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집을 나선 지 오래 되었다. 연휴라고해서 어디를 꼭 다녀와야 하는 것이 1인 가족인 나에게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 행사이다. 더구나 직장 은퇴를 하고부터는 매일이 주말이고 하루하루를 여행처럼 지내기 때문에 휴가란 것이 별 의미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틀림없이 가을은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중이다. 한낮은 뜨거웠을지라도 잘 때는 베란다 창문을 닫았는지 확인하던 그날, 아직도 아니 여전히 직장생활 잘하고 있는 오랜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여름휴가를 아직 못 갔다는 것이다.
“같이 갈래? 템플스테이 하고 싶어.”
그래, 직장인에게 여름휴가는 지각은 있어도 결석하는 법은 없지. 두 자녀의 육아와 뒷바라지를 마친 친구, 뭔가 생애 높고도 커다란 파도 하나를 넘은 친구가 가족여행이 아닌 첫 휴가로 선택한 여행은 템플스테이였다.
바로 지도를 검색했다, 우리 둘의 중간, 각자 딱 한 시간 반씩 운전하면 만나는 곳이 계룡산이었다. 그중에 갑사를 선택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왜냐면 얼마나 으뜸이면 이름부터 ‘갑’일까.
나는 집에서 일하다가 출발했고 친구는 회사 회의가 길어져서 늦을 것 같다고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왔지만 이미 우리 여행은 갑사로 예약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명당자리에는 군부대와 절이 있다는 데 여기 갑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갑사 진입로는 녹색 마녀가 사는 동화 같은 풍경이었다. 나갈 때보다는 들어갈 때 진입로가 아름다운 절을 나는 좋아한다. 창문을 내렸다. 들숨과 날숨에서 신선한 야채를 씹는 맛이 났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대웅전 기단부에 쌓인 돌이었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돌도 아니고 그렇다고 벽돌처럼 일정하게 겹겹이 쌓아올린 것도 아니었다. 우선 같은 돌이 하나도 없다, 가로세로가 각각인 다각형 돌들이 마치 테트리스 게임처럼 정교하게 맞물려있다. 그 자리잡음에서 오는 안정감, 크기와 위치와 색상에 변화를 주면서 쌓은 조화로움, 몬드리안이 울고 갈 우리나라 조각보 천 수평수직 디자인의 단아함을 동시에 느꼈다.
다른 체험자들과 함께 간단히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에 절복으로 갈아입었다. 속세를 한 커플 벗는 기분이랄까. 뭔가 성속이 교차되는 의식 같다고 생각이 들던 차에 나는 이내 탄복하고 말았다.
“어메, 나 좀 보게. 내가 절복이 이렇게 잘 어울린다.”
예불을 드리러 석가모니를 모신다는 대웅전으로 갔다. ‘염불 따라 하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뜻은 모르더라도 한글로 되어있어서 못 읽을 바 없겠으나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할지와 리드미컬한 음의 높낮이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경지였다. 악보라도 있다면 얼추 노력을 해볼 수도 있겠는데 완전 초보자에게는 난감한 일이었다.
무문관 체험이 갑사에만 있다는 것은 여기 와서야 알았다. 폐관 수행을 원칙으로 하는 무문관은 하루 한 끼를 하고 세상과 단절한 상태로 마음의 수행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불을 읊는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았던 반백발의 여성분이 바로 무문관 수행을 신청한 체험자였다. 그분은 휴대폰을 반납했고 스님은 방문을 잠갔다.
‘디지털 디톡스’란 말이 있다. 그 부분은 나에게도 꽤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무릇 현대인이라면 바빠야 마땅하고 밀려오는 파도 하나를 떼어낼 수 없듯이 모든 게 연결돼 있는 인간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
할 일 없이 지내는 것을 이렇게 체험으로 한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갑사에서 이 체험을 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도 일상의 짐을 내려놓는 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어떤 답을 얻고자 했을까? 우리는 그 수행자분을 기꺼이 응원해드렸다. 그분이 무사히 방을 나오는 것은 못 보고 갑사를 떠났지만 들어가실 때 그분의 상기된 표정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저녁이 돼서야 갑사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단청 위로 빨개지는 구름과 노을. 세상에 없는 이 고즈넉함은 이루 말할 데 없이 평안했다.
“그래, 우리나라가 산사의 나라이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산사가 7개나 된다고 어디서 읽은 게 기억이 났다. 더구나 사찰 temple이 아닌 수도원 monastery라는 이름으로 등재됐다는 것도 참 인상적이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말없이 친구와 진해당에 앉아 계룡산 자락을 바라보고 있자니, 장소가 주는 힘이라고나 할까. 나도 모르게 요즘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새벽 산사의 차가운 공기 분자가 내 정수리를 지나 폐를 파고드는데 순간 깨달았다.
“맞아. 요 며칠 인간관계로 인한 내 안의 번뇌들은 나로부터였구나.”
일체유심조, 고집멸도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내 마음의 무문관 수행이 이런 거 아닐까. 또 와야겠다는 결심을 그때 했다. 갑사를 시작으로 해서 전국 템플스테이 투어를 해보자며 건강한 절밥과 더 건강한 산사 산책로를 뒤로하고 우린 해우소 앞 주차장을 나섰다.
백미러에 점점 멀어져 가는 숲을 오래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