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버린 건 삶이 아니라

자살 유가족: 누군가는 떠났지만 여전히 삶을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

by 얼떨결정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Bertolt Brecht, "Ich, der Überlebende"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나와 연인관계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 옆에서 나를 보살펴주고자 했던 어른들은 나의 여림, 섬세함, 감성적임, 감정 기복, 무기력함 같은 것들을 힘겨워했다. 그리고 나와 연인관계에 있거나, 아주 가까운 친구거나, 인생의 조언을 해주던 어른들 몇몇은 나도 믿지 않은 나의 강함을 확신했다.



글을 쓴다고 알렸다. 2016년에 처음 글을 쓸 때 분명 누군가에게 브런치 링크를 건넸던 것 같은데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한 친구들은 내 브런치 링크도 모른다고 했다. 링크를 전달받은 누군가는 2016년의 옛날 글들은 읽기가 힘들다고 했다. 20살에 만나서 서로 일기의 어떤 부분을 보여주고 산다는 것의 허무함을 늘 이야기하던 친구는 "아주 열심히 정제해서 글을 눌러썼구만 아프지말어"하고 카톡을 했다.



자식이라는 삶의 이유


만약 운이 좋게도 평범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운전할 때와 거리를 걸을 때 차를 조심하고, 위험한 도시를 여행하지 않고, 급작스러운 재해가 닥칠 때 시민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적어도 전쟁 없는 사회에 산다면 '자연사'라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나이가 들어 노화로 죽는다면, 부모는 늘 자식보다 먼저 죽는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삶의 이유일 것이다. '내' 삶이 더 이상 온전히 자신의 삶이 아니게 되는 경험은 '자식'이 태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살 유가족은 저마다 다른 사정을 가지고 있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의 관계, 가족 내에서 떠난 사람이 하던 역할, 남은 가족과 주변의 지지, 전문적인 도움의 가능성, 사건 직후 경찰의 태도. 유가족의 경험은 쉽게 유형화되지 않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와 부모를 잃은 자식 중 누가 더 고통스러울까. 아마도 전자가 더 큰 슬픔의 주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슬픔의 방식이나 내용은 서로 비교하기 무색할 만큼 다른 것일 것 같다. 부모에게 자식은 또 다른 자기 자신이자, 자신이 창조한 것.


"네가 엄마 삶의 이유야."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삶의 이유일 것이다. '내' 삶이 더 이상 온전히 자신의 삶이 아니게 되는 경험은 '자식'이 태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삶의 이유가 급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태어나서 학교를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성인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사회에서 장려되는 표준적인 삶의 한 형태다. 한 인생의 결과물로서 자신이 낳은 존재가 잘 살아가는 것이 권장된다면, 그 존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충격은 어떤 걸까. 부모에게는 자식을 보호하고 길러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 그렇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 삶의 공허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마 그게 자살 유가족 수기에 그토록 많은 부모들이 아픔을 이야기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살 유가족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이야기를 다른 관계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야기하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가 떠나도 삶은 계속된다


놀랍도록 당연해서 새삼스럽다.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도 삶이 계속되는 것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르고 직장으로 다시 출근하는 것처럼, 친구가 사고를 당해서 젊은 나이에 죽어도 자신의 삶을 관둘 수 없는 것처럼, 자살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도 남은 삶은 계속된다. 돈을 벌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장을 본다.


엄마를 주검으로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날은 금요일이었다. 사회의 편견에 순응하는 가족들처럼 아주 조용하고 빠르게 장례절차가 끝났다. 아주 적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상주를 누가 했는지도 모르겠다. 발인이 토요일이었나 일요일이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다면 나는 일요일에 혼자서 엄마 옷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기억은 흐릿하다.


월요일에는 학교에 갔다. 곧 방학이었고, 1,2월의 겨울 방학 동안 나는 하루 종일 누워서 티브이를 봤다. 그리고 고등학교 배치고사를 치고, 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졸업식도 갔다. 엄마가 돌아가신 걸 알고 있는 엄마와 함께 학부모 모임을 하던 반 친구의 어머니가 꽃과 카드를 주면서 종종 연락하라고 하셨다. 한 번도 연락한 적은 없고, 그 애랑 친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빠나 친척 어른들이 이제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건가 하는 상상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말도, 자살로 돌아가셨다는 말도 2년 반 정도가 지난 뒤에 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때 그 친구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기간을 지나는 동안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이런 건가. 다들 그냥 별일 없이 사나. 울거나 뭐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거나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성인이 되어서 아빠의 보호 아래에서 벗어나면 정신병원에 가보아야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등학교 기간을 보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서 특별반처럼 따로 독서실을 배정받았는데,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 책상이 놓여있었다. 앞이 막힌 책상에 앉아 있으면 온갖 상상이 들었다. 전쟁이 나는 상상, 누군가 갑자기 죽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공부에 집중이 안되고 상상이 시작될 때면 나는 잠을 자는 것을 택했다. 반장인 것을 이용해서 감독한답시고 교탁에 가서 컴퓨터로 웹툰을 보기도 했다. 상상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말을 했어야 하는 걸까?


심리학을 전공했다. 정신과는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때 가면 된다고 한다. 학교 상담 센터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이 어려울 때 가면 된다나. 나는 누가 봐도 고등학교 생활을 잘했다. 학군 같은 건 없는 지방의 일반 인문계에서 소위 말하는 스카이를 노려볼 수 있는 다섯 손가락도 안 되는 학생이었고, 수능 최저등급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보기 드문 학생이었다.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그때 그 나이 애들이 다 하던 치마 줄이기, 화장 하기, 몰래 술 먹기, 연애하기 같은 걸 하면서 공부도 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부모가 자살했을 때, 그 사람이 버린 건 자신의 삶일까 남겨둔 자식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린 내 마음속에 엄마가 보호자의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를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 계속 머무르게 한 것은 조부모님이었지 부모님이 아니었다. 해체된 가족 구조에서 나이가 많은 자녀는 쉽게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 경제적인 가장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 그런 경우도 왕왕 있다.


중학교 시절에 내가 혼자라는 느낌을 아주 많이 받았었는데, 그건 사춘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내 반응이었다. 청소년기에 나를 사로잡은 생각은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행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어느 학원을 갈지 혹은 갈 수 있을지, 어떤 대학에 원서를 넣고 진학할지. 실제로 그 책임의 크기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가졌던 사춘기의 감성은 '나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그 결과도 내가 감당해야 한다'였다.


부모가 자살로 세상을 떠나면 자녀들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노력한 적도 없는데 특별히 그렇게 느낀 적이 없다. '삶의 이유가 있는데 왜 죽었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러나 그게 '나'를 이 세상에 버려두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더 이상 동반자살이라는 말을 언론에서 찾기 어렵게 되었다. 서구문화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 일본과 중국에서는 가끔 쓰이고, 한국에서는 자주 쓰였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말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가족 동반 자살로 표현되곤 했다. 자식은 부모와 독립된 개인이므로 나를 가진 적이 없으니 나를 버리지도 않았다는 식의 내 느낌이 그리 표준적인 반응에서 벗어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일에 표준적인 반응을 유형화한다는 것도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떠난 그 사람이 버린 게 남겨진 가족이나 자식이 아니라면, 뭘 버린 걸까. 자신의 삶인 걸까. 내가 받은 유서라고 볼만한 메모를 돌이켜보면 엄마가 버린 게 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보고 주인이 되는 삶을 살라고 했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쉬운 게 있다면, 부모와 자녀는 자녀가 나이가 들면서 화해할 시기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데, 나는 그 시기가 없을 것이다. 중학교 때 나는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 사람이 버린 건 자신의 삶의 다른 가능성들이었다. 엄마의 삶에 어떤 가능성들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있었으니, 아마 20살 때 엄마가 가졌던 가능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겠지. 이미 좁아졌고, '누군가의 엄마'로서 얻는 삶들이 대다수를 차지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삶의 주인 같이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딸로서만 엄마를 봤으니, 그녀가 놓친 다른 한 개인으로서의 삶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엄마로서 놓친 삶의 어떤 장면들은 목록이 길다.


딸이 매일 영어공부를 그렇게 하고도 외고 진학에 실패하고 우는 거 보기, 딸의 중학교 졸업식에서 웃으며 사진 찍기,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와서 입시 결과로 떵떵거리기, 딸이 처음으로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그냥 별생각 없이 공부를 하더니 대학 가서 만남 남자 친구랑 헤어졌을 때는 밥도 안 먹고 우는 걸 보기, 그러더니 매년 남자 친구를 바꾸고 그걸 꼬박꼬박 자신에게 소개하는 거 보고 어처구니없어하기, 딸이 페이스북 친구 맺어주나 했더니 인스타그램으로 SNS 옮기는 거 보기, 이혼한 지 오래됐으니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라고 독촉하는 편지를 딸로부터 받는 것, 장학금 받는 대학생인 딸 자랑하기, 성적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딸에게 대학 과목 하나 망친다고 세상 안 달라진다고 말해주기, 흥청망청 돈 쓰는 딸에게 잔소리했다가 자기가 아르바이트 한 돈이라고 대드는 거 보고 머리 아파하기, 아픈 곳 없는 딸을 대견히 여기는 것, 딸이 나오는 공연에 참석하기, 취업하라고 잔소리하기, 10년쯤 다닐 수 있는 대기업 취직하라고 했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딜 가든 10년쯤 일하는 곳은 없다고 짜증 내는 소리 듣기. 첫 월급 받았다고 용돈 보내주는 금액이 생각보다 커서 당황하기. 이제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감사하다고 고생 많으셨다고 이야기해주는 딸의 편지를 읽는 것.




Lukas Graham이라는 밴드의 "You're not there"이라는 노래가 있다. 부모와의 관계가 원수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부모를 잃은 자식이라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C-bSbXZBcU

https://www.youtube.com/watch?v=TPCHFxHJ2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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