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PENTAX MZ-S)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교통수단이 잘 발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스마트폰이 발달한 요즘은 지도 어플만 있다면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도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더욱이 "1일 패스"같은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GPS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금방 위치를 잡아준다. 내가 원하는 곳의 정확한 명칭만 알고 있다면 최단 시간에 이동 가능한 교통수단은 금방 알 수 있다.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홋카이도에 갔던 적이 있었다. 공항에서 삿포로 시내까지 들어가는 버스와 기차의 가격을 비교했을 때 기차가 훨씬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기차는 정해진 40분 안에 무조건 도착할 수 있었고, 버스는 그날 교통 상황에 따라 1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기차를 탔다. 여행지에서 돈을 얹어 주고서라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시간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껴서 확보한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서부터 다시 선택의 문제이다. 100명의 어머니에게서 100가지의 손맛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100명의 여행자에게서 100가지의 여행 스타일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을 쓰는 방법이 모두 재각각은 아니란 뜻이다. 커뮤니티의 발달로 인해 요즘은 대부분 가야 할 식당, 사야 할 물건이 정해져 있고 심지어 사진 찍을 포인트까지 대부분 비슷하다.
그런 여행 방법의 장점은 편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짜 놓은 일정표에 맞춰서 열심히 다니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행에 있어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괜히 별것 아닌 선택의 문제를 가지고 여행까지 가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즐기기만 하면 된다.
새로운 재미의 발견을 위해 열심히 아껴 쓰고 저축해서 모은 시간을 낭비해볼 때가 왔다. 지도에서 표시해주는 지름길 말고 다른 길로 한 번씩 가보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촉이 올 때 무작정 내려보는 것이다. (1일 패스 구매자에 한함) 여행 책에 소개되지 않은 동네지만 그리 멀지 않다면 한 번 찾아가 보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참 흥분되는 일이다. 모두가 다 아는 그 여행루트를 벗어난다는 사실이 그렇고, 관광객이 득실거리지 않는 조용한 도로가 더욱 그렇다.
교토에는 유명한 사찰이 많다. 가을에 가면 낙엽 축제를 하는 사찰도 있고, 봄에 가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마음껏 걸을 수 있는 사찰도 있다. 내가 처음 교토를 방문했을 때는 가을이었는데 은각사 주변이 가장 아름다웠다. 보통 은각사 앞으로 난 '철학의 길'은 봄에 벚꽃으로 유명하지만 가을 역시 산책하기에 참 좋았다. 그렇게 철학의 길을 걷다가 친구와 장난기가 발동하여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만난 여러 풍경들은 실제 일본, 교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진짜 일본을 느끼게 된 것 같아서 참 좋았다.
사진집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을 사서 감상했던 적이 있다. 서울의 골목길을 소재로 40년을 넘게 사진을 찍은 김기찬 작가의 사진과 글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의 유명 사진과는 분명 거리감이 있다. 멋지거나 감탄을 자아내지도 않지만 그 속에는 서울의 참모습과 그간의 변화가 담겨 있었다.
교토의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내가 느끼고자 했던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일본의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모습만 보고 온다면 굳이 교토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교토의 유명 건축물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더욱더 일본스럽고, 교토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를 추구했다. 가끔은 맛집이 즐비한 정신없는 거리에서 벗어나 조용히 걸으며 교토를 진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마치 그 동네 사는 사람처럼 말이다.
-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