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삽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팔년 새에 9센티미터가 줄었다는 걸 맨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침대 위로 솟은 책들의 천개를 올래다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2톤짜리 닫집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무게에 짓눌려 내 몸이 구부정해진 것이다.(p33)
폐지는 늪지 속의 오래된 나무뿌리처럼 천천히 썩어갔다. 유리 덮개 밑에 반년은 잊고 방치해두어 누렇게 변색하고 마른 빵처럼 딱딱해진 치즈랄까, 그렇게 쉰내를 풍겼다.(p73)
나중에, 훨씬 나중에야 나는 게슈타포가 그녀를 다른 집시들과 함께 체포해 강제로 끌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마이다네크 혹은 아우슈비츠의 어느 소각로에서 ...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인간적이었다''' 전쟁이 끝나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기에 나는 마당에서 연을 태웠다.(p84)
이렇게 압도적인 소설은 처음이다. 인간은 경험한 것을 쓸 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법인가보다. 고통이 시리게 들어온다. 하지만 고통을 글로 쓸 수 있으니 그는 이미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게다.
한탸는 너무나 사랑하는 책을 죽이는, 모순으로 점철된 세계 안에서 자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노동의 종말을 보았다. 소설은 강렬하게 마무리되는데...
오늘 인간은 석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대 변혁기보다 더한 혁신의 시간을 맞고 있다. 그때처럼 힘이 우위에 서고 계급이 생겨버리게 할지, 아니면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랑의 세상이 생겨날지... 모르겠다.
#보후밀 흐라발#이창실 번역#문학동네#2016년 7월 8일 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