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달서마라톤 대회에 갔다.
나는 운 좋게 대구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 산다. 대회가 열리면 슬슬 일어나 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좀 편안하게 움직이는데 그게 지나쳐서 올봄에는 늦게 도착했다. 10km를 신청했는데 5km 참가자들과 함께 뛰었다. 그래도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 길은 아는 길이고 사람들도 다 그냥 동네 사람 같았다. 혼자서 다녀오니 긴장할 일도 없다. 그냥저냥 갔다가 그냥저냥 돌아온다. 재미는 덜하지만 홀가분하다. 돌아오는 길 오전 10시에 오픈한 카페에서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아까 느꼈던 심장소리와 사람들의 팽팽한 에너지를 생각했다.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달리기 클럽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토요일부터 늦지 않으려고 긴장했고 모르는 사람들과 한 차로 움직이는 상황에 불편함이 일어났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씻고 6시 20분에 남편에게 대봉동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대봉동에서 10여 명이 함께 출발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8시였다. 대중교통이나 자차를 이용한 분들도 부스에 모였다.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배번호표를 달고 스트레칭을 30분 정도 했다. 클럽 사람들과는 아직 머쓱하다. 올 초여름에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출석했다. 8월과 9월에는 너무 더워서 아예 가지 못했다.
9월 30일이 대회였는데 23일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수요일에 억지로 운동화를 꿰차고 달리러 갔다. 숨이 차고 허벅지가 떨리면서 힘들었다. 아침에 2km, 저녁에 2km 정도 느린 속도로 뛰고 걸었다. 금요일 즈음에 호흡이 편안해졌다. 토요일에는 한 번만 가볍게 뛰었다.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에 불편하거나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도 열심히 말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를 배려해서 말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한 것을 알게되었다. 상대는 말을 안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점도 놓치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고 배려성 대화를 많이 해서 달리기를 시작할 때 이미 기운의 반을 쓴 것 같았다. 시작 600m 지점에 꽤 높은 오르막이 있었다. 간신히 오름막을 오르고 천천히 뛰는데 심장 박동소리가 커지고 허벅지 통증이 견디기 힘들었다. 인도로 빠져서 걸었다.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구름이 가려주었고 비도 조금씩 뿌려주었다. 그래도 25도 온도는 견디기 힘들었다. 여러 차례 뛰기를 멈추고 걸었다. 기록은 81분이었다.
수성교 아래 신천 동로에서 헤어졌다. 근처 찻집 홍차를 마시고 싶어졌다. 다리를 건너서 찻집으로 갔는데 오늘 다른 클래스가 있어서 늦게 오픈한다고 했다. 그냥 오기 아쉬워서 다른 카페에 가서 차가운 밀크티를 마셨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누웠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온몸 뼈마디 관절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누가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로 관절을 싸악 베는 것 같았다. 날이 선 새 종이에 손가락을 베는 것 같았다. 파고드는 통증에 눈물이 돌았다. 그 통증 끝에 두 개의 그림이 떠올랐다. 결혼하고 느꼈던 시댁의 무겁고 병리적인 공기를 느낀 날, 그리고 남편이 술을 먹고 사람을 상하게 한 일을 들었던 날 그날들이 떠올랐다. 온 몸 안의 관절을 작고 예리한 칼로 재빨리 그어버리는 통증이었다.
오늘 육체를 고되게 한 날 느낀 통증은 그날의 감각과 동일했다.
'아, 그날 이렇게, 이만큼 아팠구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생님은 인터벌훈련을 좀 해야겠다는 말씀을 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선생님 톡이 떴다. 11월 대회 신청을 받는다고 했다. 잠시 검색을 해보고 신청했다.
보아주지 못한 내 마음, 안아주지 못한 통증이 일어나는 건 괴로울 일이 아니었다. '마음 밑바닥에서 버림받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탓을 하거나 미워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주인을 믿고 빼꼼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이 마음을 요람에 눕혀 흔들어주는 상상을 해본다. 꽤 괜찮을 것 같다.
다음에는 어떤 기억이 찾아올까... 근육과 관절에 어떤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을까... 내가 억압한 그 마음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서 잘 달래주리라. 그리고 더 홀가분하게, 더 편안하게 매일매일을 대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