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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우 Jun 15. 2019

난공불락의 요새 오사카성

교토 3박 4일 둘째 날

친구의 권유로 오사카성(大阪城)에 왔다.           


임진외란을 일으킨 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성이다. 


그는 천하통일의 근거지로 오사카성을 지었다. 


15년 세월 동안 공을 들여 축성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要塞)다.    

오사카성(大阪城) 지도

 육지에 섬(島)을 만든 것이다. 그 섬 안에 또 섬이 있다.          


오사카성은 20여 미터 높이의 가파른 성벽과 내 외곽의 2중 해자(垓子:인공하천)를 만들어, 유사시 적군(敵軍)의 공격을 방어하는 인공 장애물이다.  


그리고 높은 누각을 지어 적의 침입을 빠르게 알아낼 수 있도록 했다.        


조선침략(임진외란)에 실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자 그의 아들  히데요리(羽柴秀頼)가 후계자가 되어 이 성에 머물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히데요리(羽柴秀頼)에게 성을 비우고 나가라 요구한다. 그러나 히데요리는 이를 거부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이 성이 난공불락(難攻不落) 임을 잘 아는 도쿠가와(徳川家康)는 1614년 12월. 


20만 대군으로 성을 포위하여 고립시킨 다음,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대포로 포격(砲擊)을 가하며, 성 안에 있는 히데요리에게 겁을 준다. 그런 다음 화친(和親)을 한다.  


해자(垓子)와 성벽을  없애면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것이 화친 조건이다. 


히데요리는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해자(垓子) 매몰작업이 시작되자, 도쿠가와 군(軍)도 철수한다.      


1615년 5월 해자(垓子)가 다 메워진 다음, 도쿠가와(徳川家康)는  다시 군사를 끌고 쳐들어온다. 


해자가 없는 오사카성은 더 이상 난공불락(難攻不落)이 아니었다.  


도요토미 아들 히데요리는 자결을 하고, 천수각(天守閣)은 불타버린다. 이렇게 도요토미(豊臣) 가문은 종말을 맞는다.        


이것이 일본 역사에서 등장하는 오사카성 겨울 전투, 여름 전투다.      


도요토미(豊臣秀吉) 가문의 멸망은 어찌 보면 임진외란으로 피해를 본 조선사람들을 대신해 도쿠가와(徳川家康)가 복수를 해준 셈이다. 


도쿠가와(徳川家康)는 최고 권력자가 되고 에도시대가 개막된다. 


그 후 성은 도쿠가와 가문에서 복원하지만 얼마 안 되어 벼락을 맞고 불타버린다.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략을 벌한 것인가,  하늘도 이 오사카성을 저주하는 것 같다..

 

그리고 2차 대전 때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다.            


현재의 오사카성은 원래의 오사카성이 아니다. 경복궁처럼 근래에 복원된 것이다. 


전쟁과 벼락으로 폐허가 된 것을 오사카 시민들의 헌금으로 1997년 복원한다. 건축공법도 그때의 그것이 아니라. 철근을 썼다고 한다.    


2019년 5월 28일(화) 오전 8시 교토.    


교토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잔뜩 찌푸린 날씨다.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다. 어제 한국에 내린 비가 이곳으로 옮겨 온 모양이다.      


오사카 우메다역(梅田駅)으로 가는 한큐전철(阪急電鉄)은 시조 거리(四条通り)에 있는 가와라마치(河原町) 역에서 출발한다.       


우산 챙겨 들고 오전 8시. 교토역 B2 버스정류장. 4번 버스를 타고, 가와라마치(河原町)에서 내렸다. 


마침 특급열차가 대기 중이다. 여성전용칸도 있는 열차다.  특급열차를 타면 43분 만에 오사카 우메다역에 도착한다.      

한큐전철(阪急電鉄) 특급열차(特急列車)

우메다역에서 내려 건너편 오사카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 오사카성에 가는 62번 버스가 있다.


오사카성 입구(大阪城大手前) 정류장에서 하차 오사카성으로 들어선다.     


약하게 비가 내린다.  해자(垓子)가 두 개가 있으니 문도 두 개를 통과해야 성의 중심부 천수각(天守閣)에 다다를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아 걸어서 10분 거리다.          


오사카성 첫 번째 외곽 해자(垓子)의 다리를 건너면 큰 대문(大手門)이 나온다,

오사카성의 첫 번째 관문

안쪽 해자(垓子)를 건너자 또 하나의 문(桜門)이 기다린다. 안쪽 해자(垓子)에 물은 없고 웅덩이에 풀만 무성하다. 전에 메워진 해자를 그대로 둔 것 같다. 


드디어 천수각(天守閣)의 위용(偉容)이 나타난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각인데, 비를 맞으며 중국 관광객들이 성을 가득 메웠다.  마치 오사카성을 점령한 도쿠가와(徳川家康) 군대들 같다.

오사카성 천수각 그리고 중국 관광객들.

천수각 안으로 입장하려 했으나 관광객이 너무 많아 포기를 했다.      


천수각은 지상 55m, 5층 건물이다. 최상층은 전망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각종 전시물이 있다고 한다. 입장료는 600엔이다.     

비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비를 피해 부속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1~2층에 상점과 식당들이 있다. 말차(抹茶) 아이스크림 맛을 보았다. 비가 멈추기를 기다렸지만 쉽게 잦아들 비가 아니다.      


비를 맞으며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우메다역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어느덧 점심시간.     


지하 식당가에서 스테이크 백반으로 점심을 했다. 중년부부가 하는 허술한 식당인데 맛이 있다. 기린 캔맥주도 한잔 했다.     


상가 내 커피숍으로 들어오니 흡사 옛날 다방 같은 분위기다.  자리를 잡고 앉자, 종업원이 재떨이부터 가져온다. 그리고 주문을 받는다. 주변엔 모두 담배들을 피운다. 일본에서는 길거리 금연은 엄격한데,  실내 흡연은 관대하다.      


차 한 잔 하고 가와라마치(河原町)로 가는 특급열차에 올랐다.


교토 지역은 오후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가츠라(桂駅) 역에서 한큐 아라시야마 열차로 갈아타고 아라시야마(嵐山)로 갈 생각이었다. 그곳 대나무 숲(竹林)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비를 맞아가며 가는 것은 아니다 싶어, 교토 종점인 가와라마치 역(河原町駅)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다. 


다행히 가와라마치(河原町)는 보행로에 넓은 차양(遮陽)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비가 와도 우산 없이 걸을 수 있다. 

가와라마치 역(河原町駅)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니시키 시장(錦市場)으로 왔다.


서울의 광장시장 같은 곳이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장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중국인뿐 아니라 서양인, 전 세계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비가 오고 있으니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몰려온지도 모르겠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별로 안 보인다.


니시키 시장(錦市場)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이곳의 풍부한 지하수를 이용해 우물을 파서 고기를 보존했다고 한다.      


헤이안 시대(794~1192)부터 신선한 생선을 파는 가게가 이 곳에 모여들고, 에도시대(1603~1867)에는 생선시장으로 크게 발전한 것이 니시키 시장이다.      


1927년에 교토 중앙 도매시장이 이곳에 개업을 하고 다수의 수산물 가게가 이전하면서 야채, 장아찌, 과일, 과자 등 새로운 가게도 따라왔다. 현재 120개가 넘는 각종 점포가 니시키 코지 도리(錦小路通) 양쪽에 즐비하다.

교토의 부억 이라는 별명이 붙은 니시키 시장

사람 많고 복잡하여 돌아서려는데,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빨간 주꾸미 같은 꼬치를 먹어보았다. 머리 안에 노란 메추리알이 들어 있다.  


그리고 니시키 시장을 빠져나왔다.      


오후 5시경 4번 버스를 타고 교토역으로 돌아왔다.  


다시 찾은 스시노 무사시(寿しのむさし)


어제 대기 인파로 되돌아온 무사시 회전초밥집을 다시 찾아갔다. 오늘도 역시 대기 줄은 있었지만 이른 시간이라 어제 같지는 않았다. 우리 앞에는 단체인 듯한 매우 소란스러운 중국 중년 여인들 8명이 대기하고 있다. 

회전초밥 "무사시(寿しのむさし)"

품질은 그저 그랬지만 값이 싸다. 저렴한 가격이 많은 손님들을 불러 모으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엄청난 양을 먹고 나간다. 우리 둘이 먹은 양의 두 배는 먹는다.  물론 젊은이들이지만.


저녁 후 도쿄역 산책을 하고 호텔로 들어왔다.      

교토역 지하상가.

오늘은 어제의 거의 두배인 13km, 19,707보를 걸었다.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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