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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보 Oct 19. 2021

기능과 존재

1.

    나는 잘못된 생태계에 태어난 개복치이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 죽을듯이 상처를 받아서야.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나 있게나 설계된걸까? 나는 잘 못 태어났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이 나를 왜 싫어하는지, 왜 갑자기 혼내는지 감을 잡기 힘들어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잘 해주었다가도 갑자기 내 곁을 떠났으며 그 이유를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것에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이유가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작동했으나 기능할 수 없는, 그저 육신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

    나의 형은 어린 시절부터 많이 아팠다. 잠깐씩 그나마 건강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끝내 백혈병이 재발했다. 내 기억 속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형은 16살이 되던 해 끝내 죽어버렸다. 그리고 형의 죽음 이후 어머니와 나의 유대는 완전히 끝나버렸다. 나는 어머니의 감정을 전혀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의 빈자리를 채워주고자 어머니 옆에 다가가면 '형이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 약은 게 지 몫 챙기려 한다'고 욕을 먹었고,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방 안에 숨어있으면 '자식이라고 하나 남은게 어미의 마음 위로할 줄도 모른다'며 역정을 내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저 버러지 같은 것이 식충이가 되려한다'고, 공부에 몰두하면 '지 잘난 줄 알고 산다'고 했다.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어머니의 잣대는 나를 극단적으로 주변 눈치를 보고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해 의심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나의 우울은 거의 고통에 가깝다. 이건 마음을 무겁게 하며 몸살처럼 온 몸을 더 여리게 만든다. 실제로 그럴때면 몸이 아팠다. 조그마한 눈초리에도 나는 아주 베어지고 부서진다. 마음은 4년 전 처럼 또 베어지고 그 사이로 잡념이 채워진다. 아주 해로운 잡념이다.

자괴감, 질투, 오해, 후회, 외로움, 우울함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끝끝내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잊지않고 챙겨주었던 아침상과, 이따끔씩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애가 알아서 공부는 잘 찾아서 하더라구. 공부에는 과외든 학원이든 따로 시켜본 적이 없어.' 라며 자랑하고 다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들은 마지막까지 그저 어머니가 상실에 너무 마음이 아팠고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남달랐다고 꾹꾹 눌러 믿도록 하는 조악한 닻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런 인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어머니 때문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마침내 인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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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이미 엉망이 된 나는 다른 원인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학창시절은 대부분 생태계 최하위권에 머물렀고, 특히 장태권이라는 놈은 지독하게 나를 짓밟았다. 나의 사소한 특징들까지 공공연한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려, 아이들은 그 것을 듣기만 해도 자동반사로 깔깔대곤 했다. 나를 정의하는 것들이 그 자체로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나 조차도 나를 두둔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약자였기 때문에 나의 행동과 태도를 다른 이들에게 납득 시키는 일은 너무 힘든 것이었다. 대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나 조차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누가 내 쪽에 서려 할까.


    가끔 그를 생각한다. 그에게도 어느 어두운 저녁이 드리울까. 그도 목을 매달고 싶은 순간이 와 혼자 누워 스스로 목을 조여볼까. 그에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이 드리운다면 나는 꼭 말해주고 싶다. 너도 누군가에게 이러한 지옥이었다고. 그러니까 힘들지말라고.




2.

    성인이 되어서는 다행히 기숙사가 있는 타지의 대학에 진학했다. 이는 어머니와 장태권으로부터의 이별을 의미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사람으로서 구실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사회생활을 하기에 극단적으로 불안해버린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4인실에 배정 받았다. 한 방 안에서 그들과 깊숙한 사생활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3명의 마음을 추가로 더 걱정 리스트에 추가하는 일이었다. 한 명은 잠들기 직전까지 방 안의 모든 불을 켜놓었고, 한 명은 여러개 설정해 둔 알람을 하나도 제 때 끄지 않았고, 한 명은 우리 모두를 자기 뜻 안에서 통솔하길 원했다. 그리고 나는, 학창시절부터 나의 별명이었던 ‘코골이’가 문제였다. 장태권이 나를 코 드럼, 코 놈 등으로 부르는 바람에 나는 코를 골까 두려워 남들과 함께 있을 때 절대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밤에 선잠으로 뒤척이고 낮 시간에 잠깐씩 방이 비면 낮잠을 억지로 자는 생활을 이어갔다. 나는 피폐해지고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으나 그 스트레스를 제대로 항의할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쌓아둘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흔든 콜라캔 처럼 나의 분노는 갈 곳 모르고 터져나갔다.


    때문에 한 학기가 채 지나기 전에 도망치듯 기숙사에서 나와야했다. (사실은 퇴출당하기 직전에 제 발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 몰래 자취를 시작했다. 급하게 구한, 집 볼 줄 모르는 갓 20살의 내가 구한 집은 당연하게도 문제가 많은 곳이었다. 윗집 사람이 자꾸 음식물을 변기에 버리는 바람에 6개월에 한 번 씩은 전문 업체를 불러 수도를 뚫어야 했고, 보일러는 신발장 언저리만 간신히 따듯해졌다. 나는 또 나답게 웬만한 문제로는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참고 살곤 했다.


    하지만 기어코 변기물이 내려가지 않았을 때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이러한 일상의 문제들을 누구에게 물어보고, 연락하여 해결해야하는지 배운 바가 없었으므로 스스로 해결 방식을 찾아야 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우선 집 주인에게 연락하여 문제 해결을 요청하거나, 관련 업체에 전화하여 문의할 것이다.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나 인터넷 검색창에 문제를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것은 우습게도 변기의 역사부터 찾아보며 그 이론에 대해 탐독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변기의 역사와 발전 과정은 단순히 그것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수도와 건축의 변천사와 관련되어 있었다. 도시의 수도시설이 발전하고, 사람들이 대도시에 몰려 살며 층층히 쌓인 공동 주택에 살게 되며 건물 내 하수 처리 과정이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에 이르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좌변기의 구조에 이르렀다.


    변기의 물탱크 안에는 물 내리는 버튼과 연결된 마개가 있는데, 그것이 물 탱크 안의 물을 변기로 내려주며 물을 내리게 된다. 나의 문제의 경우 그 버튼과 마개를 연결하는 선이 끊겨 있던 것이 다였다. 변기의 구조와 물이 내려가는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나자, 자연스럽게 그 해결 방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고무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마개에 달린 고리에 선을 끼워넣었다. 벌써 삼일째 어쩌지 못하는 변기를 마냥 닫아둔 채, 학교 나 지하철 역 화장실을 사용하던 차였다. 버튼을 내리자 닫아둔 변기 안에서 경쾌한 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상한 짜릿함을 느꼈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나는 인생의 어떤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었다. 어떤 것의 원리와 구조를 알게 되면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다.


문제가 고쳐 질 수 있다.

잘 못된 일이 바로 잡아질 수 있다.



    그 때 부터 나는 집의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고쳐나가는 일에 집중했다. 이는 보일러의 종류를 이해하여 제대로 된 것으로 교체하는 것 부터 못을 걸 수 있는 벽을 찾아 액자를 거는 일까지 해당되었다. 집을 이해하고 고쳐나가는 것은 나의 삶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나는 나를 돌볼 수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3.

    우리는 숨을 쉬고 소화를 하고 심장을 뛰며 살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장기들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해도 우리는 내재된 본능을 통해 생존해나간다. 건물에서도 역시 그 안에서 전기를 쓰고 물을 내라고 환기된 공기를 마시지만, 그 구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작동 되는 것은 딱히 아니다. 하지만 장기들의 몸을 유지하는 과정을 알고 있다면 건강함의 방도를 알게 되는 것 처럼, 건축의 많은 요소들을 인지하게 된다면 공간을 조금 다르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공간은 많은 것들과 연결되고 끊임없이 기능한다. 마법이 아닌 과학과 기술에 의해 주거의 기능들이 작동한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는 묘한 위로가 되었다. 그것이 마법이었다면 나는 영영 아무 원리도 해결책도 알아낼 수 없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잠이 깬 새벽 즈음 좁은 원룸 한 가운데 누워 조용히 손을 맞대고 숨을 쉰다. 그러면 바쁜 낮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것은 건물이 작동하는 소리이다. 배관이 울리는 소리, 물이 내려가고 공기가 흐르는 울림. 나는 잃어버린 어머니의 자궁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낀다. 내가 어느 누군가의 세포가 된 것으로 느껴진다. 나는 언제나 어느곳에 일원으로서 소속되어 있는 나를 상상하지 못해왔다. 하지만 배관들과 시스템으로 둘러싸여 구성된 이 작은 방 안에서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온전한 존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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