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을 지나가는 방법

개인적인 기록 5

by 얼떨결정

1. 그냥 에세이

객관적인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자살에 관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담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기존의 문헌들을 정리하는 것, 둘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간편하게 전달하자는 것. 진로를 바꾸면서 첫 번째 이유는 의미가 없어졌고, 두 번째 이유는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해주지 않을까? 물론,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개인'에게 초점을 주로 두는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주로 설명되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연구자의 정체성을 포기하면 크게 아쉬울 것도 없다. 에세이처럼 쓰겠다는 선택에는 "개인적인 글과 객관적인 정보를 구분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다는 댓글도 지지가 되었다. 감사하다는 말 전해 드리고 싶다.

2. 왜 쓰냐면,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경험 수기는 많은데, 그 외에는 적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 가장 큰 결실로서 '자식'이 있다면, 자녀의 보호가 부모의 책임이라면 자식을 어떤 이유에서든 잃는 경험은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지만, 내 경험이 학술적인 연구나 전문가들의 말로는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은 가족들과 애도의 과정을 거치는 게 좋다는데, 남은 가족과 떠난 사람이 이혼한 지 10년 된 부부인 경우는 못 봐서. 남은 가족이 외동인 경우도 찾기 어려워서 쓰기로 했다.


3. 이해는 되는 이유.

어제 브런치를 찾아온 사람 수는 35명인데, 오늘 갑자기 180명이다. 연예인 자살이 보도되었고, 아마 브런치에서 자살 관련해서 태그로 읽힐 수 있는 글이 몇 개 안돼서 그런 것 같다. 인터넷의 거의 모든 공간에서 자살과 관련된 용어는 태그 금지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도 관련 용어 태그는 불가능하다. 2016년은 아니었어서 그때 글이 남아있다. 자살 예방 목적이어서 어쩔 수 없다. 근데 '자살 유가족'까지 태그가 불가능한 건 좀 그렇지 않나?



4. 결론: 그러니까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에세이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보는 것이 좋다.


1) 정확한 정보는 다른 곳에서, 도움은 전문적인 곳에서. 단, 전문적인 곳을 한 군데만 찾지는 마시고 아주 여러 곳을 탐색하듯이 맞는 상담가, 의사, 센터를 찾아야 한다. 모두에게 그럴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기를 신이 있는 셈 치고 기도드린다. 사실 상담이나, 정신과나 유가족 모임 등이 뭔가를 아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주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혼자가 아니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전문 상담가라면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면 그 말이 상처가 된다고 이야기해도 된다. 개인적으로 상담은 어떨 때는 아주 쓸모없다고 느꼈고, 어떨 때는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수면제를 추천받았는데, 나는 모아놓고 한꺼번에 먹어서 죽을까 봐 안 먹는다고 했다. 상담 선생님은 요즘 수면제는 모아서 먹어도 안 죽는다고 하셨다. 바빴고, 잠이 더 오면 할 일 하는 데에 방해될 것 같아서 안 먹었다. 몇 년 뒤에는 스스로 멜라토닌을 사 먹었다.


2) 죽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적으로는 '내일 죽자'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오늘 하루는 늘 오늘이어서 '내일'이 오늘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떠오르거나 방법, 장소 등이 떠오른다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게 좋은 것 같다(그렇다고 내가 구체적으로 죽을 방법이 생각이 난다고 해서 실제로 주변에 도움을 청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그냥 책상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자살예방센터 상담원이 연결이 안 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나도 그렇게 느꼈다). 용기가 난다면 주변인에게 말하고, 아주 가까운 사람(가족이나 친구)이 도움이 되는 말을 안 해주더라도 너무 많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대체로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언제 잃을 줄 모른다.


나와 서로서로는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내 친구들은 생명보험(?) 모임 같은 게 있는데, 아무도 자기가 가입자인 줄은 모르고, 그냥 내 마음속 리스트로 있다. 서로가 해당 모임 참여자인 줄은 모르는 점조직인데, 모임 목표는 별 거 없고, 우선 39세까지 사는 거다. 이유는 없고, 그냥 나랑 우울한 감정을 나눴던 친구들은 20살 때든 24살 때든 아무도 29살에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우선 39살이 되면 다시 생각하자고 했다. 막연히 그때 즈음이면 인생에 남긴 흔적이 많고, 소중한 관계가 있어서 사는 비용보다 죽는 비용이 좀 더 크다고 계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나는 습관처럼 그 말의 무게와는 무관하게 죽고 싶다는 말을 농담이든 진담이든 가벼운 분위기든 진지한 분위기든 아는 사람에게서 듣기만 하면 39살로 그걸 미루는 게 어떠냐고 말을 꺼낸 뒤에 뭔지는 모르겠는데 죽을 거면 말이나 해주고 죽으라고 죽기 전날에 밥이나 한 끼 먹자고 했다.


말할 엄두가 안 나면 그것도 그냥 다음에. 뭐든 억지로 하는 건 힘들다. 내가 했던 다른 방식은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사이에 하는 내 생각과 계획과 상상, 느끼는 감정을 모두 모르는 척하거나 믿지 않는 것이었다. 시계를 보고 해당 시간이면 그냥 '그렇구나, 지금 나는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구나. 지금은 이 시간이니 다른 시간에 다시 생각을 해보자. 우선 지금은 아니니까 무언가를 행동에 옮기지 말자'는 식이었다.


3) 유가족으로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건 이후에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가장 도움이 되었던 말은 미국의 자살 유가족 모임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댓글로 달아준 '이전의 정상 상태로 돌아갈 순 없다, 다만 이후의 삶이 비정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상'이라는 말이다.


4)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느낀 것은 매일 울거나, 죽고 싶다고 느끼거나, 상담을 받을 때가 아니라 멀쩡하게 일상을 너무 잘 유지하던 엄마를 잃은 직후 3-4년이었다. 누구든지 급작스럽게 사라진 존재에 대한 애도를 할 수 있도록 준비 시간, 그리고 애도의 시간이 있기를.


5. 나를 아는 사람들은 글을 보면 나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르는 척해줄 거라고 믿는다. 사실 아는 척해도 된다. 어차피 관계는 남남이다. 남을 사람 남고 나머지는 남. 혹시나 가족이라면 미워하는 마음보다 고마워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니 너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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