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고미숙
고미숙 선생님은 유쾌하다. 선생님이 하시는 유튜브는 역설과 유머의 끝판왕이다. 감이당의 청년들이 촬영하고 편집하는데 오래동안 공부한 학인들의 인터뷰가 진짜 재미있다. 배꼽이 빠지는 중에 유쾌한 한방이 있다.
가장 큰 강점은 공부와 일상의 결합인 것 같았다. '책에나 나오는 소리 하지 마라...', 한 번씩 들어본 말이다. 공부와 일상이 결합되고 벗들과 지내는 삶이 참 좋아 보인다.
1.연암와 민옹
고미숙 선생님의 <열하일기>는 아주 재미있었다. 예리한 통찰이 유머를 통해 흘러나온다. 그냥 교과서에 실린 옛날 책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연암 박지원 선생님은 당시 권력의 핵심부인 노론 경화사족의 일원으로 태어나셨다. 1737년 영조 13년 2월 5일 새벽이었다. 고미숙 선생님에 의하면 태양인이라고 한다. 고미숙 선생님은 말이나 행동보다는 체질을 믿는다고 하신다. 나 역시 인간의 미묘함을 이해하는데 오행이 도움 되었다. 설명하기 힘든 인간의 밑마음 한자락을 쓰윽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기껏 4시간 짜리 기초 명리 수업을 듣고 나서 그랬으니 깊이 공부하면 새로운 안목이 열릴 것 같다.
연암은 주류 가문의 촉망받는 천재였고, 평생 정조의 구애를 받았다. 하지만 관직에는 미련이 없었다. 오십이 넘어 생계용으로 지방 한직에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그 이유를 고미숙 선생님은 청년기 17~18세에 치러내야 했던 우울증과 거식증에서 찾아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연암이 시도한 일 중 민옹이라는 이야기꾼을 만난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민옹은 노론 중심 세력의 촉망받는 천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집이 가난한데 음식을 싫어한다니 살림이 펴지겠고... 졸음이 없다니 낮밤을 겸해서 나이를 곱절로 사시네... 수명과 부귀가 늘어나네..."
이런 선문답을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법륜스님께서 남편이 바람피웠다고 이혼하겠다고 울고 있는 보살님에게
"뭘 이혼을 해... 서류 정리 하고 재산 분할하려면 귀찮은데... 이혼하면 또 딴 남자도 찾아야 되고... 그 놈은 다른 여자랑 오래 산 사람인데... 딱 이혼했다고 생각하고 살면 되지, 뭘 복잡하게 일을 만들어!"
본질을 꿰뚫는 대화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막 던지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괴로움으로 마음 이 불구덩이로 가득한 사람한테는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다. 그 정도의 괴로움지 않다면 그냥 말장난으로 들린다.
그리고 연암은 '김홍기'라는 기인을 찾아 전국을 다닌다.
고미숙 선생님은 민옹과 김홍기를 주류에서 벗어서 표상외부에 사는 존재로 본다. '소수자'나 '마이너minor'인 것 이다. 주류 중의 주류, 출신부터 금수저인 연암은 왜 외부자들, 소수자들을 찾아다녔을까... 연암은 금수저 세계의 본질을 보아버린 게 아닐까... 어린 사이에 실상을 봐버렸고 그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막혀버린 마음이 우울로 흘러가버린 것 같다. 부모 형제 중 누가 연암의 고민을 이해했을까..
2. 열하와 질 볼트 테일러
중류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한 조각 검은 구름이 거센 바람을 품고 밀려왔다. 삽시간에 모래를 날리고 티끌을 말아올려 자욱한 안개처럼 하늘을 덮어버리니,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배에서 내려 쳐다보니 하늘빛이 검푸르다. 여러 겹 구름이 주름처럼 접힌 채, 독기를 품은 듯 노여움을 발하는 듯 번갯불이 번쩍번쩍하고 벽력과 천둥이 몰아쳐 마치 검은 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모습이다. <막북행정론>
아, 슬프다!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런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버릇없이 드러누워 말처럼 뒹굴면서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게 말을 했더니, 누님이 그만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건드렸다. 나는 성이 나서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댔다. 누님은 옥압과 금봉을 꺼내주며 울음을 그치도록 댈랬는데, 그때로부터 지금 스물여덟 해가 되었구나!
(돌아가신 누님을 기리며 쓴 글)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사람들은 다만 칠정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댜.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움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도강록 중 호곡장론>
그러나 연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갓난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보고 발도 펴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즉 이때의 울음은 우리가 아는 그런 울음이 아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경계를 넘는 순간의 환희이자 생에 대한 '무한 긍정'으로서의 울음인 것이다.
<-p279 열하일기,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나는 좌뇌의 감정형 캐릭터 2를 '애비abby'라고 부른다. 내 생각에 내 유년 시절의 근본적 상처는 버림받은 느낌에서 생겨났다. 그저 내가 태어나면서 어머니와 분리되었기 때문이었다. 출생의 순간을 아무리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해도 생리적으로 볼 때 나는 소리와 빛과 감촉에서 차단된 따뜻한 액체 속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어머니의 근사한 심장 박동과 하나가 된 듯한 유동적 세계를 떠나, 몸을 구석구석 살피고 쿡쿡 찔러대며 저절로 감각에 과부하가 오는 차가운 세계로 왔으니 내 영혼 전체가 통곡하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애비 어린이!
<p127 나를 알고 싶을 때 뇌를 공부합니다. 질 볼트 테일러>
우연히 동시에 읽게 된 두 책이다. 열하일기는 200여 년 전 상투머리 틀던 조선시대 책이다. <나를 알고 싶을 때 뇌를 공부합니다>는 최신 미국판 따끈따끈한 뇌과학 책이다. 풀리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우리는 심리학에 이어 뇌과학이라는 분야에 다다랐다.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독서지만 마음에 딱 걸리는 두 부분이다. 연암이 태양인이라서 그럴까? 연암은 열하를 지나면서 크게 한 번 울어볼 만하다고 말하고 뱃속에 있던 아기가 세상에 나와서 시원해서 운다고 표현했다. 반대로 칠 볼트는 그 순간을 생리학적으로 감각에 과부하가 오는 차가운 세계라고 표현한다. 문학적 표현과 과학적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태양인과 캐릭터 1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3.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의 부제는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이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음에서 감정이 일어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뇌신경망 끝에서 일어난다고 들었다. 출간 된지 몇 년 지났으니 스포한다.
25세기 전쯤 동지중해 연안, 작은 만과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섬들에 상거래가 활발한 어촌 마을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었다. 케오스, 아키라 가스, 아브 테라, 엘리스, 칼키 돈 등 짠 내 풍기는 이 항구들을 떠돌면서 이집트와 페르시아, 히브리, 페니키아 여행자들과 어울리던 한 무리의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문학의 모든 발명품을 알고 있었다.
교사들은 은화 한두 푼에 지식을 나눠주곤 했다.--- 그 세밀한 원리를 파악하면, 당신은 문학이 어떻게 창조됐는지 알게 될 것이다. 철학자들도 동지중해 연안을 떠돌았지만, 교사들과 달리 그들은 정권과 가깝게 지냈다.
고대 어느 시점에 문학 소피스트들은 다 소멸했다. 다른 두 집단과 달리, 그들은 논쟁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을 방어할 수 없었거나 아예 방어하지 않았다. 결국 전쟁터에 나간 시인들처럼 모두 죽고 말았다.
하지만 나머지 두 집단은 계속 존재했다. 아니, 단순히 존재만 한 게 아니라 번성했다.
이 책은 어려워서 적당히 이해했다. 거칠게 이해한 내 뇌의 상상력은 이런 생각을 낳았다.
"연암선생님은 타고난 문학 소피스트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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