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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l 19. 2022

혼자 놀기 만렙, 놀이공원

# LA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

아침부터 눈이 번쩍 떠졌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마음이 둥둥 떠있.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손꼽아 온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에 가는 . 매일같이 하늘도 화창한 LA의 여름, 놀이공원 가기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 나 혼자 간다!

"식당, 카페, 영화, 전시회, 뮤지컬, 쇼핑. 다 혼자 할 수 있지만 놀이공원만큼은  힘들 것 같아요." 언젠가 인터넷에서 놀이공원에 혼자 가는 건 '혼자놀기 최상위 단계'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갈수록 보편화되는 혼족 문화에도 나름의 레벨이 있었다. [일반 식당] [영화관]으로 시작하는 5등급부터 피라미드 꼭대기 1등급에는 [놀이공원] [코스 요리 레스토랑]까지. 글의 말미에는 "1등급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조건 직진하는 스타일. 여기에 속했다면 특별한 1%의 사람이라고 하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라고 덧붙인다.


평소에 혼자 잘 놀고, 잘 먹고, 잘 다니는 편이지만 놀이공원에 혼자 간다는 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국땅에서 나홀로 여행객이 별 수 있으랴. 어쩔 수 없이 혼자 가게 됐지만, 미국에서 뜻밖에 혼놀 레벨을 경신하고서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할 하루를 보냈다.



Welcome to

Universal Studios Hollywood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전 세계에 다섯 곳뿐이다. 미국 올랜도와 LA 할리우드, 일본 오사카, 싱가포르, 중국 베이징. 그중에서도 LA 유니버셜 스튜디오에는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


유니버셜 시티역에서 내리면 입구까지 무료 셔틀을 타고 이동한다. 지구본이 그려진 파란색 셔틀이 나를 할리우드 영화 속으로 데려가 줄 것만 같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웅장한 규모가 가늠이 안 된다. 간단한 보안 검사 후에 테마파크로 입장한다. 원데이 티켓이 10만 원인데 UCLA 매표소에서 국제학생증으로 할인을 쏠쏠하게 받아뒀었다.

복작복작 펼쳐진 놀이공원의 초입. 수많은 인파 속에서 홀로 우뚝 서서 잠시 멈췄다. 알록달록 역동적인 풍경에 압도되었다. 내 방 침대에 누워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홀로 하이틴 미드 속으로 뛰어들어온 기분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놀아야 좋을까. 발걸음이 분주해지지만 Upper구역부터 천천즐겨본다.

눈에 띈 또 다른 풍경. 공중에 미스트를 분사하는 COOL ZONE. 워낙에 뜨거운 지면의 열기를 낮춰줄 기계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스릴 넘치는 어트랙션, 화려한 퍼레이드와 공연, 각종 굿즈를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 눈이 쉴 틈이 없다. 거리의 사람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혼자여도 심심할 새가 없다.

트랜스포머, 심슨, 미니언즈, 슈렉, 쥬라기 등등. 세상에 내로라하는 캐릭터들은 다 이곳에 모였다.

Upper에서 Lower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통로
가장 인기있는 트랜스 포머 존
현재는 사라졌다고 하는 슈렉 4D 존
쥬라기 공원
보기만 해도 시원한 물줄기

제대로 #물벼락

가장 재밌던 놀이기구는 '쥬라기 공원 더 라이드'. 보트에 타면 커다란 문이 열리고 정글로 입장한다. 다양한 거대 공룡들이 막 움직이면서, 풀을 먹고 사람들한테 물을 쏘기도 한다. 그렇게 찬찬히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보트가 60도 각도로 서서히 올라간다. 실내 동굴로 빨려 올라가는 듯하더니, 정점에서 급낙하한다.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로지르며 곤두박질친다. 이런 물세례는 처음이야. 물 튀김이 한국의 후룸라이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스케일이다. 끝자리에 앉아서 말 그대로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었다. 익사이팅 그 자체였다. 특히 낙하하는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티라노사우루스가 권이다. 야외에서 맞는 예상치 못한 물벼락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놀이공원에 혼자 가면 너무 신이 나도, 이내 금방 가라앉는다.


이것저것 즐기느라 혼자 왔다는 걸 의식 못 하고 있다가, 쥬라기 라이드를 타고 처음으로 고독함을 느꼈다. 놀이공원에서는 호들갑 좀 떨어줘야 제 맛인데 그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잔뜩 물 맞고 흥분된 마음은 그저 옆자리 물세례 동지들과 엄지척에 환호성을 주고받고, 이내 차분해진다. 젖은 머리도 뜨거운 햇볕 아래 금방 바싹 말랐다. 이날 입장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말이 없던 사람을 뽑는다면 아마 내가 아니었을까. 놀이기구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하이라이트로 넘어간다.




스튜디오 투어(Studio Tour)

드디어 가장 기대했던 오늘의 최종 목적지. 놀이기구가 맛보기였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LA 유니버셜은 실제 영화 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스튜디오 투어(Studio Tour)가 있다. 할리우드답게 이곳에만 있는 특별한 투어다.

트램을 타고 실제 영화 촬영장, 세트장을 둘러본다. 한 시간 가까이 가이드와 함께 진행된다. 할리우드 영화 덕후들이라면 가슴 설렐 투어이다. 한 바퀴 돌고 나면 할리우드의 위엄을 경험할 수 있다. 가끔 촬영 중인 배우가 지나가다가 인사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날은 없었다. 

스튜디오 전경
각 스테이지 앞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
영화에 나왔던 멋진 자동차들

투어의 피날레는 특수효과.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멀쩡하던 땅 위로 갑자기 물이 쏟아져내려 온다거나, 폭발과 함께 불이 난다거나, 비행기가 추락한다거나. 특히 홍수가 나서 마을이 물에 잠기는 장면은 발을 동동 구를 만큼 리얼했다.

홍수 효과
영화 '죠스' 세트장
영화 '우주 전쟁' 비행기 추락 세트장
 미드 '위기의 주부들' 하우스

학창 시절 미드광이었던 친구가 생각났다.

' 친구가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 재미난 걸 나 혼자 보고 있다니!'

'우리 가족들도 같이 왔었더라면!' 

투어 내내 마음속으로 아끼는 주변 사람들을 자꾸만 소환했다.


혼자라도 인증샷은 남긴다.jpg
특이했던 그날의 구름



'이때 아니면 언제 혼자 놀이공원엘 가보겠어.'

'이때 아니면 언제 또 혼자 미국여행 해보겠어.'

.

.

여행할 때만큼 우리 자신이 경험과 도전에 관대해질 때가 또 있을까? 여행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이때 아니면' 마인드는 미래의 나에게 두고두고 곱씹을 풍요로운 기억을 선물해준다.


벌써 세 번 넘게 본,

LA 배경의 영화 <라라랜드>  때마다

이날의 분위기가 오버랩된다.

꿈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향한 누군가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역동의 도시 LA.


 갈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혼자놀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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