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유전체의 비밀을 풀어드립니다

유안 A. 애슐리의 <<게놈 오디세이>> / 2022.2.22

by 보리별


씽큐온 10기, 11기 참가하고 이제 12기 마지막 책이네요. 지금은 스터디언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작년 7월 23일에 첫 번째 서평을 올리면서 시작한 일이 벌써 8개월째입니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함께 한 많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내가 한다'는 맞지 않는 표현 같습니다. 그 물결 안에 발을 담그면 저절로 스르륵 되는 일 같습니다.


게놈 오디세이도 읽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면 손해 나는 책입니다. 지난번에 읽은 [에이지리스]처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과학 책을 읽은 느낌은 이렇습니다. '곧 200살이라도 살 것 같은데... 삶과 죽음을 선택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생뚱맞으신가요? 상상은 원래 엉뚱해야 제맛입니다.


자... 상상해 볼까요?


"00님. 이번 생의 지금 몸은 이제 수명이 다해갑니다. 그렇지만 유전자 00번을 살짝 조절하면 다시 30년 가능하십니다. 어떤 선택하시겠습까?"


생의 존엄이랄까 삶의 격이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게놈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주는 수많은 혜택들, 불치병의 치료, 불확실한 고통의 감소, 미래에 대한 예측들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원인 없는 통증을 겪어서 그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병명을 아는 환자들의 고통도 힘이 들지만 이름도 모르는 병과 싸우는 과정은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무력감, 막막함, 존재가 멸절될 것 같은 공포, 두려움,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릴 강도의 통증은 우주를 떠도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유안 A. 애슐리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학 및 유전학 교수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책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유전체 genome를 이토록 짝사랑하게 됐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지금껏 유전체를 놓지 못하는 이유만큼은 확실히 안다. 생명의 암호를 푸는 것. 이보다 나를 흥분시키는 일은 세상에 없다. 유전체는 단번에 인류의 정수로 등극했고 고약한 유전질환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이를 구할 열쇠로 촉망받고 있다. 그런 유전체를 해석하는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다. 더없이 보람찬 생활이다.


아버지의 왕진가방은 내게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검은색 왕진가방을 열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니어처 병원이 따로 없었다. 자그마한 서랍을 하나씩 열어 주삿바늘, 봉합사, 쓰임새가 알쏭달쏭 한 각종 금속 도구 등을 발견하는 기쁨은 보물찾기 못지않았다. 언젠가는 우리 집 부엌에서 아버지가 내 친구의 이마를 꿰매 준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멋지던지. 가끔 나는 왕진에도 따라다녔다. --- 당시 조산사로 일하셨던 어머니 역시 가끔씩 현장에 날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나는 부모님을 보고 자연스럽게 헌신과 온정을 배웠다.


의료인은 평범한 직업이 아니었고 의술은 단순히 밥벌이로 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인생을 통째로 거는 일었었고 인간이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뼛속부터 감이 왔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게 내 천명일 거라고.


유전체에는 키, 몸무게, 머리카락 색깔, 눈동자 색부터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까지 한 사람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살지, 언제쯤 죽을지 유전체로 앞날을 대강 점칠 수 있다는 소리다.


이 모든 정보는 데옥시리보핵산 즉 DNA에 의해 새겨진다.


DNA는 두 가닥이 한 쌍을 이뤄 우회전으로 감기는 이중 나사의 분자 구조를 갖는다. 그런데 이 분자를 구성하는 기본 재료는 딱 네 가지뿐이다. 이 네 가지 뉴클레오티드는 보통 간편하게 A, T, G, C라 칭하기에 생명의 알파벳이라고도 한다. 체내 거의 모든 세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안전하게 잠자고 있는 DNA는 모두 이 네 가지 알파벳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유전체에는 뉴클레오티드 알파벳 60억 개, 그러니까 30억 개의 문자쌍이 존재한다. 직선 길이 총 2미터의 유전체 분자는 23쌍의 염색체에 알차게 압축되어 들어가 있다. 만약 사람 몸에 존재하는 세포 30조 개의 DNA를 모두 꺼내 쭉 이어 붙인다면 지구와 달을 수 천 번 왕복하고도 남는 길이가 된다. 굳이 실감 나게 묘사하자면 그렇다는 소리다.


때가 2009년 초였고 당시 유전체 분석이 완료된 인물은 전 세계를 통틀어 다섯 명이 될까 말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일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 미국 에너지부와 국립보건원은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 3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초창기 가격대는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비용은 빠른 속도로 줄었다. --- 당시 한 사람의 유전체를 해석하는 작업은 수백 명의 과학자가 수 천 시간을 매달려야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얼마나 많은 피땀과 눈물을 흘렸을지는 말할 것도 없다.


저기 보이는 35만 달러짜리 페라리 값이 떨어진다면 8년 뒤 40센트도 안 하겠다는 걸. 40센트짜리 페라리라니! 무려 100만 분의 1 가격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도 유전체의 무려 10%가 먼 옛날 사람 몸에 침투해 완벽하게 정착한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라는 점이다. 갑자기 가벼운 감기조차 예삿일이 아니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으며 언제부터 지구에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박테리아보다 100배는 작은 주제에 DNA나 RNA를 갖고 있는 이 조그만 단백질 덩어리들은 1800년대 후반부터 주목받았다. 원시적 형태 때문에 남의 세포 안에서만 복제와 번식이 가능한 바이러스는 평생 숙주세포에 의탁해 살아간다. 사람 유전체도 8%는 남겨진 바이러스 DNA라고 하니, 인류는 오래전부터 바이러스와 함께 진화해 온 셈이다.



똑같은 유전병을 앓은 스테판 베츠는 ---" 세상 사람들이 통증을 못 느끼는 걸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제가 무슨 초능력자 같은 게 되어 버렸죠--- 오히려 우리는 아프다는 게 뭔지 너무나 알고 싶어요. 통증이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요. 아픈 걸 모르면 사는 데 지장이 많거든요."


파키스탄의 소년 역시 그랬다. 소년은 열네 살 생일을 앞두고 맨몸으로 지붕에서 뛰어내렸다가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파키스탄 소년의 집안도 그중 하나였다. 이 변이 유전자를 보유한 식구들은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누르는 세기와 자세는 모두 정상적으로 감지했지만 오직 통증만 감지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원인 유전자를 찾기 위해 유전자 연관 지도 매핑을 통해 일차로 수색 범위를 걸렀다. 그 결과, 전체 유전체에서 우전자 50개가 들어 있는 한 구역으로 좁혀졌다. -- 가장 유력한 것은 SCN9A라는 나트륨 채널 유전자였다. --- 파키스탄 가족 중 염색체 두 카피 모두에 이 유전자 변이를 가진 가족들은 나트륨 채널의 활동이 억눌려 있었다.


하지만 가장 쟁점이 된 문제는 사람 배아를 조작한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달라진 특질이 후손에게 거듭 대물림될 수 있음에도 인간 중의 유전자를 영구적으로 변화시키는 게 윤리적으로 옳은가를 두고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성인 환자의 특정 체조직이나 한 신체 장기에만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사람 배아를 손보는 것은 훗날 이 개체가 생산할 모든 정자 혹은 난자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들이 원인 모를 희귀병에 힘겨워하는 사례들, 심장병으로 죽음의 공포에 노출되는 사람들 이야기는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감동스럽고요.


스티븐 퀘이크 팀이 유전자 돌연변이 목록을 넘겨주면, 내가 이끄는 팀은 희귀한 돌연변이와 희귀 질환이 있는지 살피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아툴뷰트 팀은 빈도가 높은 질병들에서 흔히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조사하고 러스 올트먼 팀은 약물 반응에 중요한 유전자만 집중 공략한다. 마지막으로 헨리 그릴리 팀이 할 일은 지금까지 우리가 윤리적으로 선을 넘은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도 신기하기만 하다. 논쟁 좋아하고 자기주장 뚜렷한 천재들이 어떻게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이런 미친 짓에 주저 없이 동조할 수 있었을까? 인간 유전체를 풀어내자고? 유전자에 숨겨진 인간 생로병사의 비밀을 개개인 수준에서 밝히고 해석해 보자고? 이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그들 모두 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었다. "몇 명 데리고 어디로 가면 되는지만 알려 줘." 우리는 동지를 넘어 진짜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현재 유전체 검사는 한 번 하는 데에 800달러가 들지만 미진단 희귀병 환자가 수시로 들락거리는 중환자실의 입원비는 하루에만 1만 달러에 달한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우리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구성원은 다양하지만 모두 유전병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부모들은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는 자식들을 돌보려고 매일 없던 힘도 짜내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은 내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이유다. 그들은 자신을 세상에 나게 한 유전체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유전체를 더 잘 이해하고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할 수 없다. 설사 이번 치료가 실패하더라도, 그들을 꽉 안아 주면서 방법을 찾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안심시키는 게 우리의 일이다.



작가는 스코틀랜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다정하고 헌신적인 부모님 아래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의 왕진 가방에 대한 기억, 가슴 따뜻해집니다. 그는 의학에 관심이 있었고 또 지독한 기계광이었다고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유전학에 열정을 불 붙였다고 합니다.


유전학, 바이러스 이런 것들은 저의 관심분야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점점 빠져 들어갑니다.

사람이 언제 가장 아름다울까요? 제가 찾은 답은 '자기가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할 때다'입니다.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분석하는 과학자들, 의사 선생님들, 그리고 함께 일하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게 되는 책입니다. 미래의 삶을 예측하고 싶을 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펼치는 많은 이들을 응원합니다!!!


#게놈 오디세이#저자:유안 A. 애슐리#출판:브론스테인


#헌신 #유전병 #아픈 어린아이 #미진단 희귀 질환 #유전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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