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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Nov 11. 2020

글쓰기의 카타르시스

  나는 생각이 많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을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생각이란 것이 한없이 스쳐가고 오만가지로 뻗어간다. 생각보다 많은 생각이 짧은 시간에 동시에 떠올랐다 지나간다. 마치 멈추면 한강이 아니고 흘러가서만이 한강이라 할 수 있듯이 생각이란 게 그러하나 보다. 그중에 내가 필요한 생각을 잡아 붙들어 놓고 들여다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 지구를 멈춰야 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서 글을 써야만 했다. 글을 쓰면 안다. 내 생각이 중구난방으로 형편없다는 것을. 써놓고 읽어보면, 아니 쓰는 중에도 이미 알 수 있다. 얼마나 모순투성이에 비합리적인지 말이다.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감정이 해결되는 효과가 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굴뚝같을 때, 친구와 감정을 풀어야 할 때,  불편한 분에게 꺼내기 어려운 말을 꼭 해야만 할 때, 마음의 평화를 위해 싫은 사람 흉볼 때, 계획을 세울 때, 나의 경우는 이때 글을 써보니 정말 도움이 되었다. 한 곳으로만 향하는 그리움, 사무치게 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를 못 할 때도 글 밖에 풀 방도가 없다. 사실, 공감이란 것은 없는 나만의 일기 정도였다.


 그렇지만, 요점 정리만 할 뿐 독후감 한번 써본 적 없다. 좌우지간, 글쓰기란 딱 그 정도뿐 나랑 상관없듯이 살았다. 글쓰기 강연은 곧잘 찾아다녔지만 그때마다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강연은 대통령 이야기 들으러, 김영하 작가의 글쓰기 강연은 소설 이야기 들으러,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강연은 그냥 유시민 보러가는 목적이었다. 강연 후에도 글을 써야지 했던 적은 없다.
 
 운이 좋았다. 황소 뒷걸음질하다 쥐 잡는 격이랄까. 우연히 에세이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동네 서점 지원 사업으로서, 군산시 한길문고 상주작가, 배지영 작가와 함께하는 에세이 쓰기 수업이었다. 여름에 시작했고 6개월 12회 차를 항해하여 지난주에 닻을 내렸다. 도착한 항구는 영광스러운 세상이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라는 세상에 없던 명제가 생겼으니 말이다.


 글은 그냥 쓰면 되지 그걸 배우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하고 살았다. 아니, 이것은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진정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알려주시려는 작가님의 열정 덕분이다. 작가님의 선의가 공양미 삼백 석이 되어 나는 글쓰기에 눈을 떴다. 에세이의 맛을 알게 해 주었다.
 
 쉽지는 않았다. 나는 몸이 불편해서 마지막 검토할 때 말고는 늘 누워서 핸드폰에 써야만 했다. 한두 번정도는 숙제라는 부담으로 글을 썼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바로 소재의 빈곤이라는 담벼락에 부닥쳤다. 계속 이런 식이면 부담되고 불편해서 나랑 안 맞겠거니 그만 두지 싶었다.


 약간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세 번째부터인가 신기하게 쓰고 싶은 추억이 이어달리기처럼 떠오르는 게 아닌가. 나의 지난 삶이 코닥 필름 풀어지듯이 눈 앞에 펼쳐지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또, 내 곁에 물리적으로 가까운 것들에서 번호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내 몸, 고양이, 엄마 아빠, 친구, 내 취미 도구들이 ‘나 좀 써 줘. 다음에는 내 차례라니까’ 하며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의 흐름대로 써나가고  앞부분을 수정하면서  다시 또 이어 쓴다. 다듬기와 풀어나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글이 글다워져간다. 적확한 단어, 문장의 길이, 주어와 시제 처리 등 배운 거 하나 놓치지 않아야 한다. 요새는 제법 인용할 줄도 안다. 글이 잘 떠올라 술술 손가락이 춤을 출 때는 신성한 신탁을 부지런히 받아 적는 제사장이 된 듯하다. 무엇보다 가독성은 무조건 중요한 무기이다. 토 할 때까지 읽는다는 프로작가님들 에피소드는 이제 나의 신조가 되었다.
 
 

There is no great writing, only great rewriting. Justice Brandeis
 훌륭한 글쓰기는 없다. 단지 훌륭한 고쳐쓰기만 있다. 져스티스 브랜디스


 많이 울었다. 특히 엄마 아빠 이야기를 쓸 때는 읽을 때마다 고칠 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과거의 나 자신과 대면할 때도 우린 함께 울었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 눈물이 멈출 즈음,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 “선생님, 그냥 고맙습니다“라고.


 나를 보고 독특하다는 말을 더러 한다. 너 참 이상하다는 뜻이란 걸 나중에 알 때가 있다. 실제로 나는 다른 사람과 왜 다를까를 평소에 많이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온 걸까’, ‘왜 사는가’에 대한 막연한 의문이 늘 있었다. 글쓰기는 그 해답을 향한 한줄기 섬광 같았다.


  ‘나’라고 할 수 있는 것, ‘나 자신의 본질이 무엇일까’라는 것 중에 ‘내 경험과 기억’이라는 것이 있겠다. 그것을 기록하는 일은 잊어버린 상고시대 유물을 찾아 떠나는 인디아나 존스의 탐험인 것이다. 아픈 경험도 슬픈 기억도 나는 다 건져 올리고 싶다.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단 하루도 안 할 수 없는 것이라 먹고 자는 것과 함께 중요하다. 이제 글쓰기의 영험함이 여기에 있다.


  학교 행사로 국군 아저씨게 위문편지를 썼고 그 군인 아저씨와 제대할 때까지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기억. 제대 후 우리 집에 찾아 왔던 기억. 한 기사의 반대 의견을 투고하여 실린 기억, 남자 친구가 입대하고 엄청나게 편지를 쓴 기억. 하루에 두 통씩 써서 부친 적도 많다. 남자 친구는 휴가 나올 때마다 쌓인 편지를 초코파이 상자에 담아 가지고 나오곤 했다. 부대 내에서 유명해져서 아마 그걸로 포상휴가를 나오기도 했다. 맞아, 나에게 글쓰기의 DNA가 있었던 거야. 갖다 붙이며 저 혼자 자신감 뿜뿜이다. 이번 수업이 아니면 까맣게 잊고 있을 기억, 마치 찾을 수 없는 곳에 가라앉은 보물선들처럼 물밑에 수장될 내 유물들.


  글 한편을 마치고 나면 뿌듯함이 말도 못 한다. 발목까지 푹푹 들어가는 아라비아 사막 횡단을 끝내 마친 그런 기분이다. 그 기분은 참 맛있다. 다음 식사를 위해 반드시 해줘야만 하는 배설의 개운함도 거기 있다. 곳간에 쌀포대처럼 위로 하나하나 쌓이는 내 글 목록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차라리 자식들이란 표현이 더 맞겠다. 나름 산고 끝에 나온.
  

  잘 썼다고 작가님에게 칭찬들은 날은 몸의 중력이 빠져나가 둥둥 뜨는 기분이었다. 친구에게 허풍 조금 섞어 무지하게 자랑을 해대었다. 친구 입에서 ‘야. 너는 잘할 줄 알았어.’ 라는 말이 나오고서야 자랑을 멈추니 이 잔망스러움을 어찌할고. 천장까지 올라가버린 마음이 아래로 아래로 장판까지 내려오는데 한참이 필요했다. 오마이뉴스에 처음으로 내 기사가 채택된 날은 ‘이게 뭔 일 이래? 나이게 이런 일이……’ 어이없었고 참 신기했다.


  에세이 쓰기가 이렇게 재밌구나를 알아버렸다. 재미뿐 아니라 내 삶을 바꾸는 힘이라 할 수 있겠다. 난 지인들에게 글쓰기 추천이 입버릇이 되었다. 학교 교사인 친구에게 ‘학교 이야기를 쓰는 거야’ 은행에 다니는 친구에게는 ‘그래, 통장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재밌겠는데’ 회사에 불만 있는 친구에게는 ‘그게 다 책이 될 수 있어. 너도 써봐’ 그대들이여, 글을 쓸지어다.
 
  마지막 수업 일에 우리는 성장한 자신들에게 박수쳐 주었다. 또한, 글쓰기 동지를 얻은 것에 서로 축하해주었다. 우리는 이제 팀이다. 수업은 끝났지만 우리는 닻을 올리고 다시 배를 띄운다. 글은 계속 쓰여져야만 한다.


  나의 글쓰기를 항상 옆에서 지켜준 나의 냥이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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