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유쾌한 판사님

쾌락독서/문유석 저

by 보리별


눈이 번쩍 뜨이는 작가님을 만났다.



69년생, s대 법대 출신 판사님이다. 퇴직하고 '어느 로펌 가요?'라는 질문에 '집으로 가요'라는 대답을 하셨다고 한다. 글이 유쾌 상쾌 발랄하다. 만화책도 즐겨읽으셔다고 한다. 슬램덩크 등등등. 놀라운 점은 순정만화를 읽으신 것이다. 황미나에서부터 신일숙,김헤린까지.


제일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책읽는 것조차 폐가 될 수 있다니'에 실려있다.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여튼 너란 놈은 반성을 해도 참 재수없게도 한다. 공부를 너무 잘한 탓에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폐가 된다는 걸 돈오돈수로 깨쳤다니 그게 무슨 원효 해골 물 마시는 소리야?"


"아니, 그게 그런 소리가 아니..."


꼭 읽어보시라! 넘 재미 있어서 책읽다가 여러 번 숨넘어가게 깔깔깔 웃었다.





책은 언제나 수다떨고 싶어지는 주제다. 책과 여행, 이 두가지에 관해서라면 나는 언제 어디서든 숨도 안 쉬고 몇 시간 떠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게 들어오는 책 기획안의 대부분은 내 직업과 관련된 엄숙한 책 아니면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고 충고하는 책들이었다. 나 자신이 즐겨 읽지 않는 종류의 책을 써서 남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았다(참고로 수많은 기획안 중에서 '쾌락독서' 이외에 유일하게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걸그룹'에 데헤 써달라는 제안이었다). ---이 책만큼은 깃털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내 즐거움을 위해 쓴다. 언제나 내게 책이란 즐거운 놀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심심해서 재미로 읽었고, 재미없으면 망설이지 않고 덮어버렸다. 의미든 지적 성장이든 그것이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부산물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그런 내 '독서법'의 유용성을 전파하고자 이 책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그랬다는 얘기일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왜 유명한지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이 있었는데, 무심코 읽다 보니 아니, 이 작가의 주인공들은 전부 전생에 말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정말 엄청난 말장난의 고수들이었다.


개인주의자니 뭐니 해도 어차피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끊임없이 군기, 서열, 뒷담화, 질투, 무리짓기와 정치질, 인정투쟁에 시달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렸다.


원래 삶이란 내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잠시 스쳐가는 것들로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눈부시게 반짝인다는 것을 알기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주 드물다는 건 어린 시절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동경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쾌락독서#문유석#문학동네




금빛 은빛 무늬 든


하늘의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의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은 내 꿈이오니



w. B.예이츠, <하늘의 융단>



문판사님이 중 2 여름방학 때 정독도서관 독서교실 장기자랑 때 암송한 시입니다. 무려 여학생들도 있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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