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당신은 왜 나를 괴롭히는가 - 에린 K. 레너드

by 보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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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적 동일시에 내사가 포함될 경우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변한다. 수용자에게 무의식중에 투사되는 요인은 매우 해롭다. 투사자는 스스로 수치스럽게 느끼는 무가치한 감정을 투사하고 수용자는 이 감정이 원래 자기 감정인 것처럼 경험한다. 따라서 투사자와 함께 있을 때 수용자는 약점 많고 불안한 기분을 느낀다. 이에 공격적인 투사자는 더욱 자극을 받아 앞서 설명한 방식을 동원해 수용자의 정서를 지배하려 든다.


자신을 투사자에게 묶어두는 부정적인 요인을 내사하는 성향은 어떻게 발전됐을까? 수용자에게 성격장애가 있어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고 사실 책임을 과하게 지는 일이 많다. 수용자는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우선하므로 남들에게 '기분을 잘 맞춰준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들에게는 통찰하고 자기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많은 수용자들이 고통스러운 관계 속에서 왜 관계가 잘못되었는지 추론하려고 자기 행동을 끊임없이 분석하며 괴로워한다.

이들에게는 자아성찰 능력이 있기 때문에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비난을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도 강하기 때문에 무시당한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쉽게 이해한다. 안타깝게도 이는 투사적 동일시 역학에서 수용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투사자가 수용자의 인정을 이용해 피해자 행세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직관력을 타고난 수용자는 다른 사람, 특히 투사자의 기분과 정서에 매우 민감하다. 관계에서 불안해하고 쉽게 상처받는 수용자는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미세하게 알아차려 그 책임을 즉각 자신에게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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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기능이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관계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용자의 통찰력과 자아 성찰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대부분의 투사자에게는 성격장애가 있기 때문에 자기 행동 패턴을 통찰하지 못한다. 투사자는 정서적으로 결박되어 있기 때문에 성숙해지거나 발전할 희망이 거의 없다. 반면 수용자에게는 통찰력, 공감 능력, 자기인식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계속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있다.

관계 당사자 중 한 쪽은 정서적으로 계속 발전하고 다른 한쪽은 정체되면 교착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수용자는 투사적 동일시에 기꺼이 참여하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수용자는 다른 사람이 무의식 중에 전달하는 요인을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공감 능력이 크다.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감지하는 직관력이 있고 그에 과도하게 연민 어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 공감 능력 때문에 해롭고 병적인 투사적 동일시에 취약하다. 많은 수용자들이 인도주의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그들의 공감 능력을 악용하는 투사자를 만났을 때 쉽게 무너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사악한 마법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수용자는 자신을 비난하고 수치심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투사가 정말 파괴적인 이유는 이런 감정이 외부, 즉 다른 사람에게서 왔다는 것을 수용자가 모른다는 데에 있다. 이들은 무의식중에 그런 감정을 넘겨받아서 자기 내면에서 정신적인 전쟁을 벌인다.

투사자가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수용자는 관계에서 나쁜 쪽은 자기라고, 투사자는 좋은 사람이라고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으로 생각한다. 투사에서 벗어난 뒤에야 투사자가 본질적으로 병들어 있더는 것을 속속들이 인식한다. --- 이들은 모든 것을 빼앗긴 느낌이 들어서 투사자를 강한 쪽으로 인식하고 자신은 쉽게 항복을 선언하는 쪽으로 여긴다. 투사자에게 굴복하고 파괴적은 역학으로 돌아옴으로써 수용자는 이러한 ....


가해자는 심한 불안을 오만과 자기애로 메꾼다. 따라서 이들은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아 부분적으로 눈이 먼 상태다. 이 때문에 가해자는 쉽게 상처받는다. 피해자가 기지를 발휘하여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차분하게 방어할 방법을 찾기만 하면 기회가 온 셈이다. 가해자가 굴욕을 주려는 의도를 미루고 오히려 감정을 드러낸다면 피해자는 성공적으로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가 다시는 피해자를 차분하고 자신감 있게, 단호하고 품위있게 이를 해낸다면 괴롭힘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할 것이다.


바로 투사적 동일시 때문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결혼, 생활, 교실, 사교 모임, 직장 등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존재할 때에만 일어난다. 또한 투사자가 있어야만 일어난다. 투사자는 투사자를 낳으므로 이 반복 순환하는 역학을 중단하려면 투사자를 막는 수밖에 없다.


투사자가 남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할 수도 있지만, 투사자가 아닌 세상 사람들이 그 행위에 동참하지 않을 수는 있다. 투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투사자에게 맞선다면 이 역학을 끝낼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방법도 통하지 않으면, 투사자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의 내면은 타인이 우리에게 투사하는 증오보다 더 강하다. 따라서 자신의 장점, 자질, 재능이 허락하는 모든 방식으로 앞서나가는 인생을 삶으로써 투사자를 이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믿으며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폭력을 낳는 병적인 위치에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괴롭히고 따돌릴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돈이 얼마나 많든, 학위가 몇 개나 있든 , 어떤 사교 모임에 속해 있든, 어떤 교회에 나가든, 결혼한지 몇 년이 되었든, 이런 것들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중요해지지는 않는다.


생명체로서 인간이 지니는 가치는 보편적이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각자 지닌 서로 다른 능력과 재능으로 사회에 기여한다. 우리 사회는 벌어들이는 돈, 점수, 등수,학위의 갯수, 소유한 차의 대수처럼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숫자로 가득한다.

이 숫자가 상징하고 대변하는 가치에 그 사람의 성품은 포함되지 않는다. 동료 인간에게 인정을 베푸는 능력,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마음, 짓밟히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는 능력,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이타적으로 사랑하는 성향 같은 것들은 설명하지 못한다. 친절, 인내, 공감, 세상을 평화롭게 유지하려는 노력 같은 것을 숫자로 표현하거나 등수를 매길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발전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학교 총기 난사 건수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친구에게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정서적으로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수는 천문학적이다. 정서적 폭력을 겪고 나서 자살하거나 자해하는 젊은이들의 비율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면 계급이 아니라 성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폭력을 끝내기 위해 투사자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옳은 일을 위해 일어설 힘과 능력을 기르려면 우리 모두 내면을 살펴야 한다. 여럿이 모이면 힘이 된다는 것을 투사자와 괴롭히는 사람들이 입증했듯이, 선량한 사람들도 연대하고 친절과 사랑을 베푼다면 이를 증명할 수 있다.




생각이 많은 당신이 읽어보면 좋겠다.

누가 나를 미워할 때 내가 무얼 잘못 했을까라는 생각이 잠 못들고, 바닥까지 내려가 많은 일들을 훑고 검열하고 괴로워한다면 읽어보면 좋겠다.

관계가 주는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커서 관계를 피하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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