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죽지 않았다.
꽤 긴 시간 동안 일기를 쓰는 데에 집착했다. 일기를 쓰지 않은 지 3년 정도 되었다.
중학교 때였을까, 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할 때 즈음부터였는지 아니면 그림일기를 쓰던 초등학교 입학 전이였는지, 아니면 숙제로 일기를 검사받던 초등학교 때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 내 인생에 대한 방향에 대해 나 스스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강박적으로 기록했다. 대학 때는 자려고 누웠다가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일어나서 일기장을 펼쳤다.
어떨 때는 행복해했고, 어떨 때는 슬퍼했고, 가끔 죽고 싶어 하다가, 뭐 대체로 자책하고 반성하고 또다시 잘하기로 다짐하는 류의 글들의 반복이었다. 그걸 모아놓고 읽고 있으면 사람이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나라는 인간은 별로 변하지 않네, 이 생각을 또다시 했구나.' 늘 반복되는 의식의 패턴과 감상들이 이어졌다.
정말 힘이 들 때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모든 것이 정리된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적혀있었다. 2주가량 텅 빈 다이어리를 보면 마지막에 대충 쓴 메모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기억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이 뭐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유독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말은 자주 등장했다. 혹은 자주 등장했다고 기억한다. 모든 것에 대해서 방어적으로 굴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척 말하고,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아등바등하며 살았다. 정말 소중한 것들일수록 잃어버릴까 봐 아무것도 아닌 척했다.
누가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 네가 바라는 게 뭐야 그래서?' 하고 묻기도 했다.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명확하게 알고 사는 걸까? 그걸 의심하지는 않을까? 나는 늘 내가 정말 이걸 바라는 게 맞는지 의심했다. 그리고 늘 답을 찾지 못하고 이런 건 그냥 믿는 건가 보군 하고 믿지도 못한 채로 끝났다.
일기를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일기를 쓰지 않게 됐다. 그냥 하루하루 흘러가는 삶.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논문으로 쓸 건지, 혹은 왜 그 주제에 다가가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유학이니 졸업이니 하는 목표가 없으니 다잡아야 할 마음도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까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생각하는 시간도 줄었다. 왜냐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 지장이 없고, 특별히 의미를 부여해도 살아가는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과 살아있는지 주고받는 연락을 했다. 몇 년 전에 우리는 서로가 정말로 죽어버릴까 봐 진심으로 걱정하던 기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은 하지도 않고, 그런 연락도 하지 않는다. 살아 있겠거니 하며 오히려 코로나19나, 폭우로 인한 피해 같은 걸 염려해준다. 이상하다. 결코 아무도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장담하듯이 더 이상 서로의 안부를 살아있냐로 묻지 않고, 잘 지내냐로 묻게 되었다.
중학생 때였나, 누가 죽고 싶다고 인터넷에 올린 글에 구구절절 메시지를 길게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답이 왔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살아 있을까? 그것도 모른다.
마음 한편에는 늘 내가 언젠가 엄마랑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혹은 내게 내 주변에 또 그런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걸 극복하려는 특별한 노력 같은 건 하지 않았는데,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엄마가 죽은 걸 되돌릴 수 없고, 엄마가 스스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걸 되돌릴 수 없고, 내가 그 사실을 안다는 걸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이런 생각을 하거나 이런 기분을 가끔 종종 느끼게 된 것도 되돌릴 수 없다고 여겼다.
솔직히 말하면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일이 없었기를 바라지, 내가 거기서 벗어나길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 일 자체가 없었길 바라지, 그 일이 발생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내가 극복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사는 것은 애썼지만, 무기력한 기분이나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나 누가 봐도 후유증 같은 그 무언가 들을 떨쳐내려고 애쓰진 않았다. 누군가는 그래도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고, 뭐 도와주려고 하고 여러 가지 좋은 말들을 해주었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와닿지 않았다. 우습게도 나는 여전히 극복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그 일이 없었길 바란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해야 하는 하루하루 일을 열심히 하는 데에 집중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쉽게 죽고 싶어 하는데 정말로 죽는 경우는 생각만큼 많지 않구나. 그냥 내가 운이 좀 없었군.
나와 내 친구들은 '사는 게 의미 없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라고 했지만 내일의 일정을 체크하고, 알람을 맞추고, 밥을 챙겨 먹고, 운동을 다녔고, 취미생활을 찾아 나섰다. 가깝든 가깝지 않든 나와 죽고 싶다는 식의 대화를 한 사람들은 많았던 것 같은데, 최소한 아직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다들 적당히 살았다.
상태가 안 좋아지면 알아서 상담을 받으러 가고, 정신과를 가고, 약을 먹고, 하다 못해 앱으로 하는 비대면 상담 같은 거라도 받거나, 사주팔자라도 보러 갔다. 아무도 갑자기 방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가 된다거나, 회사를 무단결근한다거나, 매일매일 술을 먹으면서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 그니까 다들 경미한 수준의 우울을 앓았지만 극단적으로 굴지 않았고 인생에서 마땅히 삶이 요구하는 의무들을 해나가며 살았고, 죽지 않았다.
글을 자주 쓸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엄마 이야기도 자주 하지 않았다. 내게 마치 그런 일이 없어진 것처럼 그냥저냥 흘러갔다. 그 사이 친구들과 하던 생존신고는 그냥 평범한 안부인사가 되어있었다.
2016년에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다시 글을 쓰기까지 3년 정도 공백이 있었다. 띄엄띄엄 가끔 쓰다가 1년 정도 쓰지 않았다. 브런치 알림으로 오래전 남겨진 댓글을 보다가 생존신고를 해야 하는 곳이 바뀌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뎌지는지,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지에 대한 질문들. 무뎌지고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모른다. 누군가는 그렇고, 누군가는 아니겠지만 대체로 무뎌지길 바란다. 기분이 안 좋을 때 하는 루틴 같은 거나 만들면서. 별 거 없고 그냥 누워서 유튜브나 보기, 배달 음식 시켜먹기, 담배피기 뭐 이런 거 하면 된다. 생산적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기 파괴적이지도 않은 무언가 이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그냥 계속 잠자기 이런 거.
의미는 여전히 없다. 예전에는 있었던가? 예전에도 없었을 거다. 대체로 의미는 없고, 있기를 바라면 만들고 믿으면 그만이다. 의미는 부여되는 거지 원래 있는 게 아니라서... 나를 웃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소중한 거구나 하고 그냥 느끼고 소중하게 대하면 되는 거였다.
가끔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대체로 아주 먼 옛날 일이고, 그런 일도 있었지 싶다로 끝난다. 언젠가 나도 엄마랑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나 두려움은 느끼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지낸다. 가끔 생각나면 울고 생각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의미를 특별히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고, 사소한 것에 울고 사소한 것에 행복해하면서 아등바등한다. 의미는 없지만 회사에서 잘하려고 애쓴다.
의미가 없다는 걸로는 죽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방식으로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 같은데, 그걸 관두고 3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아 TV 프로그램 같은 데에서 유사한 사연을 가진 내용이 나오면 밤새서 보고 울었다. 그리고 그 주 내내 기분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웃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그냥 어제처럼 하던 대로 살았다. 슬플 때는 울고 기쁠 때는 웃고, 엄마 생각이 날 때는 울고, 생각나지 않을 때는 마치 나한테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살았다. 누가 힘들어하면 그냥 대충 살아하고 답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고 너무 고민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대충 살라고, 어차피 어떻게든 된다고 답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았다.
친구가 '삶이란 뭘까'하고 가끔 물었고, 나는 '그런 생각 안 하는 게 삶이지'하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