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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Aug 29. 2021

내 사유의 왕국을 새로 짓고 부수고

“가을은 독서의 계절” 사실 독서의 계절은 따로 없는데 가을이면 이 말 한 번은 해줘야 한다. 대략 10여 년 전쯤, 독서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서 먼저 한 일은 독서법 관련 책을 읽는 것이었다. 앞부분에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거기서 나는 큰 울림이 와버렸다. 본론도 가기 전에 하루치 감흥을 다 느껴버려서인지 정작 책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중간부터는 흥미가 없었다. 333법칙 같은 거는 읽었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대로 된 책 읽기는 절실히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개선의 의지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그때 이 문장을 보고부터 책과 독서는 내 일상의 코어(CORE)이자 리듬이며 루틴이 되었다. ‘삶을 개선하려면 책을 읽어라’ 그 말인데, 왜 거기서 나는 ‘회사의 성공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회사에서의 성공보다는 전반적인 내 삶의 질에 방점을 찍게 된 순간이었다. 지금은 ‘의지’라는 것에 그다지 의지하지 않지만, 20년 전 그때만 해도 그야말로 나는 ‘불굴의 의지’ 30대였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자기계발서가 유행일 때가 있었다. 자기계발서로 성공한 사람은 그 책 작가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수두룩했다. 그때의 자기계발서는 대체로 ‘열과 성의를 다해서 최선을 다하라’ ‘부지런해라, 시간이 금이다‘ 그런 것들이었다. 그중에 나는 다소 과격한 내용의 책을 좋아했던 듯하다. 다시 꺼내 훑어보다 소름이 끼쳤다.


“성질 더러운 왕따가 되어라,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라, 조직, 파워의 흐름을 읽어라. 공부모임을 만들어라,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정치에 관심을 가져라. 워커홀릭이 되어라”


나는 자기계발서를 여러 권 읽기보다는 두어 권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실천 목록을 뽑아 표를 만들고 동그라미, 세모, X표로 피드백을 하곤 했었다. 동료보다 더 성취하라고, 성과를 내라고 채찍질하였고 나 또한 그 채찍질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다. 물론 장점도 크지만 지금의 쓰잘데기없는 계획중독증은 그때의 부작용이라고 나는 본다. 


“언니 때문에 우리 힘든 거 모르죠? 부장님이 이제는 언니가 기준이 돼서 우리가 일이 많아졌어요.”


죽어라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자기계발서가 내면화되서일까. 일을 좋아하는 것도 있었지만 내 목표에 성실히 집중한 편이었고 늘 가장 마지막에 퇴근했다. 그러면서 일부 직장동료와는 공감이나 연대하기는커녕 소통이 안되었으니 점점 외로웠다. 그것마저도 나의 성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고난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 칼퇴하는 동료를 속으로는 무시했다. ‘너 같은 직원 때문에 회사가 발전이 없는 거야’ 지금 생각해도 나는 최악 of 최악이었다.

다양한 독서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성공보다는 행복이 하고 싶어졌다.

어떻게든 회사에서 인정받고 잘 나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다양한 독서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성공보다는 행복이 하고 싶어졌다. 경차 하나 살 정도 되었으니 이제 성취는 조금 느리면 어때? 야근도 줄이고 싶어졌다. 이 정도 승진했으면 주말에 회사보다는 도서관이나 공원에 가고 싶어져도 되는거 아닌가? 열정과 최선은 도덕이 아니지 않나. 인간의 특성 중 하나 일뿐. 생각하며 살고 싶어서 일을 줄이고 주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돈을 좀 못 벌고 그래서 실적도 좀 못 남기고...... 얼핏 게으르고 무책임한 거 같지만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그 근사함에 눈을 뜨니 책이 재미있어졌다. “아아, 이게 그렇구나” 그저 깨닫는 순간의 엔돌핀을 느끼면 그뿐. 어디 써먹으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진정한 독서의 기쁨이 있는 것 같다. 고전, 과학, 종교, 경제, 철학, 미술, 문명사, 우주 등 읽을수록 무지를 깨닫는 카타르시스도 있다. 한 때 회사가 전부였던 나, 자기계발서만 읽던 나를 ‘세상을 보는 나’로 바꾼 것은 오로지 다양한 책의 힘이다.  


지나 봐야 안다. 책은 절대 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자가발전하는 나를 느낀다. (물론 나만 느낀다.)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적마다 나의 사유가 옆으로 뻗어가고 위아래로 줄기가 만들어진다. 내 사유의 왕국을 새로 짓고 부수고 하는 과정들이 재미있다. 직장을 조기 은퇴할 수 있었던 것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바람 같은 지금의 삶을 가져다준 것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독서법에 관한 책을 한 권 정도는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을 행복의 매개체로 삼기를 추천한다. 아, 그리고 그때의 직장동료를 만난다면 사과를 하고 싶다. “그때 나도 너와 함께 칼퇴했어야 했어. 나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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