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형 버리기
1.
길었던 학기가 마지막 크리틱과 함께 또 다시 맥없이 끝났다.
미주는 여태껏 열심히는 해왔으나 설계로 상위권 성적을 받아본 적은 없었기에, 4학년 1학기 설계 스튜디오만은 잘 해보고 싶었다. 완성도 높은 건물 설계와 방학동안 연습한 렌더링으로 화려한 마감을 결심했었던 것이다.
분명 중간 크리틱때까지만 해도 교수님이 미주를 보는 눈빛이 신뢰와 기대였던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마감은 타협과 어디서 본 것들로 완성되어버렸다.
그녀의 프로젝트는 추모관이었는데, 심오한 영화와 글귀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건축 개념을 만들어 냈었다. 생과 삶, 윤회와 남은 자들의 시선이라는 도입은 그럴 듯 했으나 그것을 공간으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말 크리틱 발표를 위한 60장 짜리 ppt와 건축 모형 두 개를 위해 번번이 밤을 새워 왔으며, 마지막 일주일은 거의 10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그마저도 설계실 의자에 쪼그려 잔 것이 다였다.
거창하게 시작했던 추모관 프로젝트였으나 미적지근한 결과물으로 마무리 되었다.
기말 크리틱은 교수님이 어떤 말을 해봤자 어차피 프로젝트 자체는 끝났다는 점에서 허무하고 개운하지 못한 일이다. 역시나 미주는 결국 거창한 개념을 공간으로 끌어오지 못했고, 적당히 현실성을 고려해 배치한 납골당 일반실들의 배치가 지나치게 평이해 재미가 없다는 평을 들었다.
대단한 칭찬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오래 애정과 시간을 쏟은 그녀의 작품이 형편없이 공격당하는 것을 보며 맥이 풀렸다.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마감은 했고, 그녀의 마음에는 웬만큼 들었고, 그냥 일단은 이 프로젝트를 그만 보고 싶었기에 끝났음에 기뻤다.
모든 학생들의 기말 크리틱 발표가 끝나자 방학은 예년보다 일찍 시작한 여름 더위와 함께 당황스럽게 닥쳐왔다.
미주는 마감만을 바라보며 모든 에너지를 다 써 온 터라, 방학의 계획은 생각치도 못하고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기말 마감은 곧 방학의 시작이라는 것을 까먹곤 갑작스럽게 닥쳐온 공백의 시작을 마주하고 만다. 어쨌거나 일단은 마감을 끝냈으니 수고스러웠던 자신에게 긴 휴식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심히 했건 안했건 종강의 희열에 휩쓸려 다들 몰려가는 종강 파티에 정신 차리고 보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가희 너는 방학때 뭐 할거야? “
”아 난 이청민 교수님이 뭐 일 좀 하라고 하더라구..”
가희는 본인이 받는 특혜가 민망한지 입꼬리를 비틀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이청민 교수님이면 광해건축 인턴?”
“어어. 아네.”
“알지 그럼. 거기 경진언니도 다니잖아. 좋겠다!”
“그냥 뭐. 방학 때 놀려다 잡혀갔지 뭐.”
미주는 이청민 교수님이라면 왜 자신에게 먼저 인턴 제의를 하지 않았는지 술이 씁쓸했지만, 잘됐네. 거기 인턴들한테 잘해준다더라. 라고 하고 말았다.
여진 언니는 본가에 내려가 건축 기사 시험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고, 창현은 다음 학기를 휴학하고 방학부터 시작되는 장기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본인 만큼이나 대책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동기들이 모두 제 나름의 계획이 있음을 알게 되자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다들 일단 한 일주일 쯤 알람 없이 늘어지게 자고, 배고플 때 먹는 원시 생활을 하고 나서야 계획을 짜는 줄 알았다. 미주는 4학년인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녀는 취기가 오르는 와중에 뒤쳐졌다는 불안에 목구멍이 확 막히는 기분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나 더 있었다. 그녀가 4년동안 개인 창고처럼 쓰던 밴드 동아리실을 비워달라는 경고를 받은 것이다.
주축이었던 선배들이 졸업하면서 밴드는 급격하게 망해갔고, 그나마 남아있는 부원들의 관심에서 사라져갔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활동했던 미주는 매 학기마다 그들의 명단만 겨우 제출해가며 유명무실한 밴드의 숨만 붙여놓았다. 밴드에 특별한 사명감을 느껴서는 아니었다. 그냥 그녀는 자신이 한 번 가진 것을 버릴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주의 별명은 저장 강박증이었다.
학기가 다 끝나고 짐이 되어버린 건축 모형들을 도저히 버리질 못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건축학과 고학년이 될 수록 건축 모형뿐 아니라 한 쪽이 멀쩡한 우드락조차, 거의 다 쓴 본드 조차 버리지 못했다.
“강미주, 스터디 모형정도는 좀 버려. 저거 다 너의 미련이고 집착이야.”
6명이 함께 쓰는 스튜디오가 그녀의 잡다한 모형으로 꽉차자 연희언니가 잔소리를 했다.
“너 저거 어차피 다 사진도 찍어 놨잖아. 나중에 필요할까봐 그래?”
“버리긴 해야죠…. 어차피 디자인도 중간 크리틱 이후로 다 바뀌었어요.”
미주는 허허 웃으며 모형을 치우는 시늉을 하긴 했으나 쓰레기통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녀는 모형이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앞으로 다시는 보거나 만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존재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속 제 3국 소년이 꿋꿋이 살아나갔으면 하는 것 처럼, 유럽 여행에서 길을 잃어 만난 예쁜 카페가 폐업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처럼. 평소 딱히 팬이 아니었던 연예인이었지만 나쁜 선택을 하지 않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 처럼.
죽지 않고 소멸되지 않고 이 세상 어딘가에서 꼭 존재하기를. 세상의 사라진 것들이 가는 천국이라도 있다면 이 정리가 조금이라도 쉬울까.
미주는 스튜디오에서 눈치가 보이자 종강마다 늘어나는 모형을 밴드실에 모셔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거의 처박아두는 식으로 쌓아두었다. 스터디 모형, 크기가 꽤 되는 석고 모형, 느낌만 보려고 대충 만들어 본 매스 모형까지 그녀의 한 학기의 역사들이 밴드 부실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유령회원들 중 몇 명이 졸업을 하게 되며 더 이상 가짜로 명단은 채워 넣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녀의 친구들로 채워 넣어볼까 했지만 이미 몇년 째 공식적인 공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행정실에 들켜버렸고 결국은 퇴거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종강파티 직전 그녀가 잠깐 들른 동아리방은 그녀만의 박물관, 살아있는 역사였으나 남들의 눈에는 그저 답없는 쓰레기통일 뿐이었다. 이 더운 여름에 그걸 하나하나 분류하고 치울 생각을 하니 머리가 다 아팠다.
“미주는? 방학때 뭐 할거야?? “
“나는.. 모형을 버려야 할 것 같아.“
2.
종강파티가 끝난지는 일주일이 막 되었으나 미주는 학교 근처로 가보지도 않았다. 모형을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는 마음의 큰 짐만 진 채로 늘어지게 자고 배고플 때 먹는 원시의 삶을 누렸다. 일주일 쯤 지나자 이제 슬슬 유튜브에 있는 재밌는 영상은 다 본 것 같고 누워 있는 것이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드디어 늘어난 옛 반티를 벗고 사람다운 차림새로 학교에 향하기로 결심한 것이다.각오는 했으나 오전부터 햇볕은 진했고 학교로 향하는 십분 남짓한 시간에도 땀은 주륵 흘렀다. 그냥 이대로 다시 돌아가 에어컨을 켜고 침대에 누울까 싶기도 했으나 그런다고 해도 언젠가 다시 이 길을 똑같이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던 길을 재촉했다.
“7월 23일 까지 안에 있는 거 다 치워주시고, 저한테 열쇠 주시면 돼요. 학교 차원에서도 업체 청소 맡길 거라서 기간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행정실 직원이 미주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행정실 사람들은 왜 갈 때마다 다른 사람이 있는지, 그리고 왜 다들 하나같이 정없이 구는지 모를 일이었다.
동아리실이 있는 학생회관 건물은 학교에서 가장 오래 된,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리고 밴드 동아리실은 5층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같이 후덥지근한 날 올라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뒷머리를 틀어 올려도 두피 사이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혀 목덜미 사이로 흘렀다. 미주가 평일 오후 이런 애매한 시간에 모형을 버리기 위해 학생회관 계단을 오를 동안 다른 동기들은 제각기 자신의 길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얻고 더 빠르게 찾아다니지 않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자꾸만 까먹는다. 가희도, 여진언니도, 창현도 미주에겐 일언반구도 없이 방학의 여정을 떠나버린 것이 못내 서운했다. 일주일간 아무 생각 없이 쉬긴 했어도 미주는 아직도 학기의 열기를 붙잡고 있었다. 유독 5층까지의 길이 길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처럼 느껴졌다.
‘원래 모형이 이렇게 많았나?’
동아리 실 문을 열자마자 미주는 쓰러질 듯 쌓인 모형을 보고 당황했다.
모형들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3배는 더 많아보였다. 안그래도 비좁은 동아리실에 작디 작은 창문 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조립 되지 못한 모형 조각들과 쓰다 만 재료들이 완성된 모형 사이사이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간 밤에 누가 더 가져다 놓은 것이 틀림 없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눅눅한 습기 속에 불어난 것이 아닐까.
그녀는 정글 탐험대 처럼 모형과 미처 모형이 되지 못한 것들 사이를 간신히 헤쳐나가 창을 열었다. 창은 먼지와 거미줄이 뒤덮여 그녀가 밀자마자 거대한 모래 먼지를 쏟아내었다. 땀 범벅이 된 미주의 팔과 등에 그 먼지는 그대로 달라 붙어 쉽게 떼어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동아리실을 그녀가 마음대로 사용한 이후 단 한번도 환기를 시킨 적이 없었단 말인가?
생각해 보면 그녀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남들보다 뛰어났으나 그것을 정리하는 능력만은 조금 떨어졌다. 그녀가 항상 학기 중간까지는 교수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다가 결국 마감에 가서는 미적지근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되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일단 사용 가능한 모형 도구와, 모형 완성품을 복도로 빼 내고, 나머지 애매한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리를 해 나갈수록 완성품과 가차없이 버려야할 스터디 모형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에겐 모든 과정이 반짝이는 영감의 순간이었다.
이러다간 정말 아무것도 버릴 수 없겠어.
미주는 이미 너무 지쳤기 때문에 빠른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뒷덜미는 이미 땀으로 다 젖었고 속옷 사이로 불쾌한 땀줄기가 흘렀다.
그녀는 우드락을 씌우고 있던 커다란 비닐 하나를 구석에서 찾아 닥치는 대로 쑤셔박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들여다 보며 사랑을 쏟진 못하더라도, 아니 남은 인생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꼭 이 지구 어디엔가 존재했으면 좋겠는 것들이 있다.
미주에겐 그 모형들이 그렇게 아까웠다. 마감에 시달리며 석연치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최종 발표를 망치고 왔을 때는 설계실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하염없이 학기를 돌아보곤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누구 못지 않게 밤을 새고 고민을 했다. 교수님과 첫번째로 디자인 방향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었을 때, 학점 걱정을 하지 말고 원하는 걸 밀고 나갔어야 했나. 교수님의 의견을 반영할 거라면 차라리 제대로 들을 걸 그랬나. 모형에 돈을 써야할 때면 그녀의 다음 달 밥 값과 잠깐 저울질을 해 보다 다음 달은 제일 싼 학식 메뉴로 버티면 되지, 하며 더 망설이니 않고 돈을 지불했다.
어쩜 그렇게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 건지.
땀에 젖는 것은 이미 막는 데에 포기했고 배가 꺼지다 못해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미주는 대강 큼직한 것들을 다 정리했다. 우드락 비닐 6개 정도를 꽉 채우는 쓰레기들을 겨우 학생회관 쓰레기통 앞에 세워두고 남은 자잘한 먼지와 쓰레기들은 내일 집에서 쓰레받이와 빗자루를 가져와 처리하기로 하고 4캔 만원의 맥주와 함께 뿌듯하게 집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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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이렇게 쓰레기 막 버려두고 가면 어떡해? 여기 분리수거 다 표시 되어있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버리고 가면 어쩌란 말이야?”
미주는 다음날 나머지 쓰레기를 버리러 왔다가 마주친 청소 용역 아주머니에게 10분째 혼나고 있었다. 건축관에선 다들 이렇게 버리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뒤섞인 쓰레기들을 한꺼번에 내놓았는데, 그렇게 버려 놓은 것은 결국 누군가가 처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두 번만 생각해도 아는 것인데, 그냥 내놓기만 하면 쓰레기의 요정이 뿅 하고 가져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아 죄송해요. 제가 치울게요.”
“어휴, 어휴. 이걸 혼자 다 어떻게 해. 됐어. 같이 해.”
“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죄송합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세 팀 쯤 미주와 그녀의 거대한 6개의 쓰레기 더미를 쳐다보고 갔기 때문에 더위에 빨개진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얼른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그녀는 쓰레기 통 앞에서 같이 분류를 하자는 아주머니의 말을 거절하고 쓰레기 더미를 모두 다시 동아리 방으로 끌고 들어왔다.
쓰레기 봉지 안에 압축되어 봉인된 모형과 쪼가리들은 어제 보단 동아리 방을 덜 차지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거대했다.
나이 24살을 먹고 누군가에게 크게 혼날 일은 없었기 때문에 괜히 억울하고 민망했으나 속으로 아무리 스스로를 변호하려 해도 그녀의 잘못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정리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드락 봉지에서 모형과 그 잔해들을 꺼내고 나니 예상보다 더 처참했다. 심지어 완성된 모형은 대형 쓰레기 봉투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쪼개어 넣어야 했다.
일반쓰레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분류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모형을 분해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미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