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기록 4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꽤 오래되었다. 더 이상 매일 전화를 걸지 않는다. 자주 찾아뵙지도 않는다. 살기가 바빠서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댄다. 올해 3월 즈음이었나 친구와 통화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무섭다고 울었다. 그 친구는 기일에 함께 있어주는 게 어둡고 무겁고 무섭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각자의 삶이 너무 무겁지는 않길 자주는 아니고 가끔 응원한다.
사람들이 둘째를 낳는 이유가 부모가 죽고 난 뒤 홀로 남겨질 첫째를 위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둘째를 낳는 것이 경제적, 육체적으로 부담이 되고, 사랑도 분산이 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이를 걱정하는 거라나.
"왜 하나만 낳았어? 어디 숨겨둔 자식 없어?"
"하나 더 있었으면 하나는 내다 버려야 했지"
즐거운 농담이었다. 이혼한 아빠에게 숨겨둔 자식으로 형제자매를 만들어 달라는 딸이나, 조부모에게 양육비를 준 것 같지도 그렇다고 딸에게 용돈을 넉넉히 쥐어주지도 않았던 것 같은 아빠나.
외동이 아니었다면 형제자매와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했을까 상상해 본다. 알 수 없다. 물론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가족이었다면 남겨진 아빠와 내가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했을까? 이것도 알 수 없다.
아빠가 어떤 방식으로 이혼한 아내의 죽음을 애도했는지는 모른다. 서로를 돌볼 만큼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고 그저 어색했을 수도 있다. 아빠와 한 집에서 산 기간은 기억이 맞다면 8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중 5년은 태어나서 이혼하기 전까지이고 나는 만으로 스물여섯. 좋을 대로 해석하자면 우리는 각자의 죄책감이나 불안, 슬픔을 없애기 위해 서로가 말하지 않는 부분을 굳이 들춰내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에게 엄마는 아내였을까 아니면 남이었을까. 초등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날은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는 나를 위해서 함께 책가방을 샀고, 학교 규칙에 맞춰서 검은색 케이스위스 책가방과 검은색 나이키 신발을 샀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소원을 빌 때면 가족들과 함께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즈음인가 엄마가 너도 이제 알아야 된다며 부모는 이혼을 했다고 말했다. 그 뒤에도 여전히 아빠는 일 때문에 떨어져 사는 거라고 했고, 나는 더 이상 같은 내용의 소원을 빌지 않았다. 새로 바뀐 소원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트라이더나 메이플 스토리 같은 게임을 했고, 친구들을 따라 놀러 나가는 걸 좋아했고, 숨어서 밤새 게임을 하다가 할머니가 문을 여는 것 같으면 컴퓨터 전원을 발가락으로 끄고 빠르게 침대에 눕는 걸 반복했다. 만화책도 많이 읽었고, 치마도 줄이고 화장품 파우치도 생겼다. 중2병에 걸맞은 많은 짧은 글귀들을 방 벽지에다 컬러 매직으로 써놓고는 했는데, 친척 어른들이 훗날 그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는 민망한 마음을 숨기고 그땐 어렸죠 하고 웃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이 되자 엄마와 둘이서 함께 살게 되었다.
죽기 전에 엄마는 아빠에게 문자 메시지를 남겼는데, 문자 메시지는 전송되지 않은 채로 엄마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다. 정리를 해달라는 내용이었고, 아마 내가 보기 전에 현장을 정리해달라는 뜻이었겠지. 바람과는 별개로 도착한 건 나였고, 열쇠 수리공을 불러 문을 열어달라 하는 것도 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준 용돈을 고스란히 열쇠 수리공 아저씨에게 주었다. 아저씨는 교복을 입은 중학생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고, 문 안쪽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68년에 태어나서 08년에 자살로 죽은 사람. 남편과 이혼.
오랜 기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꽤 시간이 지난 후 어느 즈음에는 나는 너무 어렸고,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최진실을 좋아했다. 비슷한 방법이었다. 연예인 자살 사건이 보도되면 자살자 수가 늘어난다. 전년도 해당 달과 비교해도, 바로 직전 달과 비교해도, 혹은 평균 사망자 수와 비교해도 늘어난다. 이런 베르테르 효과는 약 2달간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10월 2일과 12월 12일. 최진실이 죽고 그 뉴스를 보던 엄마가 생각난다. 12월 10일은 내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다. 엄마는 최진실을 좋아한다고 했다.
2008년은 금융위기 이후에 경제가 얼어붙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한국의 자살은 IMF 이후 늘 경제적 요인과 함께 해왔다. 이때 금융위기의 여파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여성들에게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논문도 있다. 가설의 테스트 방식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바로 그때가 그런 시기였다는 건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는 않는다. 근데 원래 이혼한 사람이, 돈이 없는 사람이, 덜 건강한 사람이, 종교가 없는 사람이 더 많이 자살한다. 넷 다이니 굳이 하나를 특정해 이유를 추정하진 말자. 어차피 모른다.
엄마는 기자였다고 들었는데, 실제인지는 모른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직원이었을 수도 있고. 옷 가게를 직접 운영했었고, 다른 사람의 정장 매장을 봐주는 일을 했었고, 큰 레스토랑의 매니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어떤 날에는 엄마가 피자헛에 면접을 봤는지, 지원서를 썼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을 하기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그때 엄마는 비참해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무슨 큰일인가 싶기도 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마지노선 같은 게 엄마에게 있었다. 엄마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받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아빠랑 함께 지내게 되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차상위계층 정부 지원을 신청을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은 집에 돈이 없긴 했는데, 그게 무슨 최저 생계비 이하의 삶이거나 돈으로 인해 그 어떤 선택지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집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니까. 돌이켜보면 엄마는 언젠가 같이 살게 될 거라 믿었던 8년을 연애하던 남자가 연락이 끊기고 생계에 대해서 걱정하던 커리어가 끊긴 중년 여성이었고, IMF 이전에만 해도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하던 여유 있는 집의 하나뿐인 딸이었다.
자살한 부모가 자식에게 남긴 유서들을 보았다. 책으로도 읽고, 기사로도 읽고, 논문에서도, 정책 자료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구구절절하다. 미안하다는 말도 많다. 내게 남겨진 메모는 그렇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과 '파이팅'과 '화이팅'이 적혀있었다. 짧았고 이유도 없고 뭐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엄마는 수신인은 이미 죽고 없는데도 읽을 사람 없는 긴 편지를 두 통이나 남겼는데, 나는 그 길이를 보고 그냥 다시 편지를 봉투에 넣었고 친척 어른의 손에 그걸 넘겼다. 그 내용이 지금은 궁금하다.
엄마는 사는 이유가 나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는데, 왜 나를 두고 갈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가 어떠한 무언가, 삶, 행복, 의미 같은 것들의 이유라고 하면 무겁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게 그냥 말이고 말은 삶의 방향과는 무관하다는 걸 받아들인다. 지금은 그렇겠지. 어떨 때는 아니고.
아버지를 학창 시절에 잃은 아는 오빠가 있다. 같이 술 한잔 하다가 물었다. 오빠도 '아들'인데 '아버지'가 없다는 게 어떤 빈자리로 느껴지냐고.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닮고 싶든 아니든 모델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데, 호프 에델만의 "엄마 없는 딸들"이라는 책에도 어머니를 잃은 여자 아이들이 겪는 혼란이 나온다. 나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아빠가 보면 슬퍼할까 봐 한 동안 책을 숨겨놨었다. 대학 오면서는 아빠 책장에 꽂혀있게 됐지만.
40이 넘으면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여자는 어떻게 사는 걸까?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원래 20대 때는 40대 이후는 상상이 안 되는 게 당연한 거기도 하고. 당연한가? 뭐, '부모처럼 안 살 거다-부모만큼 살 거다' 이런 생각 하지 않나? 아닌가, 모른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그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모르겠다. 친구들의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을 보면서 그와 비슷한 엄마의 모습을 상상한 적은 없다. 살아계셨으면 어땠을까?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인생이 지금과는 아주 달랐을 것이라는 느낌은 있다. 그게 좋은 쪽일지 아닐지는 단언할 수 없다.
1) 베르테르 효과_ 한국 사례에 대해서는 논문이 아니라 정책 관련 보고서를 읽어서 '두 달'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는데, 어떤 보고서인지는 생각이 안 난다.
2) 문다슬, 정혜주. (2018). 두 번의 경제위기와 실업, 노동빈곤, 그리고 젠더. 한국사회정책, 25(4), 233-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