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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20. 2022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파노라마

Rocky Mt. 설퍼산에서 에메랄드 호수까지

여름의 캐나다 로키 산맥은 마치 밥 아저씨가 붓으로 칠해놓은 듯한 그림을 드나드는 여행이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도 밥 로스 아저씨의 그림에는 눈 덮인 산과 침엽수림이 있었다. 주로 알래스카 풍경에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하는데, <겨울 하늘 아래 로키산맥>이라는 작품남아있다.

여행 내내 그림 같은 자연을 보며 대체 불가한 자연으로부터의 예술적 영감은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빠르게 스치창밖 풍경조차도 하나하나가 이번 여행의 목적지처럼 느껴졌다. 3박 4일 로키 여행의 셋째 날, 밴프 다운타운에 들렀다. 마지막 날은 다시 밴쿠버로 장거리를 횡단하며 복귀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셋째 날이 마지막 날과 다름없다.

밴프(Banff) 다운타운

밴프는 아주 작은 도시다. 캐스케이드산을 비롯한 눈 덮인 들이 병풍처럼 다운타운을 감싸고 있어서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산이 살아 숨 쉬는 풍경이다. 로키의 관문인 밴프는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예쁜 건물들과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어 다운타운 자체만으로도 명소이다. 식당, 디저트 가게, 기념품숍, 숙소가 많아서 로키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 마차를 타고 시내를 둘러볼 수도 있다. 우리는 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손에 쥐고 아늑하고 한적하면서도 역동적인 동네를 거닐었다.

설퍼산 (Sulphur Mt.)

밴프 다운타운에서 가벼운 점심 식사를 하고 근처에 있는 해발 2,450m 높이의 산으로 간다. 로키 최고의 전망대라 불리는 설퍼산 정상에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 걸어서 올라가면 1시간 30분가량 걸리지만, 곤돌라를 타면 10분도 안 되는 시간으로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1959년에 완공된 캐나다 최초의 곤돌라인데, 속도가 꽤나 빨라서 아찔하다. 곤돌라에서 내려 나무 계단을 따라 십 분만 더 올라가면 정상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은 산줄기와 계곡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아래서 올려다보던 웅장함과는 사뭇 다르다. 경이로운 로키 산맥의 매력을 다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다. 저 멀리 어디선가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날 것만 같은 태고의 자연같은 풍경. 눈으로 피톤치드를 마시는 듯하다. 밴프 시내를 지나는 보우강줄기의 색깔도 초록색과 대비를 이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멀찌감치 시야가 탁 트인 산세권을 바라보고 있으니 시력마저 향상되는 기분.

에메랄드 호수 (Emerald Lake)

보우강에 잠시 들렀다가 오늘의 메인으로 향했다. 로키 호수 3대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레이크 루이스>, <에메랄드 레이크>, <모레인 레이크>. 버킷리스트였던 레이크 루이스의 로망만큼은 아니지만, 에메랄드 레이크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레이크 루이스가 은은한 에메랄드빛이었다면, 에메랄드 레이크는 찐 에메랄드색의 호수다. 톰 윌슨이라는 사람이 1882년, 계곡에 들어오다가 우연히 발견한 호수라는데 오죽했으면 호수 이름을 에메랄드 호수로 명명했을까. BC주 요호 국립공원 안에 있는 60여 개의 호수와 연못 중에 가장 큰 규모로 울창한 산속에 감추어진 보석 같은 호수다. 동화 속 요정이 튀어나올 법한 풍경 그 자체.

풍경을 해치지 않는 오두막 같은 건물도 조화를 이룬다. 호수를 끼고 오솔길처럼 나있는 산책길을 걷는다. 2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도 있다.

물감이라도 풀어놓은듯한 색깔에 감탄이 절로 난다. 물빛은 과학이다. 에메랄드 빛으로 푸르게 빛나는 이유는 빙하수에 떠밀려온 석회암 가루 때문이다. 탄산 칼슘 성분이 물에 녹아서 빛을 반사해 밝은 옥색의 물빛을 내는 것이다. 특히 주변 산들이 눈 녹는 여름철에 그 색이 가장 짙고 맑다고 한다. 거울 같은 수면에 비치는 로키 산이 온통 물에 빠진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살면서 또 언제 이렇게 온종일 거대한 자연을 눈에 담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일분일초가 소중했다. 눈을 잠시 감아도 잔상처럼 남아있는 풍경에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살면서 복잡하고 속 시끄러운 순간잦겠지. 그럴 땐 로키에서 본 잔잔한 호수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평온해질 것 같아. 날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야지.' 하는 바람과 다짐으로 여행의 끝무렵에 다다랐다. 여름의 로키 속에 잠시나마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밴쿠버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던 산속 열차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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