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기록 1
- 너무 구체적인 정황은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아 이미 오래전 글이나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 자살과 관련된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불편하시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가라앉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이번 편을 읽지 않으셔도 다른 글을 읽는 데 문제가 없으니 넘기셔도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숨을 멈추는 시간이 있다.
12시 12분. 12월 12일. 1212가 연달아 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는 그 순간들.
EBS 다큐프라임 ‘감정시대’ 제4부 <너무 이른 작별>이 2016년 12월 12일 9시 50분에 방영된다는 것을 알았다. 2011년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살 유가족을 다룬 이후에, 얼마나 오랜만에 방송에서 보는 이야기인지. 그런데, 나는 이 방영 일자를 보는 순간 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날은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벅차고, 힘들고, 지치고, 서글픈 날이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12일 나는 혼자서 엄마를 발견했다. 내가 실제로 본 것은 그림자가 아닌 엄마이지만, 그림자 같은 형체만 기억날 뿐, 다른 어떤 색도 옷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엄마가 있었고,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빠는 전화를 못 받았고, 삼촌에게 전화를 했고, 삼촌은 경찰을 부르라고 했고, 나는 삼촌에게 어딘가에 가있을 테니 정리되면 불러달라고 했지만, 삼촌은 거기 있으라고 했고, 나는 그냥 내 방에 앉아서 아빠가 사준 mp3를 귀에 꼽고, 경찰이 오길 기다렸다. 경찰이 오고, 구급차가 와서 엄마가 내 방문 앞을 지나 현관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다른 가족들이 도착했다. 엄마를 보고 제일 먼저 한 것은 그 자리에 잠깐 토끼뜀 자세로 앉은 것이며, 나는 다가가지 않았으며, 우는 대신 전화를 했다.
"어, 저기 사람이 죽었는데요"
"....엄마가요"
"... 음...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여기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요."
도착한 경찰이 말하기를.
"지금 어머니가 많이 안 좋으신데... 많이 불안해 보이니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나는 mp3로 랩을 듣고 있었다. 엄마의 꺼진 휴대폰, 엄마의 유서, 엄마가 남긴 돈 같은 것들을 책상에 올려둔 채로.
2008년이 지나고 이듬해 2009년부터 매년 12월 12일이면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묻길 바랐다. ‘엄마 보러 갈래?’ ‘엄마 뿌린 데 찾아봴래?’ ‘제사 지내는 게 낫지 않겠니?’ '기분은 좀 괜찮니?‘ 뭐, 아무 말이든 오늘이 바로 그 날임을 알고 이야기하는 누군가가 있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2016년 오늘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 저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는 사실을 말해드린 아빠도 언급이 없었다. 우리가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잊은 것인지는 서로에게 비밀이다. 나는 기일 당일에 한 번도 엄마를 찾아간 적이 없다. 찾아가다가 되돌아온 적은 있어도.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릴 때 이혼하셨다. 그때는 IMF 직후라 돈이 없었고, 나는 조부모님 슬하에 컸다.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된 지 1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엄마랑 오랜 기간 알고 지내던 남자분이 먼저 자살을 하셨고, 3개월이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2008년 12월 10일, 외고 입학시험을 치던 날 엄마는 내게 외할머니가 주셨다는 반지를 주었고, 11일엔 엄마를 병원에 데려갈 테니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하루 있으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12일에 갔을 때 엄마는 집에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이미 11년을 서로 남으로 사신 분들이었다. 엄마랑 그 공간에 같이 산 것은 나였고, 그 공간을 들렸던 유일한 타인은 삼 개월 전에 먼저 죽은 그 아저씨였다. 아빠와 나는 서로 엄마 이야기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몰랐고,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런 건 남한테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은 가족 사이에서도 금기다. 12월 12일은 다른 모든 나머지 364일처럼 흘러간다. 나는 누군가 갑작스럽게 죽는 것이 두려워 매일매일 할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이건 과한 기대지만, 누군가가 내게 묻길 바랐다. 내가 내 사정을 말한 손가락으로, 발가락으로 세도 한참 넘는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든지 아무나. '그래서 기일은 언제냐고' 하지만 사실 누가 친구 혹은 친한 동생 부모님의 기일을 묻는가. 그것도 자살로 돌아가셨다는데. 내게 아픈 기억임이 틀림없기에 상대가 보인 배려들에 둘러싸여, 여전히 그 어느 누구도 12월 12일에는 말이 없다. 나는 여전히 그날이 ‘금요일이었어’라고는 말해도, 12일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딱 한번 말했고,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했었고, 상대는 같이 있어주었으나, 그날은 내가 보낸 12월 12일 중 가장 비참한 날이었다. ‘이렇게도 내가 가진 것은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했던, 내가 타인에게 부탁하거나 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인정해야만 했던 패배의 날.
올해 중순쯤 ‘엄마 제사는 지내니? 안 지내지?’ 하는 질문을 받았다. 친척 어른이었다.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2016년의 12월 12일은 그냥 과제를 하고, 밥으로 라면을 먹고, 먹다 남은 치킨을 데워먹고, 머리를 바꿨다. 매년 그렇듯이.
작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지 않기로 다짐해놓고, 기어이 티비도 없는 자취방에서 노트북으로 방송을 봤다. <너무 이른 작별>, 칼라 파인의 책과 같은 제목이다. 이미 읽은 책의 제목이었고, 남편을 자살로 잃은 두 아내의 이야기가 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엄마가 저런 것들을 겪었겠구나... 엄마는 그 남자분을 사랑했으니, 아마 저런 감정들을 느꼈었겠지.' 그리고 방송이 끝나자 한마디가 덧붙었다. ‘만약 좀 더 살았더라면.’
12월 12일에 누군가가 떠났다는 것은 내가 알아주고 있다. 그러나 12월 12일을 버텨내야 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사실은 내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르겠다. 하루가 길었고, 내년은 어떠할지.
야심차게 브런치에 자살 유가족으로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으나,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