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 수도요
읽고 찾아낸다. 내가 당신에게 오래 바라왔던 일이다.
이마에 카드를 붙여가며 괴물이 누구인지를 맞추다가, 그 괴물이 사실 카드를 떼어낸 나 자체일지도 모름에도. 숨은 내 마음을, 숨겨진 내 몸을 너는 찾고야 만다.
그 모든 사고, 사정, 사이를 넘어 빛처럼 부서지게 웃으며 초록을 지나던 미나토와 요리. 서로를 알아챈 그들은 세상을 향한 숨바꼭질을 끝내고 땡! 하자마자 달려가듯 해방된다.
자아가 생긴 뒤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모두가 술래인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오히려 퇴행적 숨바꼭질이다. 방어하기 위해 나를 숨기되 이내 알아채주길 바라니까. 아이는 실제로 숨고 어른은 숨지 않은 척 숨는다. 유아보다 더 유아스럽게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
미나토와 요리는 폐기차에 아지트를 만들어 산속으로 숨어들어간다. 어른들은 숨지 않으며 숨기기에 오히려 발견되지 않는다. 사오리, 호리 선생님, 교장 선생님 모두 꿋꿋하게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지옥에 떨어져 있음을 전지적 술래인 우리는 이제 안다.
읽고 찾아낸다. 호리 선생님 역시 오타 한개로 어긋나버린 이야기를 바로잡으려 한글자 한글자, 한명 한명 읽어내려가지 않는가.
영화를 다 본 뒤 황인찬 시인의 시가 문득 읽고 싶어졌다. <구관조 씻기기>(2012)라는 시집을 폈고, <무화과 숲>을 영화에 포개보았다.
무화과 숲
_황인찬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열매로 오해받지만 사실은 열매가 아닌 꽃이 바로 무화과다. 자줏빛 물든 연두색 방실한 부분이 꽃받침, 물기 가득하게 입에 물었던 붉은 과육은 꽃. 우리는 단단한 껍질 안에 어떤 꽃을 숨기고 있는 걸까.
영화 '괴물'의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서로를 찾아낸 친구와 함께 세상에 잡힐세라 천진하게 뛰던 그 순간, 유년을 자꾸만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 유년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간이기에 어떤 추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리움으로 빼곡해, 가본 적 없이 자꾸만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표정만 울먹울먹하고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건, 이 텅 빈 그리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