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어, 아들! 뭐 하고 있어!"
수화기 너머로 불콰한 취기가 전해진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때때로 술을 드실 때 내게 전화하시곤 했다. 늘상 있는 일이라 약간은 귀찮기도 하다. 술에 취하지 않은 이가 술에 취한 이의 말을 듣는 건 일방적이니까.
"그냥 있어요."
밖에는 비가 주륵주륵 온다. 비 오는 날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방 안에 누운 채로 전화를 받는다.
"비 오는 날인데 술도 안 먹고 뭐 해!"
창가를 바라본다. 빗방울이 톡톡 창문을 두드리며 흘러내린다.
"비 오면 나가기 싫잖아요."
건조하게 대답하는 내게 아버지는 실망한 듯 혀를 쯧쯧 찬다.
"짜식아."
아, 이제 장황한 설교가 이어지겠구나. 핸드폰을 다른 손으로 고쳐잡는다.
"비 오는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한잔하고 그래야지. 그게 낭만이야."
그날 아버지의 이야기는 유독 따뜻하게 들렸다. 술 때문에 유들해진 아버지의 목소리 때문일까. 아니면 비와 흐린 하늘이 주는 가벼운 우울감 때문일까. 아니면 '낭만'이라는 단어를 써서일까.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비가 내리는 날이 낭만이 내리는 날이 되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 자체가 낭만이다. 무언가를 보고 네가 생각나는 것이 낭만이다. 비가 오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비가 와서 아들이 뭐 하고 있을지를 떠올린 것이, 비가 오니까 아들이 사랑하는 이와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바란 것이 낭만이다.
이제 어느 날 비가 온다면, 난 너와의 한 잔을 준비하겠다.
그날은 낭만적인 하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