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누구'처럼

나와 무관한 사람의 자살을 볼 때

by 얼떨결정

20대 초중반, 농담을 자주 했다.


"인생은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인생은 설리처럼, 인생은 Z처럼"

세 사람의 공통점은 여성이고, 여성이면 으레 하지 않을수록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Blank Space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팝도 컨츄리 음악도 즐기지 않았지만 'You look like my next mistake'라는 가사를 좋아했고, 전 남자 친구 리스트를 들먹이는 가사가 유쾌했다. 전 남자 친구들을 굳이 노래에 등장시켜서 욕을 먹고 1년에 20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셀럽.


설리에게 관심을 가진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적은 없다. 아역 데뷔를 했었다는 건 오늘 알았고, 그룹으로 데뷔를 했을 때도 그룹을 탈퇴했을 때도 탈퇴 이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언론과 SNS에 회자될 때도 그녀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어떤 악플을 달든 말든 SNS를 계속하고 인생을 즐기는 것에 호의적인 정도였고, 사람들이 남 속옷에 신경 쓰는 걸 보니 사는 게 여유로운가 보다 하는 정도.


Z는 나의 친한 친구였는데, 20대 초반 우리가 연애에 목매는 것처럼 스스로 신파극을 만들 때 그런 공통의 정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걸 택하는 소위 '쿨'해 보이는 인생을 사는 '여자'들, 그리고 공통적으로 그 선택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는 사람한테 욕을 먹는 사람들처럼 살자고 외쳤다. 이렇게 '인생은 누구처럼'이라고 중얼거리며 담배를 피우거나, 웃거나, 울거나, 술에 취해서 깔깔거리던 순간들은 나와 내 가까운 사람들이 스스로의 내면을 타인의 도움 없이도 홀로 지킬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다음 선택은 그들처럼 할 거라는 다짐의 순간이기도 했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실제로 세 사람의 삶이 그랬다고 믿지는 않았다. Z는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 Z가 얼마나 사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는지, 언제 나약해졌는지, 얼마나 사람들의 말에 상처 받았는지 옆에서 지켜봐 왔고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렇듯이 나머지 두 사람도 그렇겠지.


"인생은 설리처럼"이라고 더 이상 웃으며 떠들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표현을 쓰는 건 웃기지만, 언론의 보도 방식이 매번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지금도 논란이 많지만, 2008년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댓글도 조금씩 나아진다(적어도 사망 관련 기사에서는 그런 것 같다).


연예인의 자살 이후에는 많은 위로가 덧붙는다. 이미 떠난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느껴질까.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는 걸 알까? 나는 내세가 없기를 바라는 사람인데, 종교적으로 자살을 죄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발 내세가 없길 바란다. 세상에 엄마가 돌아가신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영혼이 지옥에 있거나, 그 죄로 인해서 자살한 공간을 계속 머물러야한다거나 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플지. 다행히 요즘 종교계에서는 자살로 사망한 사람과 자살 유가족에 대해서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원래 애초에 종교인이 아니어서 그냥 나 편한 대로 생각했다. 게다가 삶 이후에도 삶이 지속되다니, 삶을 끝내길 바란 사람한테 조금 가혹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솔직히 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살고 싶어 한다는 식의 말들이 많은데,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이 정말로 원한 게 뭐였는지, 살고 싶지 않다인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인지 모른다.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었는데 그게 어려웠겠지.


유가족으로서 '자살이 막을 수 있는 있는 일인가, 그 사람은 실제로 살고 싶어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답하기 쉽지 않다. 자살은 비극이어서, '예방'할 수 있고 '막을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하거나 적어도 그렇다고 믿어야만 비극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삶은 유가족이 돌이켜 볼 때 잘 버텼고, 이제 편안할 테니 되었다고 회자되기도 한다(사람마다, 유가족마다, 심지어 한 가족일지라도 느끼는 방식은 다 다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가장 가까운 지인으로서, 혹은 가족으로서는 '막을 수 있었다'라는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정해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더 잔인한 일일 수 있겠지. 답을 할 수 없는 문제다.


확실한 건 전문가들은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살 유가족에게 필요한 말은 '막을 수 있었다'라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유가족이 어떤 시점에 개입을 잘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비난(스스로든 외부로부터든)이 연상된다. 그렇다고 '막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건 안된다. 자살 유가족은 그 자체로 자살 고위험군이 되어서 유가족의 자살을 막는 것이 한 사람의 자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과제가 되어버린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던 때에는 '자살'과 관련된 소재가 나오면 긴장했다. 영화나 소설, 웹툰에서 소재로 등장할 때, 기사에서 사건을 볼 때, 농담처럼 하는 '자살 각' 같은 말을 들을 때 내 내면의 공기가 바뀌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누가 올린 죽고 싶다는 글에 2000자가 넘어가는 긴 메일을 보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언니'라고 부르면서 글을 썼더라고. 고1 때였다. 답장이 왔었는지, 그 사람이 살기로 그 순간이나마 택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보냈던 그 글에는 내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기말고사를 앞둔 이 중요한 순간에도' 쓴다고 적혀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농담처럼 '자살 각'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특별히 노력은 안 했고, 그냥 시간이 지나니까 되었고, 그게 그렇게 아리지 않았다.



"인생은 설리처럼"이라고 더 이상 웃으며 떠들 수 없게 되었다. 정말로 그런가. 어떤 사람이 생을 끝내는 방식이 그 사람의 생의 모습을 모두 어둡게 만드는 것, 남아있는 흔적에서 보이는 밝음의 이면에 숨겨진 어두움이 있었다고 깨닫게 되는 것으로 정해진 것 같아서 서글프다.


올해 3월 친구에게 편지를 썼던 내용에 이런 부분이 있다.


"우리는 그리고 모든 인간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살아갈 힘을 얻고 또 죽어버리는 것 같아."

"세상에 살면서 그렇게 많은 행운과 선명하게 행복하고 즐거운, 감사한 순간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을 우리가 언젠가 멈출 수 있게 될까?"


나는 살아가는 것보다 스스로 죽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이지. 물론 부모님이 아시면 슬퍼하겠지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부모님도 없으니까 여기서는 모르는 척한다.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순간 운이 아주 나쁘지 않다면, 누구에게나 반짝거리는 찰나들, 길게는 순간과 시간들이 있다. 마지막 선택으로 어떤 삶이 어두움의 연속으로 보인다는 건 슬프다.


엄마가 언제 행복해했었을까? 확실한 건 집에서 엄마 애인 되시는 분과 함께 셋이서 월남쌈 비슷한 걸 해서 생새우와 파인애플을 싸 먹었고 그때 엄마가 행복해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할머니 손에 오래 자라서 엄마랑은 안 닮았다고 화를 냈을 때는 매우 슬퍼했을 거다. 기껏 엄마가 요리한 간장 떡볶이를 내가 거실 바닥에 흘렸을 때는 어땠을까? 나는 짜증이 났었는데,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는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간장 떡볶이가 그나마 제일 맛있는 거였는데.


자살한 사람보다는 다른 무언가로 기억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이혼한 자살한 중년 여성이기보다는 내 엄마였고, 그 나이 때 여성 치고 매우 젊어 보이는 예쁜 여성이었고, 내가 욕을 하면 화들짝 놀라고, 내가 내 이를 직접 손으로 흔드는 거에 기겁을 하던 어찌 보면 좀 순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 스스로도 자살 유가족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순간은 이제는 거의 글을 쓸 때뿐이다(조금은 거짓말). 너바나의 코베인은 위대한 예술가였고, 최진실은 시대를 풍미한 배우였고, 뭐 누군가는 그냥 일상의 행복을 나눴던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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