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의 우연에 대한 심상

by 이해

분명 계획은 완벽했다. 등산로 입구까지 대략 한 시간, 전체 코스가 대략 세 시간. 하지만 산이라는 것은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그날따라 유난히 궁금한 길이 있곤 한다. 완벽했던 계획은 스스로 퍼즐의 조각들을 떨쳐낸다. 나의 계획은 미흡했다.


가장 문제는 시간이다. 산속의 해는 일찍 져서 나의 완벽한 줄 알았던 계획에 일찍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의 계획에서는 목표지에서 푸른 하늘을 보았어야 했는데 이내 산은 얼굴빛을 바꾼다. 계획에 없이 우연히 마주한 산을 속도를 늦춰 돌아본다.


햇빛이 사그라든 산속은 채도가 옅어져 잿빛 또는 모래빛이 된다. 푸르던 하늘은 금세 붉은 물감을 푼 듯 타오르기 시작한다. 산 속의 그림자들은 길어져 나의 발 앞에 하나둘 검은 모습으로 웅크린다. 바람은 좀 더 거칠고 차가워져 주변을 맴돌며 나를 주시한다.


늦은 시간의 산은 조심해야하기에 이어폰을 뺀다. 이내 산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풀벌레들의 목소리에 보다 자신감이 붙는다. 산새들은 이 시간에 산에 있는 사람이 우스운지 재잘댄다. 나무는 온몸을 떨며 나뭇잎을 가열하게 흔들어댄다. 어디선가 산짐승의 움직임이 들리며 나를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산은 묻는다.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산속에는 인기척이 없다. 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다. 이방인이면서도 합일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둘러본다. 그제야 산이 보이고 산이 들린다. 정상만 보고 갈 때는 발끝만 보았는데, 이제야 산을 오롯이 느낀다. 분홍이기도 보라이기도 한, 완전히 저물기 전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빠른 소멸이 슬프게 아름답다. 색의 경계가 사라진 숲속은 모든 것이 하나인 것처럼 자연의 섭리를 내보인다.


길이 나 있는대로 가다보니 마애불상이 나타난다. 우뚝 솟은 부처가 나를 내려다본다. 산의 목소리도 잠시 소리를 죽인다. 부처는 천천히 입을 떼길


때론 완벽보다 주변을 돌아보라고. 끝보다는 곁을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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