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을 읽고
p164
* 우두스 문두스
라틴어로 '통일 세계'나 '하나 된 세계'라는 의미이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자신이 제창한 '초월적인 상위 구조체'를 이렇게 명명했다. 그는 우누스 문두스를 정신과 물질이 융합된 궁극적인 세계로, 이 세계로 보고, 이 세계는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내게는 시인 친구가 하나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시를 써서 생계를 유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시로 먹고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p200
신체의 모든 부위는 기억할 가치가 있다. 모든 인간의 몸은 보존해야 마땅하다. 이토록 여리고 연약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인간의 몸을 땅속에서 썩게 하고 화염 속에 던져 쓰레기처럼 태워 버린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만약 블라우 박사에게 세상을 창조하도록 했다면 우리에게 별 필요도 없는 영혼은 필멸로 만들고, 아마도 육체에 불멸을 허용했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를 함부로 손상되게 내버려 둔다면 인간 종이 얼마나 다양하지, 또 개별적인 인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결코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과거에 그렇게 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에는 도구도 부족했고 보존 기술도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극소수의 부유층만이 자신의 방부 처리를 허용한 시기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플라스티네이션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며 방법이나 이론 또한 계속해서 보완되는 중이다. 원한다면 누구든지 자기 몸이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인체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 "여기 내 놀라운 근육들이 있어요." 단거리 주자, 세계 100미터 경주 챔피언이 말할 것이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좀 보라고요. 여기 내 뇌가 있어요. 아, 여기 고랑 두 개가 깊게 파여 있네요. 이것을 '비숍의 트위스트'라고 부릅시다.
p 251
순례자의 성향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내게 말하길 그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 새롭고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봤을 때 다른 누군가와 감상을 나누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곁에 없으면 불행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과연 진정한 순례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p254
이제 저는 폐하께 요청하기보다는 애원하고자 합니다. 모든 명예와 품위를 송두리째 빼앗긴 채 마치 죽은 야생동물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화학약품으로 방부 처리되고 박제가 되어 버린 제 아버지의 시신을 부디 돌려주십시오. 또한 박제된 상태로 '황실의 호기심의 방'에 놓인 다른 시신들에 대해서도 선처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 시신들의 경우에는 거두어 줄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p296
케이크링크는 네덜란드에서,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해부학자인 프레데릭 라위스의 제자였다. 그리하여 다리 절단 수술은 모범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전체에서 부분이 정확하게 분리되었고, 뼈는 톱으로 고르게 절단되었으며, 혈관은 불에 달군 꼬챙이로 완벽하게 지져서 봉인되었다. 그런데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 환자가 훗날 친구가 된 그의 소매를 붙잡고는 잘라낸 다리를 잘 보관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p316
[절단된 다리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 필립은 감정을 배제한 채,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들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육체와 영혼은 본질적으로 하나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의 무한 한 두 가지 속성이기에, 그 두 속성 사이에는 창조주가 설계한 적절한 비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자연,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었다. 육체와 영혼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요소가 과연 인간의 몸에서 어떻게 온전히 결합될 수 있었으며, 서로 떤 작용을 했는가, 통증은 어떻게 발생했고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예를 들어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 한쪽 다리가 내게서 분리되어 알코올 속을 헤엄치고 있는데도 나는 그 떨어져 나간 부위에서 극심한 통증과 고통을 느낀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고통을 일깨우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통증을 자극할 요인은 아무것도 없고 아픔을 느낄 이유도 전혀 없다. 그 어떤 통증도노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에도, 분명 아픔이 존재한다. 지금 이렇게 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짐을 느낀다. --- 하지만 거기에는 자극을 일으킬 요소가 전혀 없다.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나를 아프게 한다. 유령이다. 유령 같은 통증이다.
p 347
남편은 넉 달 전, 2년 만에 돌아왔다. 집을 떠나올 때 입었던 것과 똑같은, 다소 유행이 지난 평상복 차림이었다. ---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그것을 즉시 감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는 다른 사람이다. 남편이 돌아온 첫날밤, 그녀는 그의 몸을 살펴보았다. 역시 달랐다.
p359
그녀의 눈에 팔의 취약성과 눈꺼풀의 연역함, 그리고 찡그리면 쉽게 뒤틀리는 불안정한 입술선이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팔다리가 얼마나 나약한지도 보인다. 저 연약한 다리들은 절대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심장이 얼마나 규칙적으로 뛰는지도 보인다. 어떤 이의 심장은 조금 빨리, 다른 이의 경우에는 조금 느리게 뛴다. 일반적이고 기계적인 박동, 폐주머니는 마치 더러운 비닐봉지 같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옷이 투명해졌고, 그래서 그녀는 그들의 육체가 엔트로피와 결합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우리의 몸뚱이는 가엾고 추하다. 예외 없이 전부 가루로 으깨어질 운명을 타고났다.
p471
의사는 쇼팽의 심장을 대야에 넣고 물로 헹구었다. 루드비카는 인간의 심장이 얼마나 큰지, 또한 모양도 색깔도 얼마나 볼품없는지를 확인하고 적잖이 놀랐다. 그러고는 에틸알코올이 가득 담긴 단지에 그것을 간신히 쑤셔 넣었다. 의사는 좀 더 큰 단지로 바꾸라고 충고했다. 근조직이 단지에 닿거나 눌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p494
어쨌든 호텔 안내인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그는 9호실 열쇠를 또다시 주문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할 열쇠 제작자에게.
p590
이러한 각성은 여행을 계속해도 좋다는 승인 도장을 받는 것과 같았다.
다음은 세 번째 단계다. 여행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최상의 단계다. 목적지가 어디건 간에, 우리는 항상 이런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중요치 않다." 어디에 있는지 상관없다. 여기 내가 있으므로.
p539
9시쯤 그가 진하게 커피를 탄다. 그러고 나서 욕실에 있던 면도용품 일부와 옷장 안에 있던 셔츠 몇 벌, 그리고 바지를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집을 나서기 전, 현관문 앞에 서서 그는 지갑을 확인했다. 신분증과 타드, 그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자동차에 올랐다. 밤사이 눈이 내렸다. 그래서 차창에 쌓인 눈을 치워야 했다. 한쪽 팔로 대충 털어 냈다. 저녁때쯤이면 자그레브에 다다를 것이고, 다음 날에는 스플리트에 도착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내일이면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체코와의 국경을 향해 화살처럼 똑바로, 꼿꼿하게 남쪽으로 향했다.
작가 올가 토르크추크는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프로이트와 융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기존 학문에서는 심리학을 200년도 안 된 신생아 취급을 하는 이도 있지만 보통 사람인 나에게는 자신을 가장 많이 알게 해 준 분야가 심리학이고 삶의 짐을 덜어준 고마운 영역이다. 작가는 여행심리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소설은 짧은 글이 여러 편 실려 있는데 전개가 연속적이지 않아서 에세이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우리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걸까... 생각해 본다.
그녀는 계속 집을 나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유는 모른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그러니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도 않은 이유로 사람들은 집을 떠난다. 그 집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잊었는가? 얼마나 애쓴 끝에 가진 집인가..
하지만 서설에서 집은 완성되는 순간 그것의 의미를 상실한다. 집을 가지면 이 모든 괴로움, 허망함, 무가치함, 부저질 것 같은 미약함에서 빠져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게 된다. 갖게 되는 순간 그 뜨거운 열망이 집으로 나타나는 순간 그것은 본래 이루어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조용히 울부짖는다.
이게 다야? 이게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