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갈 때, 버스를선택했다. 비행기를 타면 훨씬 빠르겠지만 가격도 배로 뛴다. 장거리 버스 여행을 언제 또 혼자 해볼까 싶어, 그것도 용감하게 심야버스를타보기로 했다.
티켓 오픈이 1달러부터 시작해서 1달러 버스라고 불리는 <메가버스>를 편도 20달러에 예약해뒀다. 오히려 낮 시간대보다 밤 시간대 가격이 더 나간다. 밤에 자면서 가다 아침에 깨면목적지에 도착하니, 숙소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밤이라 위험하다는 말도 많았지만, 위험해봤자 얼마나 위험하겠어! 그런 걱정 따위는 젊음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잠깐... 여기가 버스 정류장이 맞아...?!
깜깜한 밤, 인적 드문 도로 옆 정류장에 멈칫했다. 밤이 아니고 낮이었다면 좀 나았을지도모르겠다. 버스에 오를 때까지 오빠가 배웅해줘서 다행이지. 혼자였다면 밤버스를 분명 후회했을 것! 제시간에 도착한 버스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엉덩이 하나 붙일 좌석이지만, 멀리집 떠나온 여행자에게는 어디든 내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일시적인 안식처가 된다. 승객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대다수였다. 심야버스는 중간중간 휴게소에도 정차해 쉬어간다.
비행기나 기차에 탈 때면, 초등학교 시절 무작위로 짝꿍이 정해지던 순간처럼 괜히 설렌다.내 짝꿍은 누가 될까. 옆자리에 누가 앉게 될까. 여행 중에 옆자리 인연들과 나눈 찰나의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았기때문인 걸까. 복불복의 재미를 즐기는 걸까.
하지만 이날은 좀 달랐다. 옆에 아무도 앉지 않길 바랐는데! 휴게소에서 다시 출발할 무렵, 웬 껄렁껄렁해 보이는 남자가 다가온다. 비어있는 내 옆자리에 앉을 듯 말 듯 하더니, 2층으로 올라간다. 안도했다. 그렇게 내 옆자리에는 감사하게도 아무도 타지 않은 채로 출발했다. 도심의 불빛을 지나니 암흑 같은 도로 위에 차선만 보인다. 오지를 달리는 것만 같았다. 자다 깨서 창밖을 볼 때마다 휑한 풍경은 똑같았다. 비몽사몽으로 열 시간 가까이를 달려마침내 LA에 도착했다.
LA의 첫인상은 세 가지로 기억된다. 키다리 야자수, 컬러풀한 간판들, 길바닥에 들러붙은 강력한 껌의 흔적들.
세상은 넓고 인생 버거는 많다.
숙소에 짐을 풀고,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인 앤 아웃 버거>.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LA 여행객들의 시작은 이곳이란 말인가.
'인생 버거'라 불리는 미국의 유명 버거가 몇 있다.쉑쉑 버거,파이브 가이즈 버거, 인 앤 아웃 버거.
그중 인 앤 아웃 버거는 미서부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하니, 안 먹고 지나칠수 있을까.
뜨거운 태양 아래, 드라이브 스루 행렬도 길었는데 매장 내부는 더 북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가성비가 좋은 버거다. 패티와 치즈가 두장씩 들어간 더블더블 버거가 4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맥도널드나 버거킹과 달리 메뉴판이 심플하다. 더블더블버거, 치즈버거, 햄버거. 버거 종류가 3개뿐. 밀크셰이크와 함께 주문해본다.
버거보다 감자튀김에 자꾸 손이 갔다. 냉동감자가 아니라 생감자를 튀겨서 도톰한 식감이 좋았다. 신선하고 심플한 맛의 버거였지만, 아쉽게도 나의 인생 버거로 등극하진 못했다. (아직까진 파이브 가이즈 버거를 뛰어넘는 버거는 없었다.)
너도 나도 발맞춰 찾아가는 뻔한 메뉴일지언정, 새로운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경험하는 맛의 세계는 언제나 즐겁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할리우드 거리>를 걷는다. 예상했던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미국 문화 산업의 중심에 와있는 듯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극장' 내부도 천천히 둘러봤다. 다음날 영화 행사가 있는지 일부 거리를 통제하고 준비하는 모습이 분주해 보였다.
'꿈의 도시'라 불리는 곳에서 미드에서나 보던, 영화에서나 보던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거리를 채우는 아티스트들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가도, 어느새 슬며시 다가와 유료 사진을 권하는 동심 속 캐릭터들을 보며 자본주의의 세계에 와있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