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유가족이라고 말하기

정상가족 그런 건 잘 없어

by 얼떨결정
남은 흔적들 : 꿈과 망상, 강박

엄마를 자살로 잃고 나서, 독서실 책상 같이 앞이 가로막힌 공간에 있으면 누군가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때의 상상들은 내가 아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상상이기보다는 재난이 닥쳐서 불특정 다수가 죽는 상상이었다. 전쟁이거나 자연재해. 꿈을 꿀 때면 모두가 죽고 늘 나만 살아남았다. 꿈에서도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곤 했다. 나는 주로 당사자이기보다는 관찰자였고, 사건 현장 속에 있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내 친구는 누가 자기를 죽이러 온다던데, 나는 나를 죽이러 오거나 내가 죽는 꿈은 꾸지 않는다. 화재가 일어나고 모두는 죽지만 나는 살아남는다.


극단적인 상상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그걸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내가 어릴 적에 어떤 상상을 했었는지 기억했기 때문이다. 아빠랑 엄마가 사실은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초록색 공룡 같은 괴물이어서 밤마다 껍질을 벗고 나오는 상상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으레 하는 상상인지, 아니면 이혼 가정이어서 그런 상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내가 그런 상상을 하는 아이였을 수도 있고.


확실히 엄마의 자살 때문에 생긴 영향이라고 한다면, 나는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잠수 타는, 즉 연락에 모두 답장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화를 내는 애인들을 매우 싫어했고, 당장 헤어지고 싶어 했다. 기한을 정해주면 일주일도 기다릴 수 있었지만, 무엇을 하는지 말해주지 않고 네 시간을 넘어가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연락이 갑자기 안 되면 불안해했다. 사고가 났을까 봐. 이제는 안 그런다.



정상가족 찾기: 그런 건 잘 없어


나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생각보다 많더라고. IMF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거다. 본래 돈이란 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가족을 흩어지게 하니까. 그래서 쉽게 말하고 다녔다.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사실도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한테 잘 말하고 다녔는데, 나름 친했던 친구가 그런 이야기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말라는 말에도 괘념치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은 아무에게나 말할 수 있었고, 그걸로 누군가가 뭐라고 하면 너네 집은 가정교육은 글렀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하는 학생, 밝고 유쾌한 농담을 즐기는 친구 같은 이미지와 함께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냉소적인 면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 방향은 가까운 가족에게도 그대로 드러났다. 엄마는 내 친구들을 보고 나서 M과 함께 놀지 말라는 말을 했다. 애가 좀 우울해 보인다나.


"걔가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빠랑 둘이 살아."

"그런 애랑 친하게 지내지 마. 애가 우울해 보이더라."

"엄마, 그렇게 말하면, 내 친구들 부모님도 나보고 그런 애라고 그래."


M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내 친구였다. 엄마는 내 대답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싸우는 부모보다 이혼하는 부모가 낫다 주장하고, 친구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으시면 이혼 안 하시냐고 물었고,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인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하는 게 싫으면 괜찮은 척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는 게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정말로 집에 소위 말하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내기라도 하는 걸까? 나와 친해지는 사람들은 모두 집에 문제가 있었다. 대체로 모든 가정사의 결말은 이혼이었지만 그 사연은 다양했다. 누군가가 아파서 오래 고생을 하거나, 누군가가 우울증 약을 오래 먹거나, 자녀가 결혼하는 걸 보고 나서 이혼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부모를 보거나, 부모 중 누군가가 바람기가 있거나, 폭력적이거나.


아니 근데 이혼이 문제인가? 글쎄. 정상가족에 관한 신화는 깨어지는 게 정상인 시대로 가고 있지 않나? 정상가족이란 표현 자체가 4인 핵가족에 관한 찬양과 냉소를 동시에 포함하는데? 이 이야긴 다음에 하자.


어찌 됐건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집에 문제가 있었다. 사실 다들 문제가 있을 거고, 내가 그 많은 사람의 가정사의 일부분을 엿본 것은 내가 먼저 내 가정사를 밝혔기 때문에, 그들도 마치 누가 더 불행한지 내기하듯이 하나쯤 말해준 것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너그럽게 자기 연민은 스스로 하기로 하고 서로를 더 불쌍히 여겨주곤 했다. 우연에 의한 행운이지만, 부모님 두 분과 멀쩡히 찍은 사진이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정말 가깝다고 말하기는 조금은 어려운 '그냥 적당히 아는 사이'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신기한 것은 IMF를 지나쳐 온 한국 사람들에게 자기 가족은 아니더라도 친척 누군가 한 명쯤은 집이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 형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사업병 걸려서 매번 돈 빌리러 오는 친척 어른 이야기 들어보신 적 없으신지? 주변을 잘 떠올려 보라. 만약 자신의 가족과 주변이 멀쩡한 가족 형태로 행복하다면, 그 행운을 만끽해도 된다.



자살 유가족이라고 말하기


여하간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밝히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던 청소년기의 나에게 엄마가 자살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가 자살하셨다는 사실을 몰랐다. 지금도 모르실 거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바뀐 건 크게 없었다. 가끔 상상을 하고, 안 좋은 꿈을 꾸고, 살기가 귀찮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한국의 입시라는 건 모든 학생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므로 새삼스럽지 않았다. 처음으로 울면서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한 사람과 헤어졌을 때는 사는 게 무서워졌다. 내 잘못으로 관계가 끝난 게 명확하게 느껴질 때는 죽고 싶었다. 근데 이거 다들 그러는 거 아닌가?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면 죽고싶다고 하는 글이 인터넷에는 많던데.


특정한 상황 때문인지, 내가 자살 유가족이기 때문인지를 구분하는 게 어려웠다. '언제까지 사로잡혀 있을 생각이지?'라는 자책을 종종 했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말하는 것이 쉬워졌다. 술 먹다가도 쉽게 말했고, 담배 피다가도 말했고, 그냥 관련 주제가 나와도 말하고, 내 인생 계획을 늘어놓을 때도 말했다. 그 일로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상대방의 반응에 너그러웠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그게 극단적인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는 없었으니 행운이 있었던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나, 배우자를 잃은 경우에는 편견의 시선이 쉽게 돌아온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사자에게 무언가 잘못한 책임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식의 의심을 하는 것이다. 아마 성인이 된 이후에 부모를 잃는 자녀도 비슷한 비난과 편견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의 나는 그런 편견을 가질만한 사람들도 면죄부를 줄 만큼 어렸으므로, 그런 시선에서 자유로웠다.


나처럼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던 때에는 이해가 잘 안 되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건 내가 자살 유가족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족 중 누군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서로 할 일이 전혀 없다! 장례식 안내 문자 말고는 정말 이야기할 일이 잘 없으므로, 본의 아니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였던 것이다. 다만 다행히도 내가 이야기를 한참 하던 시절은 대학 시절이고, 우리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바쁜 와중에도 술을 먹고, 미래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놀고, 시험기간이면 공부를 좀 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생의 불만을 몇 시간이고 주절거리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내게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할 때 "이걸 왜 나한테 이야기하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므로, 남들도 그랬을 거라고 쉽게 믿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나의 반응


처음에는 내가 누구에게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수가 점점 많아져서, 누가 알고 누가 모르는지를 나도 모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했고, 누군가에게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짧게 말했다. 대체로 그때의 내 감정은 생략된 채 사건의 과정만 나열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그때 이후로 내가 너무 혼자인 것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어떤 '말'을 할 때는 그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언가 원한다면, 그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내가 어머니의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바라는 것이 친구가 자살에 관한 농담을 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거나, 혹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면, 그런 요구 사항까지 덧붙여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이런 요구 사항이 덧붙었었다면, 내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달라졌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발암이다', '암 걸리겠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보자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말이 암 환자 가족이나,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는 글이었다. 나는 그 글에 공감을 하면서도, 그런 종류의 부탁을 타인에게 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물론 가끔씩 예민하게 굴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는 자살에 관한 농담을 함께 하는 축에 속했다.


나의 이야기 방식, 그때의 분위기,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어떤 때는 위로였고, 어떤 때는 그랬었구나 하는 사실 확인이었고, 놀람이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엄마의 자살과 그 이후의 내 삶은 우리의 '죽고 싶다'라는 막연한 바람, 현실에 대한 희미한 좌절들을 가로막는 방지책이 되기도 했다.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느끼기에는 자기들 현실이 더 고달픈데, 내 주변 사람들은 늘 나를 더 안타까워했다. 너에 비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글쎄.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타인의 불행을 자신을 위한 위안으로 삼는 기만 속에서 우리는 어느 쪽이었을까?





언젠가는 ‘정상’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누군가의 일기를 엿본다고 여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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