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에고라는 고통체

고요함의 지혜/에크하르트 톨레 저

by 보리별


에크하르트 톨레는 책을 많이 지었다. 그의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서 '고통체'라는 말이 나온다. 고통체라는 단어를 읽었을 때 울부짖던 엄마가 떠올랐다. 울부짖고 싶을 때마다 엄마는 나를 찾았다. 그러고 나는 울부짖는 친구들을 만났다. 인생에서 가장 억울한 건 무의식적 반복이다.


고통체는 개인적인 것일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너와 나의 고통체가 모양이 조금 다르지만, 한 발 물러서 보면 닮은 꼴이 더 많은 것 같다. 고통체의 힘이 약해지고 그 빈 공간에 빛이 들어오면 좋겠다.




<책 안에서 가져 왔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면 그 안의 고요함을 인식할 때 나도 고요해진다. 나는 깊은 차원으로 나무와 연결된다. 고요함속에서 그리고 고요함을 통해서 인식한 모든 것과 나는 하나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렇게 세상만물과 내가 하나임을 느끼는 것이 참사랑이다.(p15)


하지만 생각하는 마음에서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늘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 생각이 오래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온전히 존재했던 순간이 이미 내 삶 속에 있었다는 것을 지나쳤을 수도 있다.(p32)


에고가 지배하는 자아상은 대립을 요구한다. 에고는 자신이 홀로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저것과 대립하여 싸움으로써 스스로를 키운다. 또한 이런 것은 '나'인데 반해 저런 것은 '내가 아님'을 늘 증명하려 한다.(p42)


사람들을 대할 때 미묘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나를 감지할 수 있는가? 그때 나는 비교를 통해 살아가는 에고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때, 남이 나보다 더 많이 알 때, 남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스스로 초라해졌다고 느끼는 에고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질투이다. 에고는 비교에서 정체성을 얻고 '더 많이'를 양식으로 먹고 산다. 에고는 무엇이든 붙잡는다. 하지만 모든 수단이 다 실패했을 때조차도 에고는 여전히 커질 수 있다. 삶이 자신에게만 불공평했다든지 심한 병이 걸렸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으니까.


에고는 늘 사물이나 사람과 대립해야 한다. 당신이 끝없는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그것들을 찾아도 잠깐밖에 참아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말로는 행복을 원한다고 하지만 실을 불행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의 궁극적인 원인은 주변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습관이다.


순수의식은 형상화되기 이전의 생명이다. 그 생명이 '당신'의 눈을 통해 형상의 세계를 본다. 순수의식이 당신이니까. 당신이 그런 존재임을 알고 나면 당신은 세상 만물 속에서 당신 자신을 보게 된다. 그것은 온전히 맑고 명료한 인식의 상태이다. 이제 당신에게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과거가 없다. 당신의 체험을 걸러주고 해석해주는 관념의 필터 역할을 하는 과거가.(p65)






에고가 삶을 지배하는 동안 나의 생각, 감정, 행동은 거의 모두 두려움과 욕망에서 나온다. 그러면 인간관계에서도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원하거나 상대의 무언가를 두려워하게 된다.


내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인정, 칭찬, 관심, 즐거움과 물질이다. 또는 비교를 통해 내가 더 많이 가졌다, 내가 더 많이 안다는 우위를 점유하여 내가 돋보이는 것이다. 반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초라해지는 것이다.(p96)


지금 이 순간의 여유로움 안으로 누가 들어오든 다 귀한 손님으로 맞이할 때, 그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둘 때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만물이 서로 그물망처럼 얽혀 있음을 불교에서는 알고 있었다. 이제 물리학자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어떤 사건이나 존재도 홀로 분리되어 일어날 수 없다. 다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판단과 분류가 많아질수록 분리과 고립도 늘어난다. 생각을 통해 삶의 전체성은 조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만들어낸 것도 삶의 전체성이다. 상의상관성속에 존재하는 생명의 그물망인 우주의 일부이다.


언뜻 보기에 말도 안되는 사건이 우주의 전체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우리는 아무래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광대한 우주의 전체성 안에서 그 사건은 부득이한 필연이었다고 인정해버리면 당신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제일보를 내디딘 것이다. 그것은 삶의 전체성과 다시 한번 조화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p123)


불행은 생각이 만들어낸 나의 정체성을 필요로 한다. 나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불행은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의 불행에서 시간을 제거해버리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 순간의 '그러함'뿐이다.(p125)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겉으로 보기에 '나쁜 것' '악한 것'으로 보이는 모든 조건과 사람과 상황 뒤에는 커다란 선이 감추어져 있다. 내 안과 밖의 현실을 내면에서 받아들일 때 그것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악에 저항하지 말라'는 인류 최고의 진리 중 하나이다.(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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