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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보 Oct 19. 2021

월국 건축사 (1)



   월국은 동아시아 4국 중 가장 작고 폐쇄적인 나라이다. 이렇다할 개성이 없고 존재감이 없다는 것도 나라의 특성이라면 특성일 것이다. 다들 경쟁력이 없다며 말렸음에도 내가 월국어를 전공한 이유 역시 이러한 월국의 입지 때문이었다. 수요는 적지만 월국어를 배운다면 적당히 굶지는 않으며 잔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후 국내 식품회사에 취업했으나 금방 퇴사했고, 이후 운이 좋게 중소기업과 월국 사이에서 일하는 현지 코디네이터의 자리를 얻게 되었으니 그 예상은 그럭저럭 맞는 편이었다. 1년 중 8개월 이상은 월국에서 지내는 생활을 하며 월국인과 월국 문화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생각보다 더 특징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역사가 짧아 문화가 두드러진 것도 아니고 나라에 천연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며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조용조용한 국민성 덕에 월국은 매번 꼭 동아시아 4국 중에서도 쉽게 잊혀지는 나라이다. 그것 역시 참 나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딜 가든 꼭 그렇게 잘 묻힐 수 있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더라도, 누구에게도 큰 인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고 무언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지만 그래서 특별히 질투나 질타를 사지도 않았다. 그것이 나의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월국 생활이 좋았다. 이 타국을 영혼을 울리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불편하지 않았다.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과 월국을 잇는 이 직업은 적절한 통역과 어느정도의 월국 이해도만 있으면 크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월국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음에도, 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 역시 크게 들지 않게 했다. 미래에 대한 정교한 계획은 없었지만 지금이 꽤 만족스러웠다. 아니, 만족스럽다는 생각은 사실 해본 적이 없으나 지금 크게 불만이 없고 그저 하루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는 점에서 그렇게 혼자 결론 내린 것이다.


   저번주 부터 새로 맡은 업무는 한 중소 규모의 건축사 사무소의 프로젝트 인데, 몇가지 통역과 식당 예약을 한 것 외에는 딱히 해줄 일도 없었다. 그 사무소의 팀장이 월국 교환학생을 했었다며 워낙 어필을 하는 바람에, 나는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을 겸, 내심 알아서 일 처리 하는게 나쁘지 않은 겸 그가 문법에 잘 맞지 않는 월국어로 현지 사무소와 소통하는 것을 일단 내버려 두었다. 대화가 잘 이루어 지지 않으면 끼어들어 제대로 통역해주려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차피 대화는 사진과 도면을 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크게 정정해 줄 내용은 없었다. 다들 대강 알아듣는 눈치였다. 처음에는 나 나름대로 놓치는 내용이 있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며 발표를 듣고 있었는데, 이미지와 함께 듣다 보니 흥미로워 나도 모르게 몰입하여 듣고 있었다.


   월국 해변에 리조트를 짓는 프로젝트였다. 대상지 주변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해변이었는데 한 때는 그곳이 자살 바위라고 여겨지기도 했단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곳에 리조트를 지어 그 이미지를 덮어 없애려는 것 같았다. 암벽을 최대한 깎지 않고 그 능선을 살리며 또 하나의 봉우리같이 보이도록 설계한 리조트는 건축을 하나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꽤 멋져 보였다. 마치 돌 모티브 포켓몬이 위장을 하고 있다가 눈을 뜨는 것처럼, 암벽 중 하나가 잠에서 깨어난 것 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마치 건축주나 리조트 회원이 된 듯이 아무 생각 없이 발표 내용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리조트는 4가지 타입의 객실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 가장 비싼 타입은 객실 내에서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저기서 한 일주일 숨어 있어도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월국 건축 회사 측에 눈에 띄게 어린 여직원 하나가 갑자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잠깐 그녀가 나에게 반했다거나 하는 착각을 했지만 이내 그녀는 내 앞에 놓인 종이를 툭툭 치며 팀장의 월국어 중 틀린 부분을 짚어주었다. 월국어 실력 뽐내기에 한창인 팀장 덕분에 잊어버렸지만, 이를 제대로 정정하고 정확한 소통을 이루는 것이 통역가인 나의 역할이다.


“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이 부분은 자료랑 약간 다른 점이 있어 확인차 여쭤 볼게요. 객실 타입이 몇 제곱미터라고 하셨죠? 아, 월국어가 숫자가 워낙 발음이 애매하다 보니…”


   리조트 미팅은 나쁘지 않게 마무리 되었다. 아무래도 협의가 길어지는 부분이 있다보니 양측이 조금 더 준비해 다음 주에 다시 만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시간은 이미 7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도 크게 한 건 없었지만 배가 요동치듯 고파왔다.


“선주씨도 회식 가시죠?”

한국 건축팀 팀장이 제안인지 확인인지 모를 질문을 했다. 배도 고팠고 집에 가서 요리를 할 힘도 없었다. 회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들이 간다는 월국 전통 전골집은 이 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제가 가도 되는 자리인가요, 허허.”

“당연하죠! 오늘 고생하셨잖어요.”

내가 고생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적당히 끼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 그럼 그럴까요. 거기 전골 기가 막힙니다.”


   전골이 보글보글 끓는 와중에 잔은 계속해서 비워지고 채워졌다. 아까 나에게 팀장의 틀린 월국어를 지적해 주던 직원은 내 옆에 앉아 끊임없이 손을 놀려 전골을 뜨고, 수저를 분배하고, 술을 채웠다. 포지션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이 팀의 막내가 분명했다.


“월국어를 좀 하시나 봐요. 아까는 감사했어요.”

나는 그녀에게 예의상의 인사를 했다.

“저 월국인이에요.”


그녀는 월국어를 잘하는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어를 잘 하는 월국인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월국 사무소측 직원이니 월국인일 가능성이 더 컸지만 나는 그녀의 옷이나 화장 분위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


“어, 그렇군요. 미안해요. 한국어를 잘하시는군요.”

“아니에요. 한국에 오래 살았어요.”

그녀는 살짝 웃었다.

웃으니 나이가 아주 어려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또래나 1-2 차이일 것이다. 나는 그것에 이유모르게 안도했다.


술자리는 팀장의 발음 샌 월국어와 월국팀 차장의 알 수 없는 대화로 시끄러워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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