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달리기 1

by 보리별

3월 30일 일요일 합천벚꽃마라톤대회 10km 구간을 달렸다. 작년 12월에 달리기 교실 리더 선생님이 접수해 주셨다. 선생님과 선생님 남편분, 동네 지인 그리고 나, 모두 4명이 참가했다.


새벽 6시 대구에서 합천으로 출발했다. 차 안에서 산불로 울울해진 마음을 꺼냈다. 이 날 합천 대회는 열렸지만 4월 6일 예정이던 소백산 마라톤대회는 취소되었다. 나는 마라톤 대회를 좋아한다. 그 시간에 깃드는 '순정'을 사랑한다. 그 마음에 접속하면 일상이 훌훌 가벼워진다. 그런데 토요일에 바나나를 사면서, 계란을 삶으면서, 작두콩차를 우리면서 내내 마음은 뒤숭숭했다. 우울감이 돌기 시작했다. 생명이 사라지고 축사 동물이 잿더미가 되고 보금자리가 타버리는 일, 참담했다. 슬픔을 머금은 마음은 아래로 아래로 무겁게 내려가고 있었다. 목련은 꽃잎을 떨어뜨리고 벚꽃 봉오리는 팝콘처럼 깨어나는데 그 예쁨이 보이지 않았다. 일 년 중 가장 결이 고운 날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차는 7시 즈음 합천 공설운동장 옆 강변에 도착했다. 강바람에 귀가 시렸다. 토요일 밤 대구에도 화난 시어머니 같은 냉랭한 바람이 불었다. 비니를 쓰고 장갑을 끼고 목에도 워머를 둘렀다. 겨울옷차림을 제대로 갖춰야 되는 날씨였다. 풀코스(42.195km) 출발은 9시 30분이다. 그다음 하프(21.0975km), 10km, 5km 참가자들이 차례대로 출발한다.


참가인원이 적어서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천막은 받지 못했다. 선생님은 천막에 붙은 단체이름을 쓱 훑어보더니 적당(?)한 천막에 자리를 깔았다. 주인이 오지도 않은 집에 객들이 앉아버렸다. 올해 65세이신 소띠 선생님은 배가 고프다고 컵라면을 하나 먹었다. 나는 바나나를 한 개 먹었다. 그래도 출출했다. 선생님이 말리는데도 구운 계란을 3알이나 먹었다. 새벽에 남편이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땅콩버터 바른 식빵 2쪽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느껴졌다. 기초대사량이 올라간 건지 뱃골만 커진 건지 잘 모르겠다. 먹을 만큼 먹고 나니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휘적휘적 먹거리 부스를 둘러보았다. 커피를 파는 곳이 있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조금 있다가 오라고 했다. 옆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겨울 내내 사고 싶었던 나이키 에어로로프트 흰색재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갔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디자인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멋졌다. 아름다운 라인과 핏에 눈이 번쩍 뜨였다.


... 이 욕망을 어쩔 거냐...


커피를 두 잔 사들고 부스로 돌아갔다. 1잔 반은 옆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반 잔 남은 커피를 야금야금 먹었다. 그 시간에 마시는 커피는 먹어보지 못한 최음제 같다. 대회 전 마음은 불안, 두려움, 긴장감 혹은 기대 혹은 셀렘 혹은 각성 사이를 시계에 매달린 저울추처럼 오간다. 이런 흔들림은 에너지 소모가 크다. 양극단을 오가는 시계추 같다. 커피는 시계추 움직임 폭을 조금씩 줄여준다. 가운데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준다. 코로 달큼한 향이 느껴지고 시고 달고 쌉쌀한 것이 혀에 닿는다. 알아차린다. 목구멍으로 울대를 울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대던 심장이 조금씩 잔잔해진다.


8시 30분 선생님과 몸을 풀었다. 시원하게 몸을 풀고 건투를 빌고 헤어졌다.


10km 참가자들이 물결처럼 출발선으로 나아갔다. 4부 반바지에 긴팔티셔츠를 입었다. 달리기 하기 좋은 날이었다. 10km 구간에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고 햇살도 적당했다. 달려도 땀이 나지 않아서 쾌적했다. 안전 요원들이 길을 잘 통제해 주었고 응원목소리도 힘찼다. "파이팅! 힘내세요

"라고 목청 높여주었다. 이게 은근히 힘이 된다. 코스도 깔끔했다. 5km 정도 직선도로가 이어졌고 반환점에서 끝까지 직선도로였다. 4차선 강변도로 길 양 옆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급수대에는 물과 게토레이를 주었다. 목이 탈 때는 이온음료가 더 효과적이다. 이온 음료를 두 모금 정도 마셨다.


7km를 지나면 힘이 슬슬 빠지기 시작한다. 체력이 바닥을 찍는다. 50분 이상 달리면 몸이 신호를 보내는 거다. '그만해! 이제 좀 그만하라고! 왜 이러냐...' 이런 소리를 하는 거다. 작년 11월 3일 김천 대회에서는 8km 지점을 지나고 숨이 너무 차서 한참 걸었다. 오늘은 숨도 차지 않고 다리도 견딜만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코스가 심플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동안 달린 시간이 몸이 잘 쌓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급수대에서는 물을 머리 위에 뿌렸다. 두 번 뿌렸다. 머리와 얼굴이 시원해졌다. 몸은 활성화되었고 각성이 유지되었다. 심장은 규칙적으로, 강하게, 바르게 뛰고 있었다. 다리는 팽팽하게 근육을 올려 빠른 4분의 4박자로 바닥을 찍었다. 팔치기를 오래 해서 손이 저렸다. 빠른 4분의 4박자로 박수를 쳤다. 옆에서 달리던 사람이 쳐다본다. 신경이 쓰였지만 효과가 좋았다. 손바닥에 시원해지고 팔도 풀리는 것 같았다. 팔꿈치를 계속 들고 있는 자세가 쉽지는 않다. 작년대회에서는 팔을 내려서 뒷짐 지고 뛰기도 했다.


공설 운동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 지나온 내리막을 어떻게 올라가나 걱정했는데 그 옆으로 돌아가는 는 코스였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이 짧게 있었다. 운동장 안으로 들어와 트랙을 반바퀴정도 달려야 했다. 이때가 제일 힘들었다. 다리가 뻣뻣해지고 골반은 자꾸 주저앉으려 했다. 고관절도 삐그덕거렸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보태서 결승점을 밟았다.


시원하게 게토레이를 마시고 종아리에 파스도 뿌렸다. 피로감과 성취감, 기대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오늘 잘 뛰었는데! 속도가 빨라졌는데! 기록이 좋을 것 같아!'


시계에는 기록이 75분이었는데 왠지 아닐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록을 기다렸다. 부스에는 소띠 언니가 먼저 와있었다. 언니는 1시간 대 주자다. 1시간 안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 나도 최소 5분은 당겨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념품으로 받은 초코파이를 먹고 초코바도 먹었다. 라면이 먹고 싶어서 물을 끓였다.


문자로 기록이 왔다. 기록은 작년과 동일하게 75분이었다. 실망감과 의혹이 일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물이 잘 끓지 않았다. 적당히 끓었을 때 물을 붓고 라면을 먹었다. 달리기 한 후에 먹는 라면은 최고였다. 라면으로 기록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리더 선생님은 풀코스 4시간 정도 예상하고 출발했다. 도착 예정시간이 되어갔다. 소띠 선생님과 도착점으로 갔다. 언제 오나 기다렸다. 사진 잘 나올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4시간이 넘어도 선생님을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풀코스 완주자들이 쏙쏙 들어왔다. 단체전 주자들도 들어오고 젊은이들도 들어왔다. 쥐가 나서 다리를 절룩이며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흘렀다.


풀코스 완주자를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 2편은 다음 주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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