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 Jul 30. 2022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 라스베가스 스트립


LA에서 메가버스로 5시간. 황무지 같은 날 것의 길을 달려 네바다 주에 들어섰다. 북미 로드 여행을 할 때마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진다. "훗날 너의 풍요로운 여행을 원한다면 사회탐구 영역은 '세계지리'와 '세계사'를 선택하는 편이 좋을 거야." 더 넓은 세계의 지식을 미리 베이스로 쌓아두었더라면, 지금 하는 세계 여행의 깊이가 달랐을 수도 있겠다 싶은 괜한 아쉬움과 욕심에서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크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여행의 발견'에는 남다른 기쁨이 있다.




로드 트립의 매력은 일시정지한 것 마냥 똑같이 반복되는 창밖 풍경 심심하지 않다는 것.

학창 시절에 배웠던 어렴풋한 지식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살아있는 자연 교과서다. 


사막과 주택가를 지나 마침내 라스베가스 스트립에 도착했다. 8월 초, 한여름의 날씨는 섭씨 40도. 바싹바싹 마를 것만 같은 건조한 공기가 에워쌌다.




낯선 라스베가스의 오후

미서부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라스베가스. 왠지 뻔하게 화려할 것 같아서 큰 기대는 없었다. 미디어를 통해 익히 보아 온 휘황찬란한 야경 카지노의 도시. 딱 그 정도가 다겠지 싶었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라스베가스의 '' 풍경을 마주했을 땐 조금 낯설었다. 뜻밖의 차분함과 평온함이 반갑기도 하면서 갑자기 '' 풍경이 궁금해졌다. 과연 얼마나 달라질까.


호텔 로드, 골라 묵는 재미가 있다!

라스베가스 스트립에는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이 호텔의 옷을 입고 이웃사촌처럼 몰려있다. 파리, 뉴욕, 베네치아, 이집트, 로마.  축소판이라기에는 꽤나 그럴듯한 거대한 규모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테마의 호텔들이 반겨준다. 3~5성급 호텔 30여 곳이 즐비한 라스베가스의 숙박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하. 이유는 카지노의 도시답게 카지노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비교적 저렴한 값에 숙박을 제공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전략. 그래서 거의 모든 호텔 1층에는 카지노가 있다.



다양한 호텔에 묵어보고 싶어서 라스베가스에서 고작 3일 머무는 동안 두 곳의 호텔을 예약했다. 스트랩의 시작점에서 끝지점까지 거리가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갈 때 땀을 좀 흘려야 했다. 라스베가스에서는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볼거리 가득한 호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채워진다. '라스베가스 아래 같은 호텔은 없다.'



라스베가스 여행의 시작, 뷔페

라스베가스 여행의 시작은 카지노가 아닌 '뷔페'. 숙박비만큼이나 저렴한 것이 식비다. 호텔 뷔페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역시나 같은 이유다. "호텔비랑 식비는 부담 없게 해 줄게. 너희는 와서 즐기기만 해. '카지노'에만 몰두하렴." 이 전략에 넘어가서 카지노만 즐기려다간 낭패 보기 십상. 라스베가스에 다녀온 지인들 중에는  카지노로 돈을 너무 많이 잃어서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경우도 있. 나는 한탕 칠 돈도 없었을뿐더러 쫄보라 다른 사람들의 게임 구경꾼 노릇을 했다. 그래도 라스베가스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지. 막판에 슬롯머신에 딱 10달러 넣고 30달러를 손에 쥐었다. 뜻밖의 3배 수익이 쏠쏠해 더해볼까 순간의 유혹이 있었지만 거기서 멈췄다. 그 돈으로 다른 호텔의 맛있는 뷔페 식사 끼를 더 즐겼던 소소한 추억이 있다. 분위기에 휩쓸려 없던 욕심부리지 말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라스베가스의 호텔과 뷔페를 맘껏 즐겨보자.



낮과 밤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라스베가스의 하늘 위로 어둠이 내리면, 땅 위의 모든 것들은 빛을 내기 시작한다. 누가누가 더 화려한가. 자랑이라도 하듯 더 화려하게! 더 크게!

반짝이는 불빛과 시끌벅적한 음악,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더 낯선 라스베가스의 밤.

네온사인 불빛들이 도시를 밝히는 라스베가스의 밤.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함을 입은 도시가 아닐까. 당시 스물셋 인생 동안 본 밤 중 가장 화려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참 낯설다.'



밤이 되면 볼거리도 많다.

세계 3대 분수쇼 중 하나인 '벨라지오 분수쇼'. 벨라지오 호텔 앞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쇼로, 천 개가 넘는 분수가 음악과 불빛에 맞춰 춤을 춘다. 가로 길이는 300m, 높이는 140m까지도 치솟는다고 한다. 최근엔 이곳에서 BTS의 노래 '다이너마이트'와 '버터'에 맞춰 분수쇼가 있었다는데. 십 년 사이에 달라진 K팝의 위상이 새삼 자랑스럽다.


다채로운 공연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라스베가스의 3대 쇼인 오쇼, 카쇼, 르레브쇼를 비롯해 태양의 서커스까지. 어떤 공연을 볼까 한참 고민하다 <셀린 디온> 콘서트를 선택했다. 다른 쇼는 나중에 다시 와도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셀린 디온 공연은 그녀가 은퇴하면 못 볼 것 같은 단순한 이유였다. (셀린 디온 공연은 라스베가스를 대표하는 장수 콘서트였다. 2003년부터 시작해 2019년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All by my self>와 <My heart will go on>을 들을 때는 왜인지 눈물이 났다. 팝의 디바 공연으로 뜻밖의 인생 첫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라스베가스 하면 생각나는 책. 당시 베스트셀러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에서 '라스베가스'는 주인공의 중요한 목표지가 된다. 삶의 의욕도 고, 늘 초라하기만 한 삶이 싫었던 스물 아홉 여주인공. 죽기로 결심은 했으나 죽을 용기가 없다. 그래서 1년만 더 살아보기로 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29살의 마지막 날에 라스베가스에서 누구보다 화려하게 죽을 것." 라스베가스를 가기 위한 자금을 1년간 모은다. 마침내 라스베가스에 도착해서 죽기로 결심한 생일날. 뜻밖의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내용이다.


무력하고 무미건조한 자신의 삶과 정반대로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인 곳으로 라스베가스라는 도시를 선택한 것이다. 직접 다녀와보니 왜 그렇게 화려함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나  속의 한 구절 마음에 와닿았다.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안정적인 대학 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한 것. 주변 이들 우려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확실한 목표로 뚝심 있게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것. 미국 여행을 혼자서  것. 모두 나의 선택이었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불안함도 물론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도전하기에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해서 늘 대단한 삶의 변화가 있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선택과 성취감의 경험은 그저 그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한 순간마다 강력한 내적인 힘을 부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적절한 시기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내 스스로에게 미리 주는 

선물과도 같다.





사막 한가운데 들어선 관광 도시 '라스베가스'.

호텔방으로 돌아와 자려고 불을 다 껐지만,

창밖의 화려한 야경은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놀기 만렙, 놀이공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