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클래식 영화에 푹 빠졌다. 제작된 시대를 고려했을 때, 이러한 발상과 연출을 했다는 것이 감격스러워 플러스 점수가 마구 쏟아진다. 이전에 오래된 영화를 '빈티지 영화'라고 말했던 것처럼 <트루먼쇼>역시 오래 묵었기 때문에 더욱 찬란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아니 한 번 이상은 봤을 그 영화. 오히려 나는 그 부분 때문에 <트루먼쇼>를 틀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말이다.
<트루먼쇼>를 본 후 길고 긴 여운을 파헤쳐 꺼낸 키워드는 2가지이다. '선택' 그리고 이 영화에서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키메세지인 '자유'.
사르트르의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라는 말처럼, 인간은 태어난 날(Birth)부터 죽는 날(Death)까지 스스로 끊임없이 선택(Choice)을 해야 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선택'이라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트루먼'은 삶의 필수조건인 선택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선택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지루한지.아주 사소한 코코아를 마시는 것조차 PPL로 통제되어지고, 가장 중요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 역시 선택할 수 없다. 당연하게도 선택하지 않는 삶에 책임은 따르지 않는다. 자유의지로 한 일이 아니니, 틀에 짜여진 순서에 따라 흘러가듯이 사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런 그는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삶에서 벗어나려는 선택을 한다. 처음으로 그 스스로 선택을 한 것인데, 그 첫 선택이 바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선택이었다.
이처럼 '선택'과 '자유'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띤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란 얼마나 큰 의미인지. 특히나 오랜 시간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던 그에게 '자유'라는 건 달콤하지만 위험한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쇼생크탈출>에서 수동적인 삶에 익숙해져, 막상 찾아온 자유 앞에서 자살을 선택한 브룩스처럼 통제되어진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큰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음에도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 삶이 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죽음 앞에서 나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더 많은 걸 회고할 수 있는 것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왔던 삶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는 '트루먼'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사람은 '크리스토프' 한 사람으로 그려졌지만, 사실 살아가면서 나의 삶이 타인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순간이 많다. 1998년 '자유'와 2022년의 '자유'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2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현재의 '자유' 역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볼 수 있다. 조언이나 충고라는 가면을 쓴 채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눈치보는 것에 익숙해져 나의 자유를 묶어두지 않았는지 많은 것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