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화분이 왔다.
몇 년 동안 고심하다가 주문했다. 네이버 스토어 클릭 한 번으로 현관 앞에 길쭉한 택배 상자가 눕혀져 있었다. 알라딘의 램프 같다. 상자 마주 보는 면 양쪽에 구멍 2개를 뚫어서 노끈으로 화분을 단단히 고정시켜 보냈다. 코팅장갑도 장미 가시에 꽂혀 있었다. 키가 70cm 정도였고 자그마한 꽃봉오리가 하나 달려있었다. 이거 어디 두나하고 보다가 베란다에 있는 빈 화분 위에 올렸다. 화분에는 흙만 있고 식물은 없었다. 높아서 바람도 잘 통했고 화분 아래 물구멍으로 흐르는 물이 바닥으로 넘치지도 않았다. 분갈이는 천천히 하기로 했다. 꽃봉오리가 피어오르려고 했고 택배로 흔들리면서 온 아이가 자리 잡기 힘들까 염려했다.
아이는 자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살금살금 봉우리를 부풀렸다. 집에 온 지 삼일 만에 꽃잎을 펼쳤다. 꽃은 사방으로 향기를 뿜었다. '존재감'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수국은 색감과 볼륨이 화려하지만 향은 없다. 장미는 형태도 색도 향도 압도적이었다. 꽃 중에 꽃이라 할 만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로 가서 꽃봉오리에 코를 갖다 댔다. 향이 아찔했다. 손으로 살짝 터치하면 보드라운 꽃잎 사이로 에너지가 넘쳤다.
일주일 동안 기쁨을 주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아이는 바닥으로 꽃잎을 내렸다. 미련 없이 떨군 꽃잎은 향과 색감이 그대로였다. 아쉬운 마음에 옅은 분홍잎을 주워 책 사이사이에 끼웠다.
분갈이는 언제 할까 하고 화분을 들었다. 바닥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화분 바닥 물구멍으로 가느다란 실뿌리가 빽빽하게 나와 있었다. 흙이 담긴 화분 위에 올려두어서 그런 것 같았다. 물받침대 위에 올려두었을 때와 달랐다.
이 아이들도 다 아는구나...
생명은 그런가 보다. 자리를 살피고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면 맹렬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 같았다. 오월의 주인공은 식물이다. 꽃가루를 날려 보내고 물을 잎으로 끌어올려 쑥쑥 자라고 꽃을 피워낸다.
촘촘히 뿌리내린 것들을 보면서 나도 너랑 함께 잘 커볼래,라고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