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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자 일지
당근마켓 매너온도 99도는 달랐다.
"아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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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Mar 3. 2022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앞두고
오래된 짐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언제 어디서 받았는지 기억도 안나는
1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
옛 다이어리 사이에 끼어있었다.
'오! 이게 웬 서프라이즈. 꽁돈 생겼네.'
하지만 당장 백화점 갈 일은 없어서
현금으로
바꿔두려고 했다.
옛날엔 동네 구둣방에서
쉽게
바꿀 수
있었는데
요즘은 없어졌는지 도통 못 본 것 같았다.
곧바로 <당근마켓>이 생각났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뒤늦게 당근 거래하는 재미에 빠진 지
한달도 안 된 초보 당근러였다.
거래 횟수는 고작
5번 뿐.
'상품권도 팔 수 있나...?'
검색해보니 판매글이 꽤나 있었고
10만 원이면 9.5~9.8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빨리
바꿔버리고 싶어서
9만 5천 원에 올렸는데
삼십분도 지나지 않아 챗이 3개나
왔다.
가장 처음 챗을
보낸 구매 희망자는
'당근마켓 매너온도 99도'였다.
36.5도인 초보 당근러로서
99라는 숫자가 신기했다.
99도가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잘' 해야하는 걸까.
다음날 오전 10시에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근의 고수를 만나는 만큼
5분 일찍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한 아주머니께서 오셨다.
"당근이세요...?"
아주머니는 현금을 챙겨오셨고
나는 고이 가져 온 상품권을 드렸다.
"한 번 확인해보셔요.
유효기간 따로 없는 상품권이에요."
"네. 어? 근데 만원짜리네요."
"!!! 네...?"
이게 무슨 일이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갈 곳 잃고 흔들리는 동공을 붙잡고
두 눈 크게
떠
상품권을 확인했다.
"엇! 그러네요..
. 잠시만요.
.
.
이게 어떻게 된 거지ㅠㅠ"
어젯밤부터 10만 원권으로
여기고 있었던 상품권은
고작
1만 원짜리였다.
밤사이에 만 원짜리로 변했나.
내가 다른 상품권을 들고 온 건가.
애써 침착하게
어제 올렸던 글의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어랏... 진짜 '0'이 4개였네...
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심지어 왼쪽 상단에 저렇게 버젓이
일만원정이라고 써있었는데 왜 못 본 거지.
철썩같이 십만원권으로 본 거지.
사실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글의 제목만 보지
사진을 유의깊게 보진 못했을 거다.
진짜 어이없다.
그냥 이 순간을 부정하고 싶다.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다니.
'0' 4개를 5개로 봤다니.
보고 싶은대로 본 건가.
희망사항이야 뭐야.
살다 보니 이런 착각을 하는 날도 있구나.
매너온도 99도 아주머니 앞에서
내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해졌다.
그동안 수많은 거래를 해보셨을 텐데
이런 판매자는 처음이었겠지.
나만큼이나 적잖이 당황하신 아주머니는
상황을 파악하시고는
감사하게도
괜찮다며 발걸음을 돌리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외출하는 길이라
구매자와 가까운 곳으로 나갔었다는 것.
추운 날이었는데 금방 들어가셨기를.
나도 볼 일을 마저 끝내고 집으로 갔다.
'만 원짜리라도 그냥 드리고 올 걸.'
사람이 당황을 하니
그럴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구구절절
감사와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곧 답장이 왔다.
"아유. 괜찮아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당근마켓에 워낙 진상이 많다고 들었어서
잘못 걸렸더라면,
이런 상황에서
쌍욕 듣지 않으리란 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매너온도 99도는 달랐다.
내 실수가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해의 말 한마디에 찝찝함이
녹아내렸다.
9만 5천 원 현금과
1만 원짜리 상품권을 맞교환하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야
깨달았더라면.
윽. 생각만 해도.
나
..
당근 사기꾼 될 뻔 했잖아
..
?
거래 현장에서 알아차릴 수 있던 것도 다행이었고,
99도의
아주머님과의 거래를 통해
타인의 실수에 대처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어서 참 감사한 하루였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
(* 한바탕 이사를 끝내고
그
뒤로
당근 거래는 없었다고 한다. 나의 당근 흑역사-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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