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다정하게 살아요, 우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

by 보리별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두 분이 공저로 쓰신 책이다. 브라이언 헤어는 듀크대학에서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그는 개, 늑대, 보노보, 침팬지, 사람을 포함하여 10여 종의 동물을 연구하면서 시베리아에서 콩고분지까지 세계 곳곳을 누볐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와일드 채널에서 <당신의 개는 천재입니까?>를 진행했다고 한다. 버네사 우즈는 듀크대학교 진화인류학과의 연구원이며 수상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브라이언 헤어와 함께 2013년 <개의 천재성>을 출간했다


추천의 글은 최재천 교수가 썼다. 최 교수님은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그래서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사건, 사고 소식에는 인간의 잔인함이 넘쳐나지만,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존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정연한 논리로 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책의 첫 장에는 '모든 인류를 위하여'라고 적혀있고 그다음 장에는 'E. pluribus unum 여럿이 모여 하나로'라고 적혀있다. 미국의 건국 이념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아포리즘 "하나는 모든 것으로 이뤄져 있고 모든 것은 하나로부터 나온다"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한 것이다.



1. 자기 가축화


--- 한편 벨랴예프는 가축화의 기준은 딱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가설이 다윈에서 다이아몬드까지 모든 연구자가 풀지 못한 그 난제에 해답을 줄 수 있을 듯했다.


--- 사람에게 다정한 여우들은 아름답고도 이상하다. 고양이의 우아함을 지녔지만 개처럼 짖는다.


--- 자연이 일반적으로 수천 세대에 걸쳐 성취하는 것을 벨랴예프와 류드밀라는 인간의 한 생애 안에 이루어냈으며 그 결과로 하나의 공식을 수립했다. 즉, 사람에게 친화적인 동물이 더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일 때 가축화가 발생한다는 공식 말이다.


--- 사람이 무언가 창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단연 막대한 양의 쓰레기일 것이다. 수렵채집인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바깥에 내다 버리고 천막 밖으로 나가 용변을 본다. 정착해서 사는 인구 집단이 많아지면서 주린 늑대들에게는 밤에 즐길 맛난 먹을거리가 많아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버린 뼈도 좋은 야식이겠지만, 조리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소화가 빠른 사람의 똥도 음식 못지않게 영양가가 풍부하다.


--- 이렇게 친화력을 선택하고 단 몇 세대 만에 이 특별한 늑대 개체군의 겉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십중팔구 털색과 귀 모양, 꼬리 모양이 모두 관대해졌을 것이고, 머지않아서 이들 원시 개에게 우리의 손짓을 읽을 줄 아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매력으로 대체되자 늑대의 사회적 기술은 사람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사람의 제스처와 목소리에 반응할 수 있는 동물은 사냥 동반자이자 안내자로 대단히 유용했을 뿐 아니라 온기를 제공하고 늘 함께하는 반려동물로서도 소중했을 것이다.



2. 보노보


--- 신경학자 쳇 셔우드는 뇌에서 위협을 접할 때 반응하는 부위인 편도체를 조사하여 보노보의 편도체 기저핵과 중심핵 축색돌기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의 농도가 침팬지의 2배임을 발견했다. 이는 보노보에게서 세로토닌, 즉 여우를 비롯하여 친화력으로 선택된 다른 동물들에게서 변화를 보였던 그 신경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 보노보는 다정한 동물로 찬양되기도 하고, '전쟁 말고 사랑'이라는 모토에 걸맞은 히피 유인원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한다.


--- 우리가 가진 모든 특성이 침팬지에게 있다.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우리가 그러하듯이 침팬지에게도 빛나는 지능과 악마 같은 장난기, 다정하다가도 순식간에 살해를 저지를 수 있는 잔학성이 공존한다.


--- 그렇다고 보노보를 무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유인원의 친척 가운데, 오직 보노보만이 우리를 괴롭혀온 치명적인 폭력성에서 벗어난 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탁월한 지능과 지성을 뽐내는 인간이 하지 못한 것을 보노보가 성취한 것이다.



3. 보복성 비인간화 - 밴듀라의 비인간화 실험



우리는 대부분 고통받는 아이를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배우자와 사별한 동료에게는 위로를 전하려 하며, 투병하는 친척들에게는 돌봄의 손길을 주고 싶어 한다. --- 우리에게는 연민과 공감 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본성을 길들이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우리 내면에 최악의 속성의 씨앗을 뿌린 것도 동일한 뇌 부위에서 모두 일어나는 일이다.



--- 유인원 비유는 노예무역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며, 그 대상이 아프리카인으로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19세기에는 영국과 미국에서 아일랜드인이 유인원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일본인들을 원숭이라고 불렀다.


--- 하지만 이런 유인원 유행이 꺼져가는 동안에도 미국의 흑인들은 여전히 유인원으로 그려졌다. 이들은 흔히 여자나 피에 주린 형상이었다.



--- 현재의 인종차별은 '교묘하고 산발적으로 퍼져 있으며' '경로의존적'인 성격을 띤다. 현재의 인종차별은 인종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편견이 신념화된, '상징적' 혹은 '일차원적'인종차별, 다른 인종 집단과 접촉을 피함으로써 혐오를 실행하는 형태의 '기피적'인종차별, '암묵적'인종차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의 '최종 해결책'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관료적 효율성이었다. 그러나 대규모의 잔학 행위는 나치 독일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일본의 난징 대학살, 헝가리 유대인의 죽음의 행진, 독일 내 소련군 점령지에서 자행된 대규모 강간, 루마니아의 유대인 대박해 등이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이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사이코패스였던 몇몇 지도자 탓으로 돌리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만행의 규모를 보았을 때 과연 이 사건들이 예외적인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결과물일 수는 없었다. 이처럼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끔찍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출범한 학문이 사회심리학이었다.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세 가지 중심 요인이 도출되었는데, 바로 편견, 순응, 욕구,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을 "오류가 있으나 완고한 일반화가 기반이 되는 혐오"라고 기술한다. 그는 편견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어 완고하게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는 부모와 집안사람들의 편견에 노출되어 성장하는데, 가족 집단에 대한 동질성이 강화되면서 다른 집단에 대한 반감이 발달한다.



--- 앨버트 밴듀라가 비안간화 실험을 다룬 선구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밴듀라는 평범한 사람이 잔인한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이 누군가이 명령에 복종한 것이 아니라 그 잔인한 결정의 책임을 여러 사람과 나누었기 때문은 아닌지 알고자 했다. 밴듀라는 어떤 결정에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기여한다면 그 잔인함이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잔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밴듀라의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감독관 역할을 맡아 전기 충격을 이용해서 학생에게 학습을 시키라는 지시를 받는다. 감독관의 주된 임무는 학생이 오답을 말할 때마다 가할 충격의 강도(10점 범위에서 약함에서 격함까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벤듀라가 예측했듯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자기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 감독관들이 더 강한 충격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실험에 피험자들이 모르는 조작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 일부 감독관은 실험자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일부 감독관은 실험자들이 학생들에 대해서 "예리하다"거나 "이해력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나머지 감독관은 실험자들이 학생들에 대해서 "썩어빠졌다"거나 "짐승 같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밴듀라의 예상과 달리 학생들을 살짝 비인간화하자 책임을 분산할 때보다 훨씬 큰 효과가 나타났다. 학생들에 대해 인간적인 평가를 들은 감독관들은 가장 약한 강도의 충격을 주었고, 비인간적인 평가를 들은 감독관들이 가한 충격의 강도는 2배에서 심지어 3배까지 높았다.


--- 밴듀라는 비인간화가 인간의 잔인성을 설명해 주는 중심 요소라고 결론 내렸다.


--- 고프가 지적하는 것은 비인간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인원화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거나 유인원에 비유하다 보면 사람들의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하며, 이렇게 유인원화의 표적이 되니 개인이나 집단은 기본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편견보다 유인원화가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 간 격차를 더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 사람 자기 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닌 종임을 설명해준다.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


--- 우리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위협으로 여겨질 때, 그들은 우리 정신의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는 것이다. 연결감, 공감, 연민이 일어날 수 있던 곳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매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현대 사회에서 비인간화 경향은 오히려 가파른 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편견을 표출하던 덩치 큰 집단들이 보복성 비인간화 형태에 동참하며 순식간에 서로를 인간 이하 취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보복적으로 비인간화하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 미국에서는 총 6만여 명이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다. 지금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일부는 마지막 강제 불임시술 기간에 살아 있었을 것이다. 1983년이었으니까. 비록 미국에서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인원수가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 불임화된 인원수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 미국의 강제 불임시술 기간이 6배 더 길었다.



우리 종은 독재자가 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 독재의 씨앗은 우리가 최초로 농작물을 수확하면서 함께 뿌려졌다. 식량을 생산하고 많은 양을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성장했다. 사람들은 물자를 독점하기 위해서 협력해야 했고, 그 누구도 독재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견제하던 작은 규모의 수렵채집 집단이라는 장치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100명쯤 되는 무리 안에서는 쉽게 존재가 드러나 처벌받았을 독재자들이 익명이 가능해진 큰 무리 속에 숨어 한 사회 내의 하위집단을 선동해서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부족, 왕족, 제국, 민족국가, 이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는 이 방식, 즉 싸워 이긴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세워졌다.


결국 근대적 사회들은 한 사회 내에서 가장 힘센 집단의 기분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다. 힘이 약한 집단 혹은 소수 집단 사람들은 목소리를 잃고 농노나 노예로 강등되었다.--- 농경 사회는 한 울타리 안에서 빼았고 빼앗기는 제로섬게임에 갇히게 되었다.




자기 가축화 가설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가축이 되었다. 사실 가장 높은 수준의 가축화를 이룬 종이다. 애착과 접촉, 호기심과 놀이, 공감과 협력 등의 여러 정신적 형질은 그 자체로 인간성의 본질이라 할 만하다. 헉슬리의 말처럼 사슴을 가련하게 여기고 늑대를 미워하는 우리의 마음은 인간 정신 가축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개와 마찬가지로 치매를 앓으며,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의 정신장애도 인간과 가축에서 흔히 발견된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성인 4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앓는다. 외집단 혐오와 차별, 살인이나 전쟁도 그렇다. 신석기시대 초기, 어떤 지역에서는 성인의 약 절반이 다른 인간의 손에 죽었다. 지금도 우리의 주적은, 늑대가 아니라, 인간이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10명이 늑대에 물려 죽는데, 살인 사건은 매년 40만 건에 달한다. 전쟁 사망자를 뺀 수치다. 이런 비극의 이면에 자기 가축화가 자리하고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자금까지의 인류사는 그랬다. 하지만 덕분에 많이 죽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 부족을 향한 편협한 다정함이, 더 넓은 집단을 향한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새로운 형질이 무엇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디 끝없이 이어지는 집단 내외의 갈등, 그리고 이로 인한 지독한 정신적 사회적 고통은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정한 종족이다. 그렇지만 한 순간에 잔인하게 돌변한다. 내 남편도 평상시에 다정하다. 하지만 한 순간에 맥락없이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한다. 사회생활에서 혹은 원가족에게서는 그렇지 않다. 집안에서 여자인 아내와 여자인 딸아이에게 그렇게 행동한다. 어이없게도 아들에게는 그러하지 않다. 인간은 참... 생각보다 엉망인가보다.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자기 가축화 #보복성# 비인간화#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최재천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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