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츠스케일링의 연결고리가 끊긴 시점, 스타트업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올 한해, 스타트업씬에 찾아온 투자 한파는 기존 성장 공식에 회의론을 제기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맹렬한 속도로 몸집을 키워 경쟁자를 따돌리는 블리츠스케일링이 최근 몇 년간 스타트업의 성장 바이블로 통했다면, 금리가 오르며 VC들이 투자를 대폭 줄이자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날개를 조립하는 동시에 엔진에 불을 붙이는' 속도 위주 확장 전략을 구사하던 몇몇 조직은 투자라는 동력을 잃자 속절없이 해체되었고, VC들은 이전과 달리 효율과 안정성을 입증하길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이 한층 강화된 이런 전환 국면에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제품과 시장의 합(PMF)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 사실 블리츠스케일링 개념을 제시한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도 저서에서 "PMF가 맞지 않으면 블리츠스케일링은 아주 고통스럽고 빠른 '블리츠페일링(Blitzfailing)'으로 이어진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이 조언을 염두에 둔 듯, 속도가 아닌 시장검증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델로'는 블리츠스케일링 공식이 무너진 올해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옥석이 가려지는 순간, 결정적인 것은 충실히 닦아온 기본기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델로는 패키지에 전문화된 디자인 업체로 출발했다. 7년간 회사에서 일하며 쌓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창업에 나선 것이다. 퇴직금에 사비를 탈탈 털고, 대출까지 받아 시작한 사업이었다. 외주 디자인 작업을 제외하면, 시제품 개발과 생산에 투자해야 할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은 구조였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시장에서 발견한 가능성이었다.
델로 이동윤 대표는 조카가 생긴 후, 플라스틱 소재 장난감의 인체 유해성과 방 한가득 쌓여가고 버려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문제에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환경적인 동시에 인체에도 무해한 소재로 장난감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종이 패키지를 오랫동안 다루었던 만큼, 지기 구조에 대한 이해를 십분 활용하여 종이 장난감에 입체성과 견고함을 부여했다. 기존 페이퍼토이들이 붙이거나 홈을 파서 끼우는 방식에 그쳤던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 움직임을 가미하자, 한층 풍부한 확장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사비를 털어 제작한 '아트봇' 시제품을 들고, 그는 미국 라스베가스 소비재 박람회에 참여했다. 시장 검증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응은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뜨거웠다. 가지고 간 샘플을 모두 판매한것은 물론, 업체들이 남긴 명함만 수백장이 쌓였다. 캐나다 정부 교육기관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장난감의 친환경적 접근에 대한 반응을 확인한 그는, 국내로 돌아와 본격 상품화와 시장 찾기에 돌입했다.
본사가 충주에 있었던 만큼, 넓은 시장은 아니었다. 지역 아동 센터, 교육 기관 등에 제품을 기부하기도 하고, 체험단을 모집하기도 하면서 사용자 피드백을 수집했다. 1년여 고객 반응을 살피며 얻게 된 결론은, 국내 시장은 해외와 달리 부모님들이 아동 장난감의 교육적 요소에 대한 니즈가 크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수도권과 달리 지역의 아동들에게는 창의 교육 시설이나 인프라가 충분치 않다는 것도 발견했다. 이렇게 시장을 먼저 살피자, 제품을 디벨롭해야 할 방향이 보였다. 종이라는 소재 자체가 인터렉션이 많다는 점을 활용, 조립을 통한 감각 및 두뇌 활동을 강조하고, 멸종위기 동물, 공룡 등 스토리를 부여하여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요소를 더했다.
본격적인 고객은 판로 개척을 위해 공들인 마트와 백화점 문화센터를 통해 유입됐다. 제품과 함께하는 체험교육이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충북 권역 모든 이마트 문화센터에 납품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더해 ESG 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기업들의 니즈에도 맞아떨어져, 글래드 호텔의 어메니티,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의 사은품 제작 등 협업 제안과 주문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동윤 대표는 영업에도 적극성을 놓지 않았다. 1년여 시간을 들여 개발한 마블 시리즈 시제품을 들고 디즈니 코리아에 직접 찾아갔다. 디즈니 코리아 뿐만 아니라 디즈니 본사에서도 관심을 보여, 해외 판매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반응을 얻었음은 물론, 이례적으로 감면된 비용으로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여 마블 가면 시리즈도 출시할 수 있었다.
애초 해외 시장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던 만큼, 올해는 포르투갈 박람회에 참여해 유럽 시장 반응도 검증했고 포르투갈의 투자사 및 독일 업체와 미팅을 이어가며 유럽 수출을 논의중이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와 기준이 높은 유럽 시장에 적중한 것이다.
이 모든 스토리가 진행되는데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소재 개발과 발굴, 디자인, 제작까지 '아트봇'을 만드는 과정에만 4년여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었다. 본격적으로 큰 매출이 나기 시작한 올해를 제외한 3년여의 긴 시간동안 비용은 외주 디자인으로 얻은 수입으로 충당했고, 대표는 비급여 근무로 버텼다. 그럼에도 이 기간동안 구성원 중 이탈한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이런 버팀의 시간이 가능했을까?
"이 제품만큼은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아트봇을 상품화하기 전, 미국에서 이미 시장 반응을 확인했으니까요. 사업을 한다면 대표는 제품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사업같은 경우 개발 단계에서는 빠른 매출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그럼에도 제품에 대한 100%이상의 확신이 있기에, 천천히 성장해도 두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실패 없는 성장 방향이죠."
'빠르게 성장하는'이라는 수식어가 자동 완성처럼 따라붙는 것이 필수가 된 창업 시장에서, 속도와 규모가 아닌 꾸준함과 방향성을 지표삼아 만들어가는 아트봇의 성장은 되려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사실 거기엔 진부하리만치 기본적인 핵심이 숨어있었다. 시장을 먼저 검증하고, 시장 중심 성장을 지향한다는 것. 그리고 시장이 옥석을 가리기 시작한 시점, 본격적인 성과로 시장의 선택을 받기 시작한 아트봇은 확신으로 가득했다. 시장과 제품의 합을 찾아온 시간들이 속도와 무관하게 빛을 발하리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업이 잘 되면 당신은 언제라도 더 많은 ‘자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경쟁 우위를 만드는 것은 ‘지혜’입니다. 자원은 사라지지만 지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혁신을 일으키려면 자원만이 아니라, 지혜를 갖춘 팀이 되어야 합니다. 언론은 투자 유치 소식을 찬양하며 이 사실을 덮어버리지만, 사업 초기 단계에서의 제약은 ‘견실한 회사 운영’, ‘높은 마진’, 그리고 대기업이거나 자원이 풍부한 스타트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기 인식'을 위한 길을 닦도록 만듭니다. 자원은 왔다가도 사라지는 것이지만, 지혜는 사업 전반에 걸쳐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근육과도 같습니다."
- 스콧 벨스키, <어도비 CPO의 혁신 전략(The messy middle)> 중
델로가 구성원의 이탈 없이 긴 시간을 버텨내 끝내 가능성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더 많은 자원 혹은 더 빠른 성장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기보다, 팀이 지혜를 갖는 일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언더독스는 창업교육 No.1, 창업교육씬의 게임체인저입니다. 언더독스의 첫 창업교육은 2015년 9명의 예비 창업가들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언더독스가 선보이는 창업교육이 지속적으로 시장의 표준이 되어, 시장을 이끄는 리더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언더독스는 세상의 다양한 변화는 창업가들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창업가에게 가장 필요한 창업교육과 생태계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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