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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Nov 20. 2020

아빠의 롤러코스터

사진은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정리 벽 덕분에 인물별로 지역별로 연도별로 아이템별로 클라우드에 폴더 정리를 잘 해놓았다. 언제든 바로 찾기가 용이하고 시리즈별로 탐색하기 좋다. 내 사진이 아니어도 내가 찍은 사랑하는 지인들의 사진도 간직한다. 그때그때 사진을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면서도 지난 사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어떤 때는 영화 한 편 정도의 시간이 후딱 지나갈 때도 있다.


가족사진 폴더가 1번이다. 퇴사 후 엄마 아빠와 농사를 하면서부터는 영농 사진이 가족여행 폴더를 이어간다. 본래 동기는 결핍에서 나온다고, 퇴사하고부터는 떠나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 이제 우리는 공항대신 푸른 하늘 아래 우리 텃밭으로 간다. 말하지 않아도 그게 여행인 것을 우리는 서로 안다. 텃밭이 그 비행기 날던 하늘을 가지고 있다. 거기서 나누는 이야기가 죄다 여행인 것이다. 파란 이파리, 파란 벌레, 여러 때깔의 열매는 여행 볼거리로 부족함이 없다. 원두막에서 먹는 밥이 현지식인 것이다. 마침 우리 밭 저만치에 기차가 지나간다.  


 오늘 양파모 심은 사진을 업로드하며 여느 때처럼 왼손은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는 마우스 휠을 굴리며 지난 폴더들을 훑는다. 여기저기 팔도를 두루두루 잘도 다녔다. 산으로 바다로 섬으로 유원지로. 식물원에 동물원에. 입을 헤 벌리고 보았다. 아,할 수만 있다면 엄마 아빠의 시간을 잡고 싶다는 상념에 젖은 것도 잠시 10년 전의 한 폴더 사진을 보고는 내 얼굴이 굳어버렸다. 놀이동산의 분수대에 앉아 찍은 엄마 아빠 사진이었다. 

어떤 것도 탈 생각을 안 하기로 한 얼굴이다.

맛있는 것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 있듯이 나 역시 어디를 가면 ‘아, 여기 너무 좋다. 엄마 아빠랑 다시 와야지’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데이트할 때 아빠가 논으로 밭으로만 데리고 다녔다는 엄마의 푸념을 기준으로 그것과 가장 먼 곳이 내가 찾아야 할 곳이라는 미션이 늘 있었다. 그리하여 다음 여행지는 놀이동산이었다. 


놀이기구 탈 생각으로 날 잡을 때부터 설레었다. 물론 첫 순서는 롤러코스터로 정했다. 군대에서 총 쏜 경험 자랑하듯이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힌 지를, 올라갈 때 떨어질 때의 그 고갯짓을 일어나서까지 과하게 재연해 보여드렸다. 내 몸개그가 웃겨 죽겠다면서 내심 설레신 것은 엄마 아빠도 결코 나보다 덜하진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다음날 무슨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그 긴 대기 줄 기꺼이 다 기다리고 드디어 우리 차례. 하지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진행 요원의 제제였다. 노인 탑승 불가였다. 요원은 안내 표지판을 보시란 말만 할 뿐 마치 말을 안 배운 사람 같다. 신분증을 꺼내 확인했는지 아빠의 흰머리로 판단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그 둘 다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기억 못 하는 그 절차가 뭐든 간에 분명한 건 우린 탑승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부탁하거나 따지려는 나보다 아빠의 포기가 반 박자 빨랐다. ‘괜찮으니까 너는 타고 와’라는 아빠의 말보다 뒤 사람들 눈치에 얼덜결에 밀리듯 혼자 타게 되었다.


롤러코스터가 이렇게 심심할 수가. 그럼에도 전적으로다가 엄청 신났었다는 표정을 해야겠지. 내 표정만큼이나 엄마 아빠도 방금 같이 타고 온 마냥 기뻐해 주었다. ‘표지판이 대체 어딨다는 거야? 이따위로 일을 하다니? 매표에서부터 고지를 해줘야지 맞는 거 아냐?’라는 투덜거림을 나는 일부러 크게 했다.


“저게 위험한 거니께 으찌할 수 없는겨. 우리는 괜찮다”


그래 맞아, 안전한 바이킹으로 가자.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줄을 섰다. 여기는 다행히 줄 끝에서 확인 가능한 곳에 표지판이 있었다. ‘노인 제한’이라 쓰여 있다. 그래서 줄을 서? 말아? 엄마 아빠에게 줄을 서시라 하고 나는 줄 맨 앞으로 가서 진행 요원에게 나이를 확인하기로 했다. 또 헛수고를 할 수는 없으니까. 줄 서기와 나이 확인하기를 분담한 보람도 없이 우리는 또 못 탔다. 아니, 무서운 척 소리만 꺅꺅 지르며 앞뒤 유모차 흔들 듯하는 것이 뭐가 위험하다고? 진짜 환장하겠다. 해가 서서히 중천에 이르니 우리 중에 남자라서 짐꾼을 하는 아빠 이마에 슬슬 땀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이번엔 진짜 된다고 큰소리치는 나를 따라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물 위를 둥둥 흘러가는 보트였다. 이건 산전수전 6.25전 다 격은 우리 아빠한테는 식은 죽 먹기지. 더구나 표지판이 없는 걸 보니 됐다 싶었다. 줄이 다 없어져가는데 웬걸 표지판이 탑승구 바로 앞에 있을게 뭐람. 식은 죽은 없었다. 역시 나이 제한에 걸렸다. 난 부탁도 따지는 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책임질 테니 타겠다’는 협박조가 나와 버렸다. 당연히 협박받았다 여길 리가 있나. 내 손을 꼭 잡은 엄마는 나를 잡아당겼고 돌아서는 아빠의 땀이 주름살을 타고 뒷목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엄마 아빠는 지금 나랑 등산을 가도 그 경사길을 한 번을 쉬지 않고 앞에서 올라간다. 거칠고 커다란 농기계를 프라이팬 다르듯이 하신다. 고구마 한 자루를 어깨에 들러 업는 건 일도 아니다. 텃밭에 원두막도 뚝딱 지으시고 마을에 소가 출산할 때는 모두 우리 아빠를 찾는다. 그런데 여기선 다 소용없다.


그러고 보니 둘러보아도 노인은 울 엄마 아빠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고 뒤에 욕 한 마디가 저절로 붙었다. 노인 천만 시대를 앞두었다면서 그 많은 노인들은 다 어디 있는 건가? 갑자기 창피한 게 아닌가. 다 우리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사위나 손녀라도 있어야 좀 그림이 그럴듯할 텐데 하는 시선이었다. 과년한 딸과 머리 하얀 노인이 놀이동산이라니. 정상가족의 범주에 우리는 자격 미달이다. 


난 포기하지 않았지만 엄마 아빠는 분수대에 앉았다. 어떤 것도 탈 생각을 안 하기로 한 얼굴이다. 체제에 순응하는 자의 미소마저 보였다. 바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진인 것이다. 정말이지 여기를 폭파해버리고 싶었다. 이제 보니 안내판 위치도 다 제각각이고 놀이기구마다 제한 나이도 제 각각 다르다. 당최 기준을 모르겠다. 혹시 지금은? 하는 의문에 검색을 해보았다. 역시 지금도 자세한 설명이 없다.  성의 없는 요원들이 무슨 죄겠는가. 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내 탓이지. 너무 서러웠고 죄송했다.


우리는 아이들과 섞여 뱅뱅 도는 기차 같은 것을 탔다. 한 손으로는 기차 기둥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지난밤에 준비한 간식 아이스박스를 꼭 붙들고 계신 아빠 사진에 그만 눈물이 왈칵 흘렀다.


“아이고. 우리 아빠 이때 이렇게 젊고 멋지고 잘생기셨네.” 


혼잣말을 했지만 목이 메어 말소리는 없었다. 사진이 이렇게 두 장 밖에 없는 여행인데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고단했다. ‘으이그, 동물원이나 가지…….’ 내 맘 잘 아는 친구의 핀잔을 들은 기억도 났다.

“아이고. 우리 아빠 이때 이렇게 젊고 멋지고 잘생기셨네.”
노인에 대한 내용은 기타사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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