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고 싶지 않아 난 진심이야
나는 16살 때 혼자 미국 외딴 시골에서 약 1년 정도 지냈었다. 학교에 한국인은 딱 1명, 그리고 외국인도 20명조차 되지 않았던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그곳에서 어쩌다 3남매를 키우던 싱글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는데 가정 형편이 풍족한 집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담배 피우는 호스트 맘과 내 돈을 훔쳤던 호스트 첫째 시스터가 있었다. 미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저소득층 가정이었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은 피자, 소면 스파게티, 햄버거 등 냉동식품이나 가공식품이었고 채소나 과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호스트 가족은 평소에는 서로에게 애정이 넘치지만 화가 나면 180도 달라진다. 엄마와 아이들은 서로에게 모욕적인 말을 내뱉고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내가 자란 한국 가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환경이었다.
누군가가 미국에서 지낸 1년은 어땠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지, 평생 못할 경험도 하고 좋았어"라고 대답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정말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분명 내가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겠지만 1년의 시간 중 일부분일 뿐이다. 내 미국생활 1년의 전체 장르는 해피엔딩이고 사이사이에 나쁜 일들이 극의 긴장감을 높였을 뿐이다.
내가 미국에서 지낸 1년을 회상하면 호스트 남매들과 매일 스노우 모빌을 타고 집 뒤에 있던 숲을 누비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했던 크리스마스와 집 앞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해가 질 때까지 썰매를 탔던 기억들까지, 그때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16살이었지만 마치 초등학교 1학년처럼 순수할 수 있었던 1년이었다. 언제나 경쟁해야 했고 내가 하고 싶은 동아리 활동조차 미래의 입시와 연관시켜 선택해야 했던 한국 생활과는 달랐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1년을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미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No'이다. 1년 미국에서 지내고 깨달은 점 중 하나는 한국 집이 최고라는 것, 그리고 집 나가면 고생 시작이다. 가만히 있으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지낼 텐데 왜 타지까지 가서 시간과 돈을 주고 고생을 하겠는가.
내가 대학교 졸업할 때쯤 사귀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이미 3년 차 전형적인 K-직장인이었는데 한 달에 몇 번이고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해외에 가면 돈도 더 받을 수 있고 이런 직장 스트레스는 없겠지?', '한국은 이래서 살기 힘들어, 이민 갈까?' 등 서구 문화에 대한 로망이 가득한 질문들이었다.
그때마다 반대의 질문을 던졌다. '대놓고 당하는 인종차별 견딜 수 있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자신 있어?', '한국에 있는 가족이랑 친구들 자주 못 봐도 상관없어?'라고 말이다.
몇 년 전 내가 순수하게 해외에 대한 로망을 갖고 미국으로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했었다. 그때 부모님이 나에게 던진 질문들을 그대로 그 친구에게 하고 있었다. 역시 부모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또 한 번 느낀다. 하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가도 미국에 똑같이 갈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가 경험을 했기 때문에 해외에 대한 로망이 깨졌고 현실을 배웠다. 그때 겪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언제 간 살아가며 배웠을 현실이다.
재밌는 사실은 내가 K-직장인이 되고 2년 차가 될 무렵 사직서를 내고 호주로 떠났다. 해외살이를 극구 반대하던 내가 나의 컴포트 존인 한국을 떠나 호주살이 7년 차가 되었다. 호주로 처음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딱 1년만 호주에 있다 오는 거야'라고 외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아이러니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잠재의식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미소 짓고 있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