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1이 되고 싶어요.
초등학교 시절 매년 같은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었다. "내년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게 해 주세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어릴 때는 고난과 역경이 있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동화를 읽고 자랐다. 착하고 용감한 주인공이 악역의 등장에도, 재난의 발생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어린 나를 길러냈다. IMF 직후, 엄마가 집을 나갔던 것 같다. 나는 다섯살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억은 몇몇 장면만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 내 뇌 어딘가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빠는 엄마와 일 때문에 따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했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진실은 엄마 입에서 나온다. IMF 때 아빠가 보증을 잘못 섰다고 했다. 나는 보증이 뭔지 잘 몰랐지만 보증은 절대로 서는 게 아니란 말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 철칙이 되었다. 흔한 철칙이었다.
중학생이 되자 친했던 친구들 중 몇몇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다른 학교에 입학한 친구가 다니지도 않는 내 중학교 앞에서 서있었다. 덩치가 큰 아이들과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였다. 꽤 잘생긴 남자아이였는데, 술래잡기를 하고, 말뚝박기도 같이 했다. 여름엔 문방구에서 함께 300원짜리 종이컵 슬러쉬를 샀다. 환타로 만든 슬러쉬를 먹던 기억들은 오렌지색으로 달달했다. 중학교 정문 내리막 길에서 오토바이 옆에 서있는 그 애를 보면서 나는 내 인생의 두 가지 갈림길을 봤다. 어른들이 말하는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나와,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지는 않은 나.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에 대한 동경이 없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내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친구들과 놀지 선택하는 나. 아빠와 엄마의 말 중 어느 것을 진실로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나. 엄마의 애인을 아빠라 부를지 아저씨라 부를지 결정하는 나. 어느 날 엄마가 피자헛에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본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슬퍼 보였지만 나는 왜 슬픈지 묻지 않기를 택했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연초부터 경제가 어렵다는 뉴스와 IMF와 비교하는 뉴스가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리먼 브라더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뉴스는 매일 시끄러웠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엄마 애인, 내가 아저씨라 부르던 사람의 소식이 들렸다. 7월에 이미 죽었다고 했다. 여름의 부고 소식은 가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엄마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게 간장 떡볶이를 만들어주고 청소기를 돌리고 교복을 다려줬다. 술을 먹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나도 엄마에게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국내 연예 뉴스도 시끄러웠다. 9월에 누군가 죽었고 10월이 되자 전국적으로 사랑받던 배우의 비극적인 죽음이 뉴스를 도배했다. 지금과 달리 기사는 날 것 그 자체였다. 베르테르효과를 경고하는 기사도 있었다. 그해 겨울 중학교 3학년, 현관문을 열었는데 열리지 않았다. 안전고리가 안쪽에서 걸려있었다. 나는 생선가시를 아주 잘 발라내는 젓가락질을 잘하는 아이였는데 느닷없이 목에 가시가 걸린 느낌이었다.
열쇠장수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 내 눈을 반짝이게 했던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이 내게 닥쳐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부모님의 이혼과는 달랐다. 그건 그냥 사건이었고, 이건 전환이었다.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는 예감. 주인공이 겪는 고난과 역경은 극복해 내라고 주어지는 것이다. 주인공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배치하는 것이다. 열쇠장수 아저씨는 혼자 기다리며 문을 따달라고 하는 교복을 입은 여중생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제발 내가 주인공이 아니기를 빌고 있었다.
한 번도 상상한 적 없지만 이런 일이 생길 줄 나는 원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읽은 이야기 책의 정해진 스토리인 양 익숙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 이미 가버린 엄마를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욕실로 먼저 뛰어갔다. 엄마는 거기 없었다. 엄마 방으로 갔다. 거기도 엄마는 없었다. 부엌에서 엄마를 발견하고 나는 다가가지도, 울지도, 소리 지르지도 않았다. 부엌 베란다로 들어오는 빛은 역광이었고, 다행히 나는 그림자만으로도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그냥 잠깐 토끼뜀 자세로 앉았다가 아빠와 작은 아빠, 119에 차례대로 전화했다. 아빠는 받지 않았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내게 일어났다.
mp3로 랩을 들으며 누군가가 오길 기다렸다. 이제 내 인생이 전과는 다른 색상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던 엄마는 이제 없구나.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구나. 아빠는 내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내가 처음 겪는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나는 경찰과 119 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울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엄마가 친한 친구에게 빌렸다고 돌려주라고 남긴 쪽지와 돈뭉치를 봤다. 한 이백만 원 정도 돼 보였다. 아빠가 돈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엄마가 남긴 쪽지를 구겨서 주머니에 넣고 돈만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학교 학부모회 총무일도 엄마가 했던 것 같다. 어떤 학부모님께 드리면 된다고 적힌 쪽지는 버리지 않고 그대로 돈과 함께 남겨두었다. 주인공이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정신을 붙들고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했다.
이후 긴 시간이 흘렀고 나는 꽤 잘 자랐다. 인간관계도 좋았다. 아빠와도 잘 지냈다. 성취도 남부럽지 않았다. 삶은 한동안 무미건조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자주 웃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점점 더 선명해지기만 한 생각이 있었다. 이 사고로 내가 어떤 잘난 종류의 인간이 되었든, 강해졌든, 깊어졌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일은 그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일 같다. 나는 그냥 내가 지나가는 평범한 엑스트라 1이길 바랐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1부 「처음 겪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목격자로서의 트라우마와 사고 직후의 조사와 처리 과정에 대한 기억을 전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