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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Aug 07. 2020

안녕, 감자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하지를 며칠 앞둔 첫 감자 수확 날이다. 감자 줄기 주변 흙을 호미로 살살 긁는다.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리 깊지 않은 곳에 먼저 나와 있는 녀석이 느껴진다. 그럴 때면 호미로 캐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쇠붙이에 긁히는 건 슬픈 일이다. 호미를 놓고 부드러운 손으로 흙을 걷어낸다. 드디어 첫 감자가 뽀얀 얼굴을 내민다. 태양을 바라보는 용기, 멋지다. 나는 인사한다. 안녕, 감자!


나는 언제부터인가 동물이든 무생물이든 인사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래도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부터 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인간이 그렇다. 무인도의 친구 윌슨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인간이 아닌 것에 인격을 부여하는 작업은 재미를 넘어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도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 자명하다. 의인화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징이다. 세상에 널리 인간의 애정을 확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낱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의 착각일까? 정답은 모르겠지만 감자와 나누는 인사는 분명 입꼬리 올라가는 일이다.


어떻게 주렁주렁 감자의 살덩이들이 만들어지는지 나는 알지를 못한다. 보물창고 같은 땅속,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내가 한 것이라고는 씨감자를 흙에 심기만 했을 뿐. 오일장 날 그냥 주름살이 맘씨 좋아 보이는 어르신한테서 깎지 않고 샀을 뿐. 햇빛을 마시고 비를 맞고 혼자서 알아서 다 했다. 감자를 심고 캐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나는 어릴 적부터 농사가 싫었다. 고된 농사일은 본래 일손이 부족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오빠들과는 다르게 나에게는 부엌일까지 주어졌다. 이 이중의 노동은 시골에서 여자애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 밭의 크기만큼 고향이 싫고 경작하는 채소의 종류만큼 시골은 싫은 것이었다.


자연과는 먼 도시 생활을 언제나 꿈꿨다. 그때는 몰랐다. 지금 이렇게 늙은 딸이 더 늙은 부모와 텃밭 농사를 하게 될 줄은. 꽤 괜찮다. 일 시키는 직장 상사도 없고 지긋지긋한 야근도 없다. 마음이 편하다. 땅은 내가 땀 흘린 만큼의 먹거리를 내어준다. 솔직하고 정직하다. 수확을 기다리는 기쁨은 마치 지난 시절, 수렵 채집하던 구석기의 본능을 추억하게 한다. 무엇보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즐거운 여행이다. 이 일상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고 싶다.


나는 감자가 좋다. 작가 김훈은 자두의 감촉은 덜 자란 동물의 살과 같아서 육향이 난다고 했다. 방금 흙을 털어낸 내 감자는 솜털이 남아 있는 미소년의 어깨 같다. 동골동골 골마다 감자들이 모여있다. 시골의 내가 좀 덜 시골인 국민학교로 입학한 그날에 처음 본 뭉텅이 남자애들 같다. 우유 향이 났고 보기만 해도 신기하고 흐뭇하다.


또한 식재료로도 최고이고 생각할 거리가 있어서 더 좋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과 그에 따른 미국의 경제 번영도 생각해본다.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의 거친 손도 생각해본다. 더불어 감자가 최초 남미에서부터 나에게까지 걸어온 길, 전쟁과 기근을 겪고 오해와 편견을 뚫고 온 그 기구한 운명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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