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친밀한 관계의 폭력

가족이라는 착각/ 이호선

by 보리별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진은영, <가족> 전문


<더 글로리>가 끝이 났다. 유튜브로 줄거리만 보았다. 폭력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71년생이 학교에 간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만성적인 폭력과 폭언에 시달린다. 이유는 사랑이라고 한다. 너 잘 되라고... 학교 안에서도 폭력의 시간이 지나간다. 군대는 폭력과 위계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남은 검열의 공간은 가정이다.



가족끼리

더 무서운

차별과 서열


문제는 아버지가 직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면서 생겼다. 민경 씨는 회사와 병원을 오가면서 어머니와 교대로 아버지를 병간호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힘들게 지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잘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태도는 더 했다.


"다들 바쁘니 어쩌겠니. 힘들지만 착한 네가 참아야지."


가족 안에서의 서열과 차별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잘못된 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생긴다. 이럴 대 피해를 받는 다른 가족은 치명적 상처를 받는다. 가족끼리 주고받는 상처는 씻기지도 않고 물릴 수도 없다. 서영과 차별은 저절로 없어지지도 않는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참고 넘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전부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모두 가족 공동체의 한 일원일 뿐이다.


부모가 계속 형제자매를 비교한다면 어떨까?


자녀들은 점점 우열을 가리게 된다. 이는 자녀에게 시기, 분노, 열등감, 위축감, 자만심, 경멸 등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 주는 일이다.


결혼하고 누구나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좋은 부모, 존경받는 부모는 아무나 될 수 없다.



누구나 기분을 드러낸다. 내 기분은 내 선에서 끝내야 하는 데 나도 모르게 겉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기분과 태도는 별개다. 내 안에서 저절로 생기는 기분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태도는 다르다. 좋은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더는 참고 살

이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


황혼이혼의 근본적인 원인은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로움의 시전적 정의는 '홀로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각자 외로움에서 벗어나 친밀감과 충만함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런데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어도 홀로된 듯 쓸쓸하다. 배우자가 있는데 여전히 외로우면 훨씬 더 힘이 들고 괴롭다.


인간은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었다고 느낄 때 실제로 뇌의 통증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된다. 외로운 감정을 오랫동안 느끼다 보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해, 자살 같은 극닥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수도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사 문제로 아버님과 형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형님은 화를 내면서 내가 해올 음식을 통보하고 명절 전날 시댁에 오지 않았다. 갑자기 전달 받아서 당황한 나는 남편에게 형님 집 가서 이야기를 좀 해야 되지 않냐고 말했다. 절대로 화내지 않았다. 뭐가 기분이 나빴는지 그는 술을 먹고 들어와 거실 쇼파에 누워서 씨발...로 시작되는 욕을 2시간 정도 해댔다. 그리고 며칠 뒤 미안하다고 간단하고 간편하게 문자러 숨었다.


아버님은 언어가 거칠고 조악했다. 며느리들에게 욕설에 가까운 언어를 퍼부었다. 병원 앞 인도에서 소리없는 '씨...'로 시작되는 욕설을 나에게 퍼붓기도 했다. 남편은 이런 화법과 뇌구조를 물려받았다.


위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좋겠어,,,, 욱하니까, 내 성격이 그렇다고 해대고 미안하다고 하면 되니까... 그 대단한 위력은 왜 약자에게 행할까? 결혼하고 죽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나는 육체적으로 힘이 센 남자가 술 뒤에 숨어서 위력을 휘두를때 그냥 벌벌 떠는 지렁이 같은 무력한 존재일뿐이었다. 부들부들 기었던 시간만큼 마음에는 구멍이 났다.


그는 술을 마시면 연락을 하지 않았고... 새벽에 들어와도 사과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이 안나와서 그렇단다... 돌도 안 된 아이를 안고 술집거리로 찾아나서기도 했고... 술취한 남편을 데리고 온 택시기사가 무서워 시댁 어른들을 부른 날에는 자기 부모를 무시한다고 목을 눌렀다.


그런데 이런 일을 몇 번 겪고나면 그와 나는 평등하지 않게 된다. 허리를 조아리든지 그를 수단방법가리지 않고 이겨야한다. 약했던 나는 허리를 조아렸다.


가정 내 폭력은 주로 남성이 힘이 약한 여자와 아이들에게 행사한다(물론 아내에게 맞는 남성도 있다). 그들은 경제권과 가부장적 권위로 여성에게 위력을 휘둘러 상대를 피폐하게 만들고 떠나가지 못하고 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상처는 직면하지 않으면 다음 대로 이어진다. 아이때문에 참지만 아이는 또 그런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왜냐고? 익숙하니까... 뇌는 배우자를 고를 때 불확실한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항해야 한다. 좋은게 좋은 게 아닌 이유는 그렇다. 내가 누군지,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고 다리가 공중에 떠서 헛걸음을 하는 것 같은데 뭐가 좋은가... 세포는 다 기억하고 있는데 생각만으로, 입으로만 아니라고 하면 뭐 할 꺼냐...



#가족이라는 착각#이호선#유노라이프 출판#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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