 몇 판 더 하게 되었다. 이런 선택적 출근제, 우리가 트위터보다 6개월이나 빨랐다. 내가 트위터보다 앞설 수 있는 건 평생 ‘내가 걔네 대표보다 한국말 잘해-‘ 정도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태함도 극의에 이르다보니 우리만의 오의를 하나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진흙 속에서 핀 꽃 같다고 스스로는 자축하고 있다. 사무실 결핍증, 사무실 싫어증, 완전 선택적 출근제 모두 어떻게 보면 위기였을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그냥 극복해야 했을 게으름의 표상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이걸 고치려고 노력했으면, 지금 이렇게 말년병장 내지는 동원예비군 1년차처럼 필요할 때만 최소한의 힘으로 최소한 호다닥~ 후딱~ 일을 끝내가며, 각종 대형 광고회사들의 일하는 방식에 딴지를 걸 수 있었을까? 나는 이걸 기회라고 봤다. 뭐- 사실 이렇게 뭐 혁신가처럼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큰 회사보다 돈은 못 벌지만, 우리는 편하게 일하지롱’ 같이 누군가를 조롱이라도 하면 기분이라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뭐라도 해보다가 이런 걸 얻게 된 셈이고, 애초에 ‘스타트업을 하면 개처럼 일해야해’ 같은 이상한 기조가 마치 젊은 애들은 그럴만한 체력과 여유와 곤조 없이는 사업도 하지마! 하고 일갈하는 윈도우95세대들, 닷컴세대들의 액티브x급 매크로 꼰대소리 같아서, 그냥 우리 같은 나태한 애들도 적당히 각자 차 굴려가면서 적당히 집에서 피파 스쿼드 구단가치도 키워가면서, 나름의 포트폴리오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정확하게는, 우리가 일 열심히 할라고 나온 것도 아니고, 회사에 떼이는 돈 없이 100% 돈 받아가면서 행복하게, 놀고 먹으며 멋있는 기획자인 가오만 지대로 부리고 살라고 시작한 거였으니까, 우리 같은 사회부적응자들도 사업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고, 쓸모가 없다고 사회에 존재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혹은 우리 같은 부적응자들이 많아져야 오히려 세상이 재밌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에, 그 나태함이 극대화 될 수 있는 방법만 찾아 갔던 것이다.
- 라고 존나 멋있게 포장하면서 끝내보겠다. 이 글도 회사에서 에반게리온 리뷰보다가 할 게 없어서 쓴다. 다음 편은 혼자 광고회사 하면서 가장 빡센 ‘여러 명이 쓴 듯한 기획서 쓰는 법’에 대해 두 명 이상의 견적을 청구하고도 오히려 ‘돈을 깎아줬나보다 이사람...너무 고마운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만의 꼼수를 공유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