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자살로 잃은 지 10년이 지나고

개인적인 기록 3

by 얼떨결정

글을 쓴다는 것, 특히나 공개된 장소에 글을 쓴다는 것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일기와는 다른 속성인 글이면서도, 결국 나의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에 사생활이 내 감정 상태에 따라서 글에 드러난다. 좀 더 글을 고쳐서 발행하고자 하면, 글 자체를 발행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나는 대체로 수정 없이 글을 그냥 발행한다.


처음에 글을 쓸 때에는 조금 더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여유가 내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개인적인 글들과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글을 나눠서 쓰려고 생각을 했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10년이 지난 어떤 일이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올라 막상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굳이 검색창에 ‘자살 유가족’을 검색해서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오늘이 그런 날인 걸까? 아니면 자살에 관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살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는 사람들일까.


오늘도 결국엔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글을 쓰지 않는 사이에, 누군가는 엄마를 뿌린 곳에 같이 가줄 수 있다고 기일을 자신의 휴대폰 스케줄러에 적었다.


나는 기억조차 못하는 일이지만,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나와 함께 엄마를 뿌린 곳에 같이 간 적이 있다고 했다. 대학 입학 전, 수능 직후 고3 때라고 했는데,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혼자 간 적은 없는 것 같다. 가려다가 무서워져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무언가를 쓴 쪽지를 두 번 정도 바위틈 아래에 넣어두었던 것 같은데, 누구랑 같이 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와 그곳을 가는 건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분명, 설이나 추석에 갔었던 것 같은데.


내가 엄마의 뼛가루가 담긴 곳이 유골함이 아닌 검은 비닐봉지였다고 이야기하니, 친구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냐며 슬퍼했다. 나는 내가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정말 힘들 때에는 결국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는다는 상담 선생님의 지적을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은 분명 돈이 없었는데, 정말로 그 함을 살 수 없을 만큼 없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그 날은 엄마가 내게 주었던 반지를 잃어버렸다. 반지를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지만, 누군가가 찾으러 가자고 해주지는 않았다.


지금은 2019년이고, 내가 엄마를 잃은 것은 2008년이다.

2018년, 그러니까 작년 엄마의 기일에는 놀랍게도 누군가들의 연락이 왔다. 그 사이 누구도 그 날 연락이 없다가, 올해 내가 주변에 무슨 말을 많이 했었는지, 세 명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짧게 끝난 통화나 카카오톡 메시지였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그중 가족은 없었다. 꼬박 10년이 걸렸다. 그러니까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않는 기일을 보냈다.


2019년 초에는 운동을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하면서 조금 기운을 차리고,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지만 긍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한 변화는 생각보다 금방 무너져서 지금은 좋지 않다. 나쁘다기보다는 그냥 그저 그렇다.


안타까운 것은 2008년은 지금보다 더 도움의 손길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 해가 최진실이 죽은 해였고, 우리 엄마가 죽은 해였다. 그다음 해에는 대통령이었다. 지금은 중앙자살예방센터에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나와 있는데,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앙자살예방센터는 2011년에 생겼고, 2008년에 나는 어찌해야 할지 전혀 그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마포대교의 생명의 다리는 불이 켜지지 않는다. 지금 알려져 있는 자살 유가족을 위한 정보들을 다시 읽으면, 다시 한번 더 중학교 3학년의 내가 지금이 되기까지 그 과정을 어떻게 지나쳤는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자살 유가족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 죽음이 갑작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죽음에 대한 애도 과정이 다른 죽음과는 다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중요한 사람을 죽음으로 상실하는 것은 큰 고통을 남기고, 이를 치유하는 애도의 과정은 Elizabeth Kubler-Ross에 따르면 ‘부정-분노-타협(협상)-우울-수용’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참고로 이 단계를 순차적으로 혹은 하나씩 단계별로 겪는 건 아니라고 한다.


내 경험을 되돌이켜 보면, 나는 부정을 길게 3년 정도 겪었다. 이후 분노와 타협의 과정을 혼란스럽게 겪고 우울의 단계로 넘어갔다면 좋았겠지만, ‘분노-타협-우울’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무렵에 연인 관계에 엄마 혹은 아빠와의 관계를 투사했던 것 같다. 애정 관계에서의 어려움 속에서 나는 때때로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의 대상 혹은 그리움의 대상이 엄마인지, 혹은 그 당시 어린 나를 혼자 남겨둔 아빠에 대한 감정인지, 연애 상대방에 대한 감정인지를 구분하고 싶어 했다. 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고, 관계의 끊어짐은 상대방의 의도와 내 연애의 방식과는 무관하게, 갑작스러운 관계의 단절과 상실을 상기시켰다. 트라우마를 그냥 상처가 아니라 외상이라 따로 구분하는 이유는, 트라우마는 그 상처를 다시금 재경험하게 하는 것이고 따라서 아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반복해서 주기 때문이다(출처 찾으면 수정 예정). 힘들었지만, 연애 그 자체의 문제였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나는 내 가정사를 구구절절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그냥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했었고, 이는 정말 드문 케이스였다. 유가족 자조 모임에서 그런 방식은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고 했고, 나는 꽤 오랜 기간 그 모임을 나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았던 것 같다. 자살 유가족이 자살할 가능성은 3년 이내에 가장 높다고 하는 글을 어디서 읽었었다. 3년이 지나고 안도했던 나 자신이 기억난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살기가 귀찮았다. 내가 죽고 싶은 것은 이런 이야기들을 내가 이야기하고 싶어서 울면서 이야기했던 누군가들과 헤어졌을 때였다. 어렸고 미숙했고 대다수가 하는 실수를 나 역시 했던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지 못해 결핍된 것을 연인 관계에서 얻고 싶어 했다. 아마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무도 나의 엄마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제사는 당연히 없고, 기일을 보내는 내 기분을 묻는 질문도 작년 이전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기일이 언제인지 말할 때에는 굳이 그 날 그 사람에게 연락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그걸 굳이 기억하겠다고 묻는 마음이 고마웠던 것 같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다. 그냥 기일을 그냥 말해달라고 누군가가 물어준 것만으로도 그 시기의 비참함을 그냥 없는 셈 칠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 기일을 알고 있고 누구는 모르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정말 특정한 그 사람이 모른 척한다면 정말 내게 큰 상처가 될 것 같은 상대방에게는 기일을 말하지도,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말했었는데 까먹은 걸까, 모르겠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대부분의 순간에 용감하고, 솔직하고, 과감했지만 아주 결정적인 어떤 한 부분은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방어적으로 굴었던 것 같다. 부탁하지 않음으로써 거절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희망을 남겨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 날의 내 힘듦을 옆에서 그냥 견뎌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확률을 100프로 거절로 만들지 않았던 셈이다.



다른 자살 유가족들은 어떨까? 제사를 할까? 기일에 찾아갈까? 가족들끼리 떠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잘 모르겠다. 나는 왜 내게 묻지 않냐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타인이라면 타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무언가를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이라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상처가 될 것 같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괜찮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을 하기가 싫어서 묻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이미 10년 이상을 떨어져 산 이혼한 부부였고, 나는 외동이고, 엄마와 둘이 함께 살았고, 엄마는 친정과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니까 엄마가 돌아가실 때 한 지붕에 살았던 가족이라고는 정말 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떨 때는 사무치게 외롭고, 어떨 때는 10년이 되어 익숙하다. 작년에 온 각기 다른 세 사람으로부터의 연락은 신기하고 낯설었다.



애도의 과정을 함께 들어주고 알아주고, 또 울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술 서적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는 해보기에 늦었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떠나간 빈자리를 추억하고 기념할만한 공간이나 장소를 마련하거나, 간단한 의례를 행하는 것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남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원래 모든 장례식이 산 자를 위한 것이다.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그 일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부정하는 시기와 이를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시기가 달라서, 가족 간에도 그 시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각자의 애도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를 서로 들어주거나 바라봐 주는 것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비극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될 것 같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내년을 기약하거나 해야 하겠지만. 사람의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늘 주의하는 게 좋다.




지금은 두서없이 그냥 쓰고 그냥 발행을 누르지만, 조금 더 여유가 되고 내가 내면에 힘이 생긴다면 더 정리되고 정형화되어 정보 제공과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을 녹여내어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아예 분리하여 쓰게 될 수도 있고. 지금은 발행 취소를 누르지 않고 그냥 올리는 것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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