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기록 2
기일에 같이 있어 달라는 내 말에 누군가는 그렇게 답했다.
나는 2015년의 패배의 날을 기억하면서도, 2016년에 그렇게 그 날을 되돌이켜 보는 글을 쓰고도, 또다시 누군가에게 같이 있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누구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둡고 무겁고 무서워서 못하겠다던 사람은 내가 나의 약함과 두려움을 가장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2016년에 무슨 생각으로 글을 적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고작 두 편을 쓰고, 몇 개월이 지난 뒤에 쓴 글은 발행을 취소했다가, 2년이 지나고서야 다시 발행을 눌렀다.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노골적이고 동시에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알아볼까 봐 두려웠다.
그 사이 브런치에서 휴먼 계정 전환 메일이 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왜 글을 쓰기를 멈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글을 멈추는 그 사이에 내게 2014년 어느 날 ‘그런 너를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라고 말했던 누군가를 다시 마주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는 기일에 같이 있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거절해도 내가 덜 상처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런 무리한 부탁을 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아빠가 엄마를 뿌린 장소에 다녀왔다고 사진을 보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아빠가 엄마를 보러 간다고 하면, 나는 ‘엄마’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아빠의 ‘엄마’ 였었고, 나는 실망했다.
과거의 일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자살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살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신기한 것은 다시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을 하면서, 제목을 ‘물고기의 자살 수기’로 하기로 했는데, 이미 어항에 대해서 비유를 했더라. 2년 전에도. 아마도 노래 가사를 만든 적이 있기 때문일 거다.
다시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오늘 관련된 책들을 읽었고 조금 울었고 어둡고 무겁다던 그 애가 사실 어쩌면 유일하게 내 두려움과 나약함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쓰기로 했다. 내가 쓰는 글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혹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나의 가족에게 상처가 될까 두렵다.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